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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펨테크를 아시나요" 여성건강 위해 세이브앤코 창업한 박지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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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예요. 그런데 아직도 우리는 성을 부끄러워하고 금기시해요. 그렇다 보니 자신의 성을 올바르게 알고 건강하게 관리하는 법을 모르죠. 이를 해결하고 싶어요."
그렇게 박지원(37) 대표는 2018년 여성들을 위해 정보기술(IT)을 활용하는 펨테크(femtech) 분야의 신생기업(스타트업) 세이브앤코를 창업했다. 세이브(saib)라는 사명은 세상의 편견을 바로잡고 싶어서 편견이라는 뜻의 영어단어 bias를 뒤집어 사용했다.
그가 집중하는 분야는 섹슈얼 웰니스, 즉 성 건강이다. "우리는 이제 관심을 갖지만 해외에서는 성 건강이 중요한 미래 사업이 됐어요. 생리부터 성 생활 등 여성보건과 임신 출산이 모두 여기에 들어가죠."
박 대표는 이 사업으로 깜짝 놀랄 만한 상을 받아 주목을 받았다. 그는 지난해 말 국제 비영리단체 쉬 러브스 테크(She Loves Tech)가 주최한 제7회 세계 여성 스타트업 경진대회에서 50개국의 4,000여개 기업들을 제치고 3위에 올랐다. 1위는 영국 스타트업 카드메딕, 2위는 미국의 리쓰리디가 차지했다.
여성이 창업했거나 여성 관련 서비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여성 창업 경진대회인 이 대회에서 국내 스타트업이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주최측은 박 대표의 성 건강 사업이 세계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한 것이다. 서울 노량진로에 위치한 세이브앤코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비결을 들어봤다.
박 대표가 처음 개발한 제품은 2018년 9월 출시한 여성용 '프리미엄 콘돔'이다. 남성이 아닌 여성용 콘돔이라니 왠지 낯설다.
그동안 여성을 배려한 콘돔은 없었다는 것이 박 대표 생각이다. "라텍스 고무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니트로사민이라는 발암 물질이 들어간 콘돔이 많아요. 니트로사민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죠. 콘돔은 여성의 몸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피부에 바르는 것보다 유해물질 위험도가 42배 더 높다고 알려져 있어요. 여기에 경험을 좋게 하기 위해 유해 성분이 들어간 향료나 색소, 사정지연제와 살정제 등을 첨가하면 질염이나 성병 감염 위험이 커져요."
그래서 여성들의 건강을 해치지 않도록 유해 성분을 배제한 콘돔을 개발했다. "니트로사민 제거 공정을 따로 거쳐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의 안정성 시험을 거쳐야 판매 승인을 받기 때문에 니트로사민이 들어가지 않아도 기능이 동일해요.”
눈길을 끄는 것은 포장이다. 여성들이 편안하게 구매할 수 있도록 얇은 금속의 납작한 케이스에 콘돔을 담아 판매한다. 케이스만 보면 콘돔인지 알 수 없다. 덕분에 이 콘돔은 레드닷, 아이디이에이, iF 등 세계 3대 디자인상을 비롯해 무려 16개 국제 디자인상을 휩쓸었다.
금속 케이스를 사용한 까닭은 미적 감각과 더불어 콘돔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사용감을 높이려고 콘돔을 점점 더 얇게 만들다 보니 작은 마찰과 체온에도 쉽게 손상돼요. 최악은 콘돔을 지갑에 넣는 경우죠. 잘 찢어지거든요. 금속 케이스를 사용하면 마찰로부터 콘돔의 파손을 막고 햇빛과 체온으로부터도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죠."
덕분에 이 제품은 최근까지 편의점과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78만 개가 팔렸다. "20, 30대 MZ세대들은 개방적이면서 스스로 건강을 많이 챙겨 콘돔도 적극적으로 골라요. 금속 케이스 안에 콘돔 3개가 들어있는 제품 가격이 7,900원으로 비싼 편인데도 많이 팔렸어요."
우리나라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구매 연령에 제한이 없는데도 콘돔 판매에 어려움이 많다. 국내 포털들은 콘돔을 성인용품으로 분류해 미성년자들이 광고나 판매처 등 콘돔 정보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청소년들에게 콘돔은 알면 안 되는 물건이라는 부정적 인식과 구매를 꺼리는 잘못된 습관을 심어줄 수 있다. "국내에서는 성 관련 제품을 무조건 성인용품으로 분류해요. 성 경험 연령이 14세로 낮아졌는데 청소년들에게 콘돔을 팔지 않는 편의점이 많아요. 폭력적인 행위죠. 그래서 청소년들이 비닐 봉지로 피임하는 불상사가 발생해요. 청소년들 사이에 성 경험이 일어나는 것이 사실인 만큼 안전하도록 돕는 것이 어른들 도리죠."
해외는 제한적으로 콘돔 광고를 허용한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은 만 18세 이상에게 콘돔 광고를 허용해요. 다만 선정적이거나 쾌락을 강조하는 광고는 하지 못해요."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콘돔 사용법을 가르치는 학교도 별로 없다. "성 교육 시간에 실질적인 콘돔 사용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학문적인 이야기만 하고 끝나죠. 어느 교사가 콘돔 사용법을 가르친다며 바나나와 콘돔을 가져오라고 했다가 학부모들의 항의로 취소한 적이 있어요. 이런 교육이 꼭 필요한데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니 성인이 돼서도 콘돔을 사용하지 않아요."
이는 고스란히 낮은 콘돔 사용률로 이어진다. "2017년 기준 한국의 콘돔 사용률은 15.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가장 낮아요. 많은 남성들이 콘돔 사용을 피하기 때문이죠. 우리는 피임에 대한 결정권을 남성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피임을 하지 않았을 때 갖는 부담과 위험은 여성이 더 크죠. 미국은 여성이 피임약을 먹거나 피임시술을 했어도 무조건 콘돔을 사용해요."
박 대표가 만든 다른 제품은 '러브 젤'로 부르는 여성 윤활제 '네츄럴 수딩 젤'과 여성청결제다. 윤활제 역시 많은 사람들이 성인용품으로만 알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대부분 의약품으로 분류된다. 윤활제가 성병을 막아주고 피임을 돕기 때문이다. "윤활제는 성 관계를 가질 때 아픔을 줄여주고 진정 작용을 해요. 특히 신체 구조상 상처 나기 쉬운 여성들이 있는데 이때 균의 감염을 막아주고 정자의 운동성을 떨어뜨려 피임을 돕죠."
그런데 국내에서는 윤활제를 화장품으로 분류한다. 따라서 신체 내부에 사용하는 데도 안전 기준이 신체 외부용 화장품에 맞춰져 있어 문제다. "보습제에 많이 들어가는 글리세린을 사용한 윤활제는 문제가 돼요. 질 내부의 상피 조직을 손상시켜 질염 등 감염 위험을 높이죠. 여성 건강을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윤활제를 의약품으로 분류하면 좋겠어요."
그가 지난해 5월 개발한 윤활제는 글리세린 대신 식물성 유산균과 크랜베리 추출물을 사용했다. "여성 건강에 좋다고 알려진 락토바실러스 유산균을 활용했어요. 이후 크랜베리와 식물성 유산균을 활용한 원료 '크랜프로비'를 개발해 2021년 한국과 미국에서 특허 출원했죠."
특허 재료인 크랜프로비는 이달 중 나오는 고체형 여성청결제에도 들어간다. 이 제품은 쓰레기를 전혀 만들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 제품이다. "종이비누형태여서 물에 녹아 사라져요. 포장도 물에 녹아 쓰레기가 전혀 나오지 않죠."
박 대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통념을 뒤엎는 신제품을 준비 중이다. 기존 윤활제와 반대로 임신을 돕는 윤활제다. "임신을 원하는 여성들을 위해 질 내부의 산성도를 바꿔 염기성을 띤 정자가 활동하기 좋은 상태를 만들어주는 윤활제죠. 그동안 국내 제품이 전혀 없어 해외 직구로 많이 사서 썼는데, 하반기에 자체 개발한 제품을 출시해요."
여성들의 생식 건강에 좋은 건강기능식품도 준비 중이다. "크랜프로비를 이용한 여성용 유산균 식품을 6월께 출시해요.”
원래 박 대표는 디자이너 출신이다. 이화여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자인 전문업체 데어즈를 창업했다. 데어즈를 3년간 경영한 그는 미국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로 유학을 가서 석사 과정을 마쳤다. "데어즈를 경영하면서 금융기술(핀테크) 기업 렌딧의 김성준 대표와 사회적기업을 공동창업해 기부를 일상화하는 이분의 일 사업도 진행했죠."
이후 29세 때 미국 텍사스대학교에서 디자인학과 교수가 돼 6년간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결정적인 일을 겪었다. "학생의 과제물이 창업 계기가 됐어요. 주변의 사회문제를 해결할 만한 디자인 아이디어를 가져오라고 과제를 냈는데 2주 뒤 얌전한 여학생이 콘돔을 주제로 과제를 발표해 깜짝 놀랐죠. 미국 대학은 학교 의무실에서 콘돔을 무료로 나눠주는데 이를 이용해 '세이프 섹스'라는 조형물을 만들어 학생들이 금요일마다 파티하는 거리에서 가져가게 하자는 내용이었어요."
그에게는 이 발표가 충격이었다. "성을 대하는 학생들의 담담하고 성숙한 태도를 보고 저를 돌아봤어요. 그때까지 학교나 집에서 제대로 된 성 교육을 받은 적이 없어서 성에 대해 모르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죠. 콘돔을 만져보거나 사본 적도 없었어요. 자신을 돌보는 일에 무지했다는 생각에 창피했어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었죠."
그래서 박 대표는 "처음으로 콘돔을 사봤다"는 댓글에 감동 받는다. 창업의 목적과 진심이 사람들에게 통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땅에서 펨테크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성이 성 관련 제품을 다루는 것을 불편하게 보는 시각들이 있어요. 부모님부터 그러세요. 경상도 출신의 아버지는 오랜 세월 공무원이셨고 어머니는 간호학과 교수여서 굉장히 보수적인 집안이죠. 어머니는 필요한 일이지만 굳이 네가 해야 되냐고 하셨고, 못마땅하게 보시던 아버지는 지금은 응원하지만 여전히 불편해 하시죠. 채용에도 어려움이 많아 생각이 같은 거리낌 없는 사람들을 뽑아요."
남녀차별적인 시각 때문에 공격을 받는 일도 많다. "남녀 갈등이 심해지면서 여성 관련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공격의 빌미가 돼요. 각종 악성 댓글로 조리돌림을 당했죠. 여성을 위한 사업은 시장의 절반을 포기하는 셈이어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시장을 보니 너무 남성 쾌락에만 초점을 맞춘 남성편향적이에요. 우리 하나 쯤 여성을 외쳐도 되겠다고 생각했죠."
지금은 응원하는 남성들도 많이 늘었다. "구매자의 절반 가량이 남성이에요. 여성 혼자만 쓰는 제품들이 아니고 포장도 예쁘다 보니 남성들이 선물용으로 많이 사요."
올해 박 대표는 해외 시장을 본격적으로 뚫을 예정이다. "전 세계 30개국에서 주문을 받는 ‘세이브닷코’라는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었어요. 국내에서 배송하기 때문에 세계 각국의 인허가 제약을 받지 않죠. 이를 이용해 올해를 해외 진출의 원년으로 삼을 계획입니다."
장기적으로 그는 여성의 생애 주기에 맞는 건강 제품들을 다양하게 내놓는 것이 목표다. "결혼 전 피임용품부터 출산 후 건강용품까지 다뤄야죠. 건강분야에서 나중에 즐거운 성생활을 위한 분야까지 확장할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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