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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의 눈부신 노을… 조선 궁녀 ‘홍덕이’도 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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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 바로 아래에 ‘홍덕이밭’이 있어요. 홍덕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 간 봉림 대군(효종)을 수행한 궁녀입니다. 타국에서 봉림 대군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제대로 먹지 못하니 홍덕이 채소를 길러 김치를 올렸고, 봉림 대군은 그 힘으로 견뎠다고 합니다.”
낙산공원 전망대에서 대학로와 종로 방향 도심 풍경 너머로 노을이 눈부시다. 김도경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나중에 조선으로 돌아와 왕위에 오른 효종이 어느 날 수라상에 올라온 김치 맛이 익숙해 물어보니, 홍덕이라는 여인이 만들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홍덕을 불러 소원을 들어주마 했지만 끝내 거절해 낙산 자락에 땅을 하사했습니다. 홍덕은 이 밭에서 기른 배추와 무로 김치를 만들어 계속 효종에게 바쳤다고 합니다.”
4일 오후 서울관광재단이 운영하는 ‘서울도보해설관광’에 참가해 ‘낙산성곽’ 코스를 걸었다. 흥인지문에서 출발해 낙산공원을 거쳐 마로니에공원까지 걷는 도심 관광이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한양도성에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실타래처럼 풀어진다. 너무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쳤던 풍경이 생동감 있게 되살아난다.
한양도성 8개 문 중 흥인지문만 왜 4글자일까, 왜 이 문에만 항아리 모양의 옹성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푸는 것으로 시작해 옛 이화여대 병원과 창신동 사이 언덕으로 연결된 성곽을 따라 올라간다. 길은 성곽 안팎으로 연결되지만 되도록이면 바깥으로 걷는다. 안에서는 낮은 여장(女牆)만 보이지만, 밖으로 걸으면 성곽의 역사를 파악할 수 있다. 태조 때 쌓은 한양도성은 여러 차례 고쳐진다. 처음에는 자연석을 이용했고, 세종 때는 모서리를 동글동글하게 깎은 작은 돌로 쌓았다. 숙종 때 가로세로 45cm로 규격화한 돌은 영조 때 60cm로 커진다. 성돌의 모양과 색깔이 다른 이유다.
낙산 중턱쯤에서 비밀 통로인 암문을 통해 이화동으로 들어간다. 바깥과는 완전히 딴 세상이다. 광복 이후 지은 집들이 성곽에 바짝 붙어 좁고 경사진 골목을 형성하고 있다. 오래된 골목으로 창을 낸 공예품 가게와 개성 넘치는 카페가 층층이 이어진다.
계단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낙산 정상이다. 해발 125m에 불과하지만 전망은 서울 도심을 두루 품고 있다. 남쪽으로 흥인지문, 서쪽으로 종로와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도심의 고층빌딩이 펼쳐지고, 북동쪽으로는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낙산은 조선시대부터 ‘동천’이라 불리며 한양도성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으로 평가되었다. 사대부와 왕족들이 주변에 정자를 짓고 낙산 전망을 즐겼다고 한다. 홍덕이가 애틋하게 바라봤을 궁궐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해질녘 풍광이 특히 아름답다.
‘낙산성곽’ 코스는 이곳에서 이화동의 가파른 골목을 거쳐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마무리된다. 그러나 김도경 해설사가 추천하는 길은 따로 있다. 낙산에서 다시 성곽 바깥으로 나가 혜화문까지 걷는 길이다. 이 구간 성곽은 곡선이 부드러우면서도 시대별 성돌의 특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성곽 경사면에 옹기종기 달라붙은 삼선동의 장수촌 마을과 북한산을 병풍처럼 두른 성북동 풍경도 정겹다.
서울도보해설관광은 현재 궁궐·왕릉·한옥마을·성곽길·도시재생·건축과 예술·전통과 문화·순례길 8개 테마와 장애인 코스를 포함해 총 34개 코스를 운영 중이다. 전문 교육을 받은 문화관광해설사가 여행 코스에 깃든 역사, 문화, 자연 등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준다. 해설은 무료지만 고궁이나 박물관 입장료는 참가자가 부담한다. 기존에는 신청자가 3인 이상일 경우만 진행했지만 코로나19 이후에는 한 명만 신청해도 해설사가 배정된다. 서울도보해설관광 홈페이지(korean.visitseoul.net/walking-tour)에서 코스를 확인하고 예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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