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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사는 어디로

입력
2022.02.06 18:00
26면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14일 충남도청 회의실에서 열린 육군사관학교 유치추진위원회 출범식 모습. 충남도 제공

14일 충남도청 회의실에서 열린 육군사관학교 유치추진위원회 출범식 모습. 충남도 제공

육군사관학교는 국군의 모체인 국방경비대가 1946년 1월 태릉에 설립되면서 현재 위치에 터를 잡았다. 애초 국방경비대에 간부를 공급하는 경비사관학교로 출발했다가 1948년 정부 수립 직후 육사라는 명칭과 함께 1기생을 모집하면서 지금의 체제를 갖췄다. 국군과 함께 출발했지만 정신적 뿌리는 삼국시대 화랑도에서 찾고 있다. 삼국통일의 초석이 된 신라 화랑의 기개를 계승한다는 취지에서 육사의 별칭도 화랑대다.

□ 음력 정초부터 육사 이전 논란에 불이 붙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가 고향을 방문한 자리에서 육사를 안동으로 이전하겠다는 지역공약을 발표하면서다. 약 40만 평 규모의 예전 36사단 부지로 이전하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취지인데, 민주당 지역 조직은 즉각 환영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보수색채가 강한 지역 민심은 반대 여론이 강하다. “이미 육사를 보유한 고장에 또 무슨 육사냐”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안동은 일제강점기 저항시인 이육사의 고향으로 시인의 아호가 육사(陸史)다.

□ 육사 이전 논란은 안동을 넘어 지역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진작부터 육사 유치전에 뛰어들었던 지자체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국방대와 육군훈련소를 기반으로 국방 클러스터를 꿈꾸던 충남 논산이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양승조 충남지사를 비롯해 지역 정가에서 공약 재검토를 촉구하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대대적 선전전에도 돌입했다. 계백 장군의 황산벌과 인근 계룡대에 육해공 3군 본부가 위치한 입지를 감안할 때 유교적 전통이 강한 안동은 논산의 경쟁 상대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 육사 이전은 참여정부 때 공론화가 시작됐다. 지역균형 발전 차원의 공공기관 재배치라는 명분도 있었지만 태릉골프장을 포함한 164만m²의 넓은 부지는 늘 주택공급 요지로 주목받았다. 이번에도 대규모 택지개발 지구로 거론되면서 이전 논의가 수면 위로 불거졌다. 호국간성의 요람이라는 육사가 개발 논리에 밀려날 처지가 된 셈이다. 이전이 불가피하다면 입지를 선정할 때 정치 논리보다는 군사전략적 목표와 역사적 상징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김정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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