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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핑크의 편지

입력
2022.02.08 20:00
25면

편집자주

바야흐로 ESG의 시대다. 기업, 증시, 정부, 미디어 등 모든 곳에서 ESG를 얘기한다. 대세로 자리 잡은 'ESG의 경영학'을 하나씩 배워 본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EO인 래리 핑크. 로이터 연합뉴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EO인 래리 핑크. 로이터 연합뉴스

매년 초가 되면 세계 주요 기업의 경영진들에게 매우 관심을 끄는 편지 한 통이 도착한다.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CEO인 래리 핑크(Lawrence Douglas Fink)가 자신이 투자한 회사 경영진들에게 보내는 연례 서한이다. 2022년 2월 현재 10조 달러(한화 1경2,000억 원) 이상의 투자자산을 운용하면서 세계 금융시장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자산운용사의 CEO가 자사의 투자 지침을 투자대상 업체에 밝히는 내용이니만큼 투자를 받고 있는 기업의 경영진이라면 그의 투자전략의 핵심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깊은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지난 2020년 연례 서한에서 그는 기후 변화에 대해 기업들의 적극적 대응을 주문하였고, 그 결과에 따라 블랙록의 투자 방침을 결정하겠다는 투자전략을 공개하였다. 이 서한이 기업과 사회에 미친 파장은 실로 지대하였다. 기업들은 그동안 정부 정책이나 법규, 환경단체의 요구에 대응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발 빠른 대응을 하기 시작했다. 엄청난 비용과 기술적인 문제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 온 2050 탄소중립에 대해서도 매우 전향적인 자세로 변하였고, 2050 탄소중립을 넘어서 2040, 심지어는 2030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모범생(?)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장을 움직이는 원동력 측면에서 정부의 규제보다 자본시장의 힘이 훨씬 더 크다는 것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큰 변화를 이끌고 있는 래리 핑크에 대하여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예방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자본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인 그가 마치 혼자 깨어 있는 사람인 양 하면서 좋은 이미지 획득과 함께 시장을 흔들며 막대한 자본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기도 한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에서 칭찬과 비판을 동시에 받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비판이 부담스러웠을까? 그는 이번 2022년 연례 서한에서는 '자본주의의 힘(The Power of Capitalism)'을 제목으로 뽑으면서 그동안 그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나 기후 위기를 강조해 왔던 이유를 설명했다. 즉, 그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정치적인 논의나 사회적·이념적 논의가 아니며 장기적인 수익을 추구하기 위함'이라고 적시하였다. 또한 그는, 블랙록이 지속가능성에 집중하는 이유는 그가 '환경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자이기 때문'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였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도 ESG의 열풍이 거세게 불어오면서 일부에서는 우리나라 기업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이라며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하기도 하고, 또 다른 일부에서는 우리 기업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며 마뜩지 않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다. ESG를 기업의 문제로 보지 않고 정치적인 문제로 연결시키는 경우 지지와 비판의 괴리는 더욱 크게 나타난다. 특히, 탄소중립의 방법론에서 원자력을 둘러싼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대립이 매우 큰 한국사회에서, 진영 논리로 ESG를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은 기업들의 행보를 무척이나 어렵게 만든다.

래리 핑크는 이상향을 추구하는 정치가가 아니라 많은 투자자들이 맡긴 돈을 크게 부풀리는 일을 하는 자본시장의 주요 인사다. 그에게 이상향을 추구하는 정치가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지지하는 것이 온당치 않듯이 그런 모습을 가정해서 비판을 하는 것 또한 옳지 않아 보인다. 다만 자본시장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그가 탐욕스러운 방법이 아닌 지구의 미래와 주변의 모든 이해관계자와 함께 발전해야 한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미래를 밝게 해주는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이형희 SK SUPEX추구협의회 SV위원장·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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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희SK SUPEX추구협의회 SV위원장·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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