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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을 지우면 세상이 더 좋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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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성차별 없다, 여가부 폐지 등
윤석열 후보 생각의 근거는 무엇?
성차별 존재부정이 차별현실 못 가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인터뷰로 주초부터 소란스럽다. "여성가족부는 역사적 기능을 이미 다해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 "여성은 불평등한 취급을 받고 남성은 우월적 대우를 받는다는 건 옛날 얘기" 등등의 발언이다. 정의당 심상정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즉각 비판적 입장을 표명했고 한국여성단체연합 외 수십여 개의 여성단체가 공동성명을 통해 우려를 표했다.
윤 후보의 말을 해석해 보면, 한국사회에 더 이상 성차별은 존재하지 않으며 있더라도 개인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사건이지 제도나 문화, 관행 속에 내재된 구조적인 문제는 아니라는 것, 그러므로 여성가족부 같은 기구를 만들어 국가가 규제할 이유는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말대로 중도와 보수, 젊은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이 누구인지도 충분히 짐작이 가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첫째, 근거가 무엇인가? 한국 사회에 더 이상 성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의 증거는 무엇인가? 수많은 국내외 학자들과 전문가들,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까지 채용과 임금·승진, 출산·육아 등 근로조건과 성폭력 관련해 성별 격차와 차별 현상을 지적해 왔다. 그것들은 모두 거짓인가? 2019년 미국 캔자스대 김창환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 노동시장에서 성별 격차가 가장 작다고 알려진 20대 대졸자에서조차 남녀 소득격차가 나타났다. 출신대학과 세부전공 등 가능한 모든 인적자본을 통제한 결과 대학 졸업 후 2년 이내 여성의 소득은 남성보다 19.8% 작았다. 대학 순위별로는 상위권 대학 출신의 여성이 2년제나 하위권 4년제 대학 졸업 남성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았다. 김 교수는 한국 노동시장에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고 결론짓고,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한국의 고속성장 신화의 이면에는 성차별적 저임금이 있고 아직 이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보았다.
둘째, 여가부 폐지 그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윤 후보는 지난 1월 초 여가부를 폐지하고 아동·가족·인구를 다루는 부서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여가부의 업무가 아동·가족·인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이 분야의 업무들만 생각해봐도 성평등 관점 없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을까? 아동은 누가 키우나? 가족은 누가 돌보나? 초저출산사회에서 출산의 주체는 누구인가? 여성과 남성이 가족과 직장에서 함께 책임과 권리를 나누는 사회가 아니라면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할 수 없다. 성평등 사회에 대한 비전 없이 아이를 낳고 가족을 돌보라는 국가의 요구나 금전 공세에 여성들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여성단체들의 공동성명은 윤 후보의 말을 되받아 "성차별에 무지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야말로 '옛날 얘기'"라는 말로 시작한다. 1960년대부터 30여 년간 산아제한정책이란 이름으로 국가는 여성의 몸을 쉽게 통제할 수 있었다. 20대 후반이 되면 결혼해서 남편과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여성의 역할이라는 고정관념도 국가정책의 기조로 깔려 있었다. 성차별에 대해 무지했던 사람들이 대통령으로 군림하던 시대의 이야기다.
21세기 국가정책에서 '여성'을 지우고 '성평등'을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여성의 목소리를 음소거시키고 그들을 그림자노동으로 묶어두고 '세상에 차별은 없다'고 외친다고 해서 불평등한 현실이 사라질까? 여성을 지워버린 사회는 또 다른 누군가를 지우기 위해 목표물을 찾지 않을까? '여성'이 삭제된 사회에서 우리는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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