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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 프리즘] 콩팥의 ‘실패’는 때론 ‘성공’이다

입력
2022.02.06 18:1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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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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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영화에 총 맞아 피를 흘리는 사람이 옆 사람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장면이 종종 나온다. 인체의 혈액량은 5L 정도의 피를 흘려 혈액량이 많이 줄어들면 혈압이 떨어져 쇼크를 일으키거나, 심하면 사망에 이른다. 이를 막으려면 물을 마셔 최대한 빨리 혈액량을 보충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소변량도 대폭 줄인다. 성인의 하루 소변량은 1.8L다. 출혈이 생기면 0.5L까지 줄이며, 혈액이 더 부족해지면 아예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 인체는 들어오는 물을 늘리고, 나가는 물을 막아 혈액량을 유지하려고 한다.

이런 상태로 1, 2일 정도는 버틸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상 넘어가면 혈액을 걸러 소변을 만드는 콩팥 기능이 아예 중단된다. 이를 '급성 신부전(acute renal failure)'이라고 한다. 갑작스러운 콩팥 기능 ‘실패’다.

그런데 왜 콩팥은 스스로 기능 중단이라는 극한적인 선택을 하는 걸까? 흥미로운 이론이 콩팥은 ‘실패’를 통해 더 나은 ‘성공’을 얻는다는 것이다.

만약 혈액량이 부족한 상태에서 콩팥이 계속 정상적으로 작동해 소변을 만들어낸다고 가정해보자. 혈액 속 노폐물은 잘 걸러낼 수 있지만, 혈액량이 점점 더 부족해지고 혈압이 떨어질 것이다. 그러면 쇼크가 생기고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래서 콩팥은 작동 중단을 선택해 치명적인 위험으로부터 생명을 지킨다. 이때 급성 신부전은 ‘실패’가 아니라 ‘성공(success)’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급성 콩팥 성공(acute renal success)’이라는 개념이다. 콩팥의 ‘실패’처럼 보이지만, 몸을 살리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성공’이라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성공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좋다. 급성 신부전 원인은 다량의 출혈이나 탈수, 화상, 심한 구토, 췌장염, 패혈증 등이 꼽힌다.

또한 콩팥 질환이나 독성 물질에 의해서도 급성 신부전이 나타날 수 있다.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에 의한 식중독은 용혈성 요독증과 함께 급성 신부전을 초래할 수 있다.

독버섯ㆍ약초ㆍ붕어ㆍ잉어 쓸개를 먹고 급성 신부전을 일으킨 사례들도 보고된다. 물고기 쓸개즙에는 인체에서 분해되지 않는 독성 물질이 들어 있다. 생 쓸개를 먹을 때는 물론, 붕어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고아서 먹을 때도 발생할 수 있다.

또 다른 원인은 요로감염과 요로결석, 요로협착 등이다. '소변 길'인 요로(尿路)는 소변이 처음 만들어지는 콩팥과 요관, 방광, 요도를 통틀어 가리키는 말이다. 요로감염을 일으킨 세균이 콩팥까지 감염시키거나, 하부 요로감염으로 소변 배출이 잘 이뤄지지 않아도 급성 신부전이 생길 수 있다.

급성 신부전이 심하면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 급성 신부전은 대부분 투석 등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회복되지만, 콩팥 기능이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을 때도 있다.

콩팥 독성을 일으키는 성분이 든 식품, 건강식품, 약 등을 먹을 때 콩팥뿐만 아니라 전신 건강을 위해서도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요즘 겨울인데도 노로바이러스에 의한 식중독 사례들이 제법 보고되고 있다. 사시사철 식중독 예방이 중요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김성권 서울대 명예교수(서울K내과 원장)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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