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밀착한 대만, 후쿠시마 식품 수입금지 풀었다

입력
2022.02.08 14:40
수정
2022.02.08 18:4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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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사고 11년 만에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中에 맞서 대만 두둔하는 日과의 밀착 강화
CPTPP 가입에 앞선 무역 자유화 선결 조치
돼지고기 수입은 美, 수산물 수입은 日 선물
中 경제 영향력 벗어나기 위한 대만의 반격
수입금지 유지는 韓, 中, 마카오 등 14곳

지난해 12월 치러진 국민투표 사흘 전 차이잉원 총통이 유권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치러진 국민투표 사흘 전 차이잉원 총통이 유권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대만이 8일 일본 후쿠시마 지역 식품 수입을 허용했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원전 사고 이후 11년 만이다. 중국에 맞서 부쩍 대만을 두둔해온 일본과의 밀착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수입 금지를 유지하는 국가와 지역은 한국, 중국, 마카오를 비롯한 14곳만 남았다.

뤄빙청 대만 정부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후쿠시마를 포함한 일대 5개 현의 식품 수입을 허용한다”며 “동일본 대지진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세계 각국이 제한 조치를 풀고 있다”고 밝혔다. 뤄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18일 국민투표 결과는 다수 국민이 대만이 세계로 나아가고 국제 표준을 수용하도록 기대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면서 “정부는 국제 표준보다 더욱 엄격한 과학적 검사를 통해 식품 안전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만 정부는 후쿠시마 일대 수입 식품 전량을 대상으로 통관 검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식품 1㎏당 방사선 허용 기준을 미국 등이 채택하는 1㎏당 1,000베크렐(Bq)보다 훨씬 엄격한 100베크렐로 한다고 강조했다. 대만은 2018년 11월 국민투표에서 78%가 수입 금지조치 해제에 반대했는데도 불구, 집권 민진당 정부가 수입을 강행했다.

대만 타이베이 시내에서 지난해 12월 제1야당인 국민당 지지자들이 가축 성장 촉진제가 함유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대만 타이베이 시내에서 지난해 12월 제1야당인 국민당 지지자들이 가축 성장 촉진제가 함유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타이베이=로이터 연합뉴스


대만은 성장촉진제 락토파민을 함유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놓고 지난해 국민투표를 치렀다. 야당이 국민 건강을 이유로 수입을 반대했고, 조사에서도 이에 호응하는 여론이 높았지만 실제 결과는 수입을 강행한 차이잉원 정부의 승리였다. 그 결과 대만은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 전 단계인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체결을 위한 마지막 걸림돌을 없앴다. FTA는 국가 간 협정인 만큼 ‘하나의 중국’을 고수해온 중국은 대만과 미국의 TIFA 체결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

돼지고기 수입으로 대만이 미국과 간극을 좁혔듯, 이번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조치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일본 정부는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집단 자위권을 발동하겠다”고 거론하는 등 대만 문제를 놓고 사사건건 중국과 맞붙고 있다. 일본이 대만의 확실한 우군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이에 보답하듯 대만마저 수입 금지 대열에서 이탈함에 따라 일본은 후쿠시마의 굴레에서 벗어날 교두보를 확보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일본 수산물 수입을 금지한 국가는 무려 55곳이었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축하하며 트위터에 올린 일본 국민을 위한 동영상 메시지. 트위터 캡처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지난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축하하며 트위터에 올린 일본 국민을 위한 동영상 메시지. 트위터 캡처


특히 대만은 일본이 주도하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지난해 9월 가입 신청을 했다. CPTPP는 회원국에 요구하는 무역자유화 수준이 높아 후쿠시마 식품 수입 금지는 가입 제한 사유가 될 수 있다. 미 해리티지재단이 지난해 발표한 경제자유화 지수에 따르면 대만은 세계 6위로 CPTPP 회원국 평균(31위)보다 훨씬 개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CPTPP 가입은 대만이 대중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대만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세계무역기구(WTO)에 회원으로 가입했지만 2020년 한중일 3국과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등 15개국이 서명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는 중국의 반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중국은 대만 수출의 42%를 차지하고 있어 대만에 대한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조국 통일’을 주장하는 중국의 위협에 맞서려면 대만이 중국의 경제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 급선무인 셈이다. 블룸버그는 “대만의 이번 조치로 일본과 한층 긴밀한 유대관계를 다져 나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농민의길, 한국농축산연합회, 한국수산업경영인연합회, 한국임업인총연합회 등으로 구성된 'CPTPP 가입 중단을 위한 농어민 공동행동' 대표자들이 지난달 12일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저지를 위한 농어민단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농민의길, 한국농축산연합회, 한국수산업경영인연합회, 한국임업인총연합회 등으로 구성된 'CPTPP 가입 중단을 위한 농어민 공동행동' 대표자들이 지난달 12일 청와대 앞 분수대광장에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 가입 저지를 위한 농어민단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대만이 발 빠르게 대세에 편승하면서 한국 정부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한국은 일본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현 등 8개 지역의 수산물에 대해 수입금지 조치를 내렸고, 이에 이의를 제기하는 일본을 상대로 WTO에서 승소판정까지 받았다. 하지만 올 4월 CPTPP 가입을 신청할 방침이어서 대만의 선례를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다만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지난달 20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는 국민 건강을 위한 조치로, 한국 정부는 CPTPP 가입과 연계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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