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TV토론 ‘연금개혁’공감 불구
‘표심’ 의식한 후보들 여전히 뒷걸음질
정치적 양심 국민이 지지해야 개혁 가능
여야 유력 대선후보 4명이 최근 TV토론에서 연금개혁을 함께 약속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 힘 윤석열, 정의당 심상정 등 토론 참여 후보 3인에게 개혁의 절실함을 주장하고, 동의를 모은 사람은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다. 안 후보는 3명의 후보가 자신의 주장에 동의하자, “‘연금 개혁은 누가 되더라도 하겠다’는 공동선언을 하자”고 못을 박았다.
대부분 대선공약들은 중요하다. 오락가락하고 있지만, 이 후보의 ‘국토보유세’ 신설론은 매우 의미심장한 화두다. 보수의 타성을 넘어선 윤 후보의 소상공·자영업자 코로나 손실보상 50조 원 집행 공약은 괄목할 만하다. 국회의원과 공공기관 임원 연봉을 각각 최저임금(연봉 환산)의 5배, 7배로 제한하자는 심 후보의 ‘살찐고양이법’ 제정 공약 역시 울림이 큰 얘기이긴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특히 연금개혁 문제에 주목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다른 공약들이 대개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무지개를 그리고 있다면, 연금개혁은 적어도 나라를 망치지는 않겠다는 최소한의 정치적 양심을 확인하는 공약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대로 두면 연금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경고가 꾸준히 이어졌지만, 진짜 그렇게 여기는 국민은 의외로 많지 않은 것 같다. 여차하면 정부가 빚이라도 낼 것 아닌가 하는 낙관이 그만큼 강고한지도 모른다. 이재명 후보는 최근 “재정이 부족해도 국민연금을 지급하지 않는 국가가 없지만 여전히 불안해들 하신다”고 했는데, 재정이 연금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하면, 이미 화폐가치 하락과 인플레이션 등으로 실질 연금소득은 쥐꼬리가 되기 십상인 상식적인 예측조차 외면한 얘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연금을 못 받을 상황이 결코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그런 생각은 마치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 미국과 일본은 물론, 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에 달러를 빌려주지 않는 상황이 닥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이 나라의 정치 지도자들과 경제관료들의 한심한 어리석음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 말고도, 그리스나 프랑스 같은 선진국들까지도 결국 정부가 연금을 감당키 어려운 지경에 몰려 사회가 극심한 진통을 겪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도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같은 이는, 나라를 망치지는 않겠다는 최소한의 정치적 양심과 책임감으로, 임기 내내 격렬한 저항을 무릅쓰면서도 연금개혁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심지어 대통령직과 연계된 자신의 모든 연금을 스스로 포기하기까지 했다. 반면 문재인 정부는 고질이 깊어가는 국내 연금상황을 방치한 채, 아무런 노력조차 없이 지난 5년을 허송세월했다는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누가 되든, 대선후보들이 이번 ‘약속’대로 연금개혁을 이행할지 여부다. 이 후보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거고, 윤 후보는 “안 할 수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안 후보를 제외하곤, 구체적 원칙이나 방향조차 천명한 후보가 없다. 윤희숙 국민의힘 전 의원은 “후보들이 생각하는 연금개혁은 동상이몽”이라며 “심지어 연금액을 올려야 한다는 심 후보의 주장은 ‘더 내고 덜 받는' 개혁을 하자는 안 후보의 인식과 정반대”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가장 우려되는 건 문재인 정부처럼 인기에 연연하다가 누가 당선돼도 아무것도 안 하는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연금개혁론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안 후보의 지지율이 TV토론 후 되레 하락한 건 다른 후보들의 정략적 타산을 부추기기 십상이다. 결국 대선후보들을 정치적 양심과 책임감에 따라 움직이도록 이끄는 힘은 국민의 적극적 행동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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