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석탄과 함께 일자리 2만~3만개 사라진다... 곧 닥칠 '일자리 쓰나미'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건 이제 더 이상 북극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의 밥상물가, 일자리,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면면을 상, 중, 하 총 3회로 짚어봤습니다.
"전체 직원 320명 중 239명이 전국 각지로 흩어지거나 퇴사했죠."
1973년 준공된 전남 여수시 월내동의 한국동서발전 호남화력발전소는 작년 말을 끝으로 가동이 중단됐다. 정부의 '탈석탄' 계획에 따라 발전소 내 일부 설비를 폐쇄한 경우는 있었지만 시설 전체가 문을 닫은 것은 처음이었다. 이승남 동서발전노조 호남화력지부장은 "거대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실감했다"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지만 직원들 입장에선 두려움이 큰 게 사실"이라고 했다.
동서발전 울산화력발전소에서 10년 넘게 일해온 A씨에게도 지난 설 연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우울한 시간이었다. 2차 하청업체 소속인 그는 지난달 말 일자리를 잃었다. 울산화력의 기력발전 4·5·6호기가 가동을 중단해서다. A씨는 "회사가 1차 하청인 한전KPS와 1년 단위로 입찰을 하고 고용은 승계되는 식이었는데, 발전소 가동이 중단되면서 자연스럽게 재계약이 안 된 것"이라며 "다른 곳을 알아보려 해도 화력발전소가 감소하는 추세라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는 위기이자 기회. 이 말이 가장 어울리는 곳이 바로 산업계와 고용시장이다. 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과 에너지 구조를 저탄소 경제체제로 바꾸는 과정에서 일자리와 산업 지형도에 지각변동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핵심은 희생을 최소화하고 혁신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산업전환'이 전 사회적 과제로 떠오른 이유다. 가장 먼저 변화를 체감하는 사람들은 화력발전소 노동자들이다. 지금 화력발전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저무는 산업' 종사자들이 처한 현실과, 필요한 대책이 무엇인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2034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60곳 중 30곳을 폐쇄하기로 했다. 한국노총 공공노련에 따르면 전국의 화력발전소에서 일하는 이들은 총 2만2,000여 명. 사라지는 30곳 중 24곳을 액화천연가스(LNG) 복합발전소로 대체한다지만, 그렇더라도 절반에 가까운 1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화력발전소 예방정비공사에 투입되는 단기 노동자 3만여 명까지 합하면 최소 2만~3만 개의 일자리가 증발할 수 있다.
더구나 이 숫자는 2020년 발표된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바탕한 것이다. 작년 10월 탄소중립위원회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당초 26.3%에서 40%로 상향 조정했다. 올해 발표될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선 이 목표를 반영해야 한다. 화력발전소가 더 많이, 더 빨리 없어질 것이란 얘기다.
화력발전 노동자들은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다. 운이 나빠 먼저 매를 맞게 된 사람들은 짐을 싸느라 바쁘다. 여수 호남화력의 320명 중 209명은 동서발전의 다른 화력발전소가 있는 충남 당진이나 울산광역시, 강원 동해 등으로 배치를 받아 이동했다. 울산 화력발전 4~6호기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은 주로 강원 강릉의 안인발전소로 근무지를 옮겼다. 1차 하청업체인 한전산업개발노조 박상대 지부장은 "폐쇄되는 걸 알고 있었는데도 막상 닥치니 직원들의 동요가 컸다"며 "대부분 20년 넘게 울산에서 일한 사람들인데 연고도 없는 강원도로 가야 하니 막막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 더 큰 공포는 짐을 또 싸야 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화력발전 인력을 새로 짓는 LNG 발전소로 재배치할 예정인데, 문제는 LNG도 과도기적인 대안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LNG 역시 결국엔 퇴출될 발전원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보면 LNG는 없어지거나 전체 발전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로 축소된다. LNG 발전소 건립 계획 중 상당수가 좌초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울산화력발전 노동자들과 면담을 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실 관계자는 "당장 이동을 하는 것보다 이번이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걱정을 털어놓는 이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사실 재배치라도 되는 이들은 행복한 경우다. 비정규직이나 하청업체 노동자 중엔 아예 일자리를 잃는 사례도 있다. 호남화력은 케이티엠(12명), 울산화력은 아전이엔씨(24명)와 계약해지를 했는데, 모두 경상정비를 담당하는 2차 하청업체였다. 2017년 폐쇄된 서천 1, 2호기와 영동 1, 2호기, 2020년 폐쇄된 보령 1, 2호기에서도 정년퇴직자 등을 제외하면 비정규직 39명만 일자리를 잃었다.
LNG 발전소로 전환되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하청업체가 해오던 석탄을 나르고 환경물질을 저감하는 설비를 관리하는 업무가 필요 없어지기 때문이다. 남태섭 공공노련 정책기획실장은 "LNG로 연료전환이 이뤄질 경우 전환 과정에서 원청사 일자리는 25% 감소하는 반면 하청업체가 맡는 연료환경 일자리는 100% 감소하는 등 업무영역이나 고용형태에 따라 피해가 불평등하게 발생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앞으로다. 현재까지는 신규 채용을 줄이거나 신규 가동되는 발전소에 재배치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2024년 이후엔 전환배치 여력이 소진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화력발전 고용위기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폐쇄된 발전소의 상황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았지만 앞으로 폐쇄될 발전소의 고용위기는 매우 심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직은 ‘질서 있는 퇴장’을 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일자리 쓰나미'가 현실로 닥칠 것이란 얘기다.
화력발전과 함께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분야는 자동차 산업이다. 양적·질적 파급력은 이쪽이 더 크다. 완성차 부문만 12만6,000명, 협력사는 약 22만 명이 종사하고 있으며 정비나 주유 분야까지 합치면 파장을 가늠하기 힘들 정도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차에 비해 부품 수가 30~40%가량 적어 하청업체나 정비 분야에선 절반 가까이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다만 아직까지는 위기의식만 고조된 '폭풍전야'의 상황이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현대차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아직 기존의 내연기관차 물량이 크게 줄지 않고 있어 일자리를 잃거나 회사가 문 닫는 사례가 많지는 않은 단계"라고 전했다. 한병화 유진투자증권 이사는 "자동차는 관련 산업의 종사자가 워낙 많아 전기차로의 전환이 본격화되기 시작하면 대혼란이 펼쳐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동차뿐 아니라 철강이나 석유화학, 시멘트, 정유산업 등도 중장기적으로 보면 기후변화로 대규모 인력 감소가 나타날 수 있는 분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당사자들이 참여하는 사회적 논의기구의 틀을 마련하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에너지 전환의 경우 당사자들인 노동자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은 채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실정이다. 장다울 그린피스 전문위원은 "독일의 탈석탄위원회나 스코틀랜드의 정의로운전환위원회, 유럽연합의 정의로운전환메커니즘, 미국의 블루그린동맹 등 앞서 산업전환을 추진한 국가들은 모두 별도의 대화기구를 마련했다"며 "핵심은 노동자와 노조, 지역사회가 전환의 당사자로 논의의 출발부터 참여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