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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 멎은 1004(천사)호 아기 아빠에게 천사가 다녀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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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종사자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2017년 4월 2일.
따뜻하고 포근한 봄날. 평소처럼 서로 반가운 인사로 하루를 시작했다. 장비점검 방송과 함께 구급대원들은 장비상태를 확인하고 지난밤 출동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렇게 일과가 시작될 무렵!
ⵌ8시 56분 구급출동
다급한 출동벨과 함께 방송이 나온다. ‘구급출동. 구급출동. ○○동 ○○아파트 101동 1004호 젊은 사람이 쓰러졌다는 신고.’
평화로웠던 마음이 이내 분주해졌다. 이내 장비를 갖추고 현장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도착 직전 상황실에서 다급한 무전이 왔다. ‘심정지 심정지 상황. 보호자 심폐소생술 안내 중.’
'쓰러짐'과 '심정지'는 전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상황이 1분1초가 그 어느 때보다 귀한 초응급으로 바뀐 것이다.
ⵌ8시 59분 현장도착
신고 3분 만에 우리는 101동 1004호 문 앞에 섰다. 문을 쾅쾅 두드리자 현관문이 열렸다.
"여보, 여보." 갓 돌이 되었음직한 아기를 안은 젊은 엄마가 울고 있다. 절규에 가까운 비명과도 같았다. 거실 소파 위 심정지 환자는 그의 남편이었다.
짧은 순간 엄마 품에 안긴 아기와 눈이 마주쳤다. 난 엄마에게 말했다.
"보호자분, 애기랑 같이 방에 들어가 계세요. 우리 믿고 119 신고하신 거죠? 그럼 지금부터 우릴 믿고 방에 들어가 계셔야 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지만, 그래도 어쩌면 아빠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모습만은 보여주기 싫었다.
이제 우리가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할 시간이다. 환자는 이미 호흡이 없고 맥박이 잡히지 않으며 얼굴엔 핏기가 사라져 하얗게 변해버린 상태였다.
우리는 소파 위 환자를 거실 바닥으로 내렸다. 환자의 가슴 압박 위치를 찾아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압박 횟수에 맞춰 마스크로 인공호흡과 심장충격기 리듬을 확인했다. 하나, 둘, 셋, 넷…압박을 하는 동안에도 엄마 품에 안긴 그 아이의 눈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고 이 환자는 꼭 살려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ⵌ9시 3분 심장충격기 첫 번째 리듬분석
자동심장충격기 2개 패드를 환자의 차가워진 몸에 붙이고 심전도 분석을 시작했다. 심실세동 리듬이 관찰된다. 환자를 소생시킬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심장충격기 200J 충전 후 쇼크버튼을 눌렀다. 환자의 몸은 잠시 전기자극으로 파르르 떨었다. 다음 리듬분석까지 2분 남았다. 나는 "제발 심장아 뛰어라. 좀 뛰어라"라고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리며 심폐소생술을 다시 시작했다.
때마침 후착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심정지 환자가 있으면 2대의 구급차가 출동해 업무를 분담한다. 의사와 통화로 전문기도 유지술과 정맥로 확보 처치 의료지도를 받았다.
ⵌ9시 5분 심장충격기 두 번째 리듬분석
자동심장충격기 2번째 리듬분석이 시작되었다. 2번째 심실세동 리듬이 관찰된다. 하지만 아직 정상 리듬은 돌아오지 않았다. 심장충격기 200J 충전 후 쇼크버튼을 눌렀다.
한 구급대는 심폐소생술을 시작하고, 다른 구급대는 전문기도유지기를 삽입하며 정맥로 확보에 나섰다. 이제부터 다음 심전도 분석 때까지 가슴 압박을 유지하면서, 6초에 한 번씩 전문 기도유지기를 통한 인공호흡을 실시한다. 수액 정맥로 확보는 한 번에 성공했고 곧 전체 혈액순환량을 높여주게 됐다.
ⵌ9시 7분 심장충격기 세 번째 리듬분석, 그리고 마침내...
자동심장충격기 3번째 리듬분석이 시작됐다. 하지만 더 이상 전기충격이 필요하다는 멘트가 나오지 않는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 것이다. 경동맥이 뛰는 것을 확인한 난 "됐다! 살았다!"라고 외쳤다.
하지만 끝까지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언제 다시 심장이 멈출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환자의 아내를 불렀다.
"보호자분!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바로 응급실로 이송하겠습니다."
ⵌ9시 13분 병원이송 그리고 우리의 명대사
구급차 탑승 후 본부상황실로 무전 통보했다.
'심정지 환자 자발순환 회복 후 ○○병원 이송하겠음. 병원 통보해주기 바람.’
이 멘트야말로 구급대원이라면 누구든 꼭 해보고 싶은 짜릿한 명대사다.
이송 중 구급차에서 환자 활력징후를 측정했다. 혈압 120/80, 맥박 85회, 호흡 20회, 산소포화도 98%, 서서히 의식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환자는 산소마스크가 답답했는지 스스로 벗으려고까지 했다.
우리는 짧은 대화로 서로의 첫 목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환자분! 환자분!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으세요? 환자분은 집에서 심정지가 왔고 심폐소생술로 의식, 호흡, 맥박이 돌아온 상태입니다."
"어떻게 된 건데요? 기억 안 나요. 지금 어디 가는 건데요?"
"지금 병원으로 가고 있습니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말은 조금만 아낄게요."
환자는 멍한 모습이었고, 자신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더 이상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대화는 그렇게 마쳤다.
ⵌ9시 20분 병원도착
병원 도착 후 의료진에게 환자를 인계했다. 그제서야 우리 대원들은 이마 가득 찬 땀방울들을 닦았고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환자의 집 아파트 호수가 생각났다. 1004(천사)호. 그렇다. 천사가 그 집에 찾아왔고 그 천사는 젊은 가장의 손을 놓치지 않고 꽉 잡아 주었다. 환자는 곧 다시 사랑하는 아내와 소중한 아기에게 돌아갈 것이다. 앞으로도 이 가정에 천사의 보살핌이 늘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PS. 이 이야기는 나의 네 번째 하트세이버(심정지환자를 살린 구급대원에게 부여되는 배지) 스토리다. 나는 지금까지 일곱 번의 하트세이버를 받았다. 여덟 번째는 어떤 이야기가 있을지 나도 궁금하다.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을 갖고 계신 의료계 종사자분들의 원고를 기다립니다. 문의와 접수는 opinionhk@hankookilbo.com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선정된 원고에는 소정의 고료가 지급되며 한국일보 지면과 온라인페이지에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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