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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진 땅과 바다, 한국인의 밥상이 초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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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로 삶의 터전을 위협받는 건 이제 더 이상 북극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후위기는 이미 우리의 밥상물가, 일자리,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 면면을 상, 중, 하 3회로 짚습니다.
"이미 '대구 사과'는 옛말이죠. 날씨가 너무 뜨겁고 변덕스러워서, 여기서도 사과 농사를 계속 지으려면 더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어요."
대구에서 북쪽으로 100㎞를 더 올라가야 나타나는, 경북 문경시 문경읍에서 만난 노진수 애플스타 대표. 사과밭을 보여주며 올해 농사 지을 얘기를 쭉 들려주다 문득 손가락을 더 높이 치켜들어 뒷산 꼭대기 부근을 가리켰다.
사과 주산지는 이미 대구가 아니다. 사과는 18~22도의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란다. 기후 온난화가 이어지면서 더 서늘한 곳을 찾아 경북 내 가장 북쪽, 문경과 상주 일대로 올라간 지 오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기후 온난화가 계속 이어지니, 이제 문경과 상주에서도 사과밭들은 조금이라도 더 높은 곳을 찾아 이동하고 있다.
노 대표의 사과밭만 해도 해발 350m에 자리 잡고 있다. 주변 다른 과수원에 비해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새 우리나라가 계속 뜨거워지면서 인근 뒷산 해발 960m쯤 되는 곳에 또 다른 사과밭을 준비 중이다.
그냥 뜨거워져서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한층 뜨거워진 날씨는 변덕까지 심해졌다. 노 대표는 사과 농사만 30여 년간 지어 온 베테랑 중의 베테랑. 사과 알이 맺힌 것만 봐도 요놈은 어떤 녀석이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사시사철 종잡을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다.
개화기부터 문제다. 날이 따뜻해지다 5월쯤이면 꽃이 활짝 펴야 하는데, 요즘은 4월부터 피기 일쑤다. 수분시켜 줘야 할 나비 같은 곤충들이 기지개를 펴기도 전이라 수정이 잘 이뤄지지 않을뿐더러, 더러 아직 가시지 않은 냉기에 서리피해까지 입는다. 이럴 경우 나중에 열매가 되는 꽃대 부분이 충격을 받게 되고, 그 충격의 흔적은 고스란히 열매로 이어진다.
여름에는 지나치게 덥다. 예전에 사과 농사를 지을 땐 햇볕을 고루고루 잘 받으라고 사과나무 밑에다 반사판을 대놓기도 했다. 요즘은 그랬다간 한 해 농사를 망치기 십상이다. 여름 기온이 40도에 육박해 그대로 두기만 해도 화상을 입을 정도여서다. 요즘 여름철엔 가림막 치기 바쁘다.
가을엔 장맛비 걱정이다.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잦아진 탓에 해충 약을 뿌리는 횟수가 늘었다. 그래도 약을 덜 치고 싶은 마음에 한때는 약 치는 횟수를 1년에 7번까지로 줄였지만 요즘엔 이 정도론 감당할 수 없다. 보통 비가 30㎜ 이상 오면 약효가 사라진다고 보는데, 해충이 늘고 빨리 번식하다 보니 1년에 15번까지도 약을 뿌려야 한다.
10월 말부터 시작되던 수확기도 가늠이 안 된다. 지난해엔 무더위가 10월 중순까지 지속되더니 이후론 기온이 뚝 떨어졌다. 지구온난화는 더위뿐 아니라 추위에도 영향을 끼친다. 그는 "날씨 진폭이 너무 커져 언제 수확할지를 두고 매년 고심한다"고 말했다.
사과의 재배 한계선은 이미 경북 너머 강원으로 올라갔다. 대구에서 200㎞ 넘게 더 북으로 달려가야 하는 강원 정선은 사과 재배 면적이 2020년 기준 250만㎡까지 늘었다. 2006년까지만 해도 사과밭이 아예 없었다. 반대로 대표적 고랭지 채소랄 수 있는 배추 재배면적은 2008년 1,707만㎡에서 2019년 987만㎡로 쪼그라들었다.
그러니 고랭지 작물 키우는 밭 옆에 사과밭이 붙어 있는 게 크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김건영 정선사과연구회 회장도 1980년대부터 무와 배추 등 고랭지 작물을 키우다 2009년 사과밭을 시작했다. 김 회장은 "10년 전만 해도 연말엔 눈이 50㎝~1m씩 쌓였는데 지금은 눈이 전혀 없다"며 "이곳도 이제 열대야도 생기고 모기까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요즘은 삼척, 태백에서도 사과를 재배한다"고 말했다.
지구온난화, 기후 위기라 하면 대개 떠올리는 이미지는 다 녹아내린 빙하들 사이에서 어디로 갈지 몰라 서성이는 새하얀 북극곰 일가족이다. 하지만 북극곰 못지않게 우리도 어디로 갈지 몰라 서성이게 될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 기후 위기는 생태계에 영향을 끼치고, 이는 우리가 먹을 농수산물 가격에 영향을 끼쳐서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괴롭혔던 '요소수 파동' 같은 '농수산물 파동'이 있을 수 있단 얘기다.
7일 기상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연평균 기온은 13.3도로, 역대 2번째를 기록했다. 봄·가을 기온이 특히 높았고, 7월에는 장마가 끝나기도 전에 폭염이 찾아왔다. 7월 폭염일수는 8.1일로 평년(4일) 대비 2배 길었고, 최고기온은 30.8도에 육박했다. 더위는 10월 중순까지 이어졌고, 이후 기온이 급격히 하강하며 추위가 찾아왔다. 10월 기온 변동폭은 역대 가장 컸다.
한두 해의 일이 아니다. 한반도 연평균 기온은 1980년대 12.2도에서 1990년대 12.6도, 2000년대 12.8도, 2010년대 13도로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봄철 이상고온 현상의 빈도 및 강도가 증가했고, 극한고온 현상 빈도도 1990년대 중반 이후, 특히 2010년대 중반 이후 빠르게 늘고 있다. 반면 겨울철 평균기온의 온난화 추세는 2000년 이후 반전돼 극한저온 현상의 강도가 커지고 있다. 그야말로 '날씨의 양극화'다.
이런 기후 변화는 땅뿐 아니라 바다에도 영향을 끼친다. 한반도 주변 해양의 수온과 해수면 상승률은 전 지구 해양 평균 대비 2~3배 높다. 게다가 고수온과 저수온을 극단적으로 오가면서 태풍은 점점 강해지고, 어획량은 크게 감소하는 등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전남 여수시 화정면 자붕도 옆 가두리 양식장에서 만난 김춘섭 감생이 대표도 요즘 걱정이 태산이다. 연말부터 기온이 영하 10도 수준의 한파가 이어지면서 수온도 뚝뚝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식 어류는 통상 마리당 200g 정도 되는 치어를 길게는 4년씩 키워 600g쯤 되면 파는 방식인데, 이 기간 동안 잘 버텨내야 한다.
김 대표는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최근 양식장을 크게 3등분했다. 먼바다, 가까운 바다, 그 중간 지점의 자붕도 등이다. 김 대표는 “예전에는 대부분의 어종이 양식장 위치에 관계없이 잘됐는데, 이제는 가까운 바다에는 25~30도의 수온을 견딜 수 있는 돔류를, 자붕도에서는 조기 같은 걸 키우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말했다.
3등분이라 해서 문제가 다 해결된 건 아니다. 수온 또한 변덕스럽기 그지없다. 수온을 세심하게 확인하면서 가까운 바다가 너무 뜨거워졌다 싶으면 어선을 동원해 물고기들을 자붕도나 먼바다 쪽으로 옮긴다. 나름 기민하게 대응했다지만, 2020년에는 갑작스런 수온 상승에 우럭 치어 전량이 폐사한 적도 있다. 김 대표는 "당시 수온이 급작스럽게 30도 이상으로 오르면서 미처 손쓸 틈도 없이 3일 만에 모든 게 끝났다"며 "이상기온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종잡을 수가 없으니 매우 난감하다"고 말했다.
땅과 바다의 변화는 농축수산물 가격에 반영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농축수산물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8.7%로 최근 5년 새 가장 높았다. 올해 1월에도 6.3%로, 지난해 11월(7.6%), 12월(8%) 대비 소폭 낮아지긴 했지만 2017년 5.5%, 2018년 3.7%, 2019년 -1.7% 대비 높았다.
생선∙해산물 같은 신선어패류, 신선채소 및 과일 등의 가격을 담은 신선식품지수는 지난해 2월과 3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17.8%, 15.2%까지 치솟았다가 올해 1월에 6%로 잦아들었다. 신선과일 상승폭이 13.8%로 가장 컸고, 신선채소(2.1%), 신선어패류(0.7%) 등이 뒤를 이었다.
당장 겨울이 제철인 딸기만 해도 지난달 초 2㎏ 기준 도매가격이 2만 원 올라 6만200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10월 중순까지 지속된 이상고온 탓에 출하량이 줄어서다. 반면 토마토는 이후 지속된 강추위로 생육이 부진해진 탓에 10㎏ 도매가격이 지난달 4만9,500원으로 1만 원이나 올랐다. 풋고추는 햇살이 적어서 도매 기준 10㎏ 가격이 2만9,500원, 깻잎도 2㎏ 도매가가 1만500원 올랐다. 농산물뿐만이 아니다. 건멸치는 해황(바다의 상황) 악화에 따른 어획량 감소로 공급이 어려워지면서 1.5㎏ 소매가가 2,000원 올랐다.
이는 고스란히 외식물가, 가공식품 가격 인상으로 이어진다. 지난 1월 외식물가 상승률도 전년 동월 대비 5.5% 올랐다. 2009년 2월 5.6%를 기록한 뒤 12년 11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가공식품 가격도 줄줄이 인상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CJ햇반 백미밥 210g짜리 8개 가격이 전년 대비 약 8.6% 올랐고, 대상 종가집 포기김치(3.3㎏) 가격은 3.9% 상승했다. 해찬들 우리쌀로 만든 태양초고추장 1㎏과 청정원 재래식 생된장 1㎏은 각각 전년 대비 0.6%, 46.6% 올랐다. 조미김도 동원에프앤비 양반 들기름김 5g짜리 20봉을 기준으로 지난해 대비 가격이 9.8% 높아졌다.
밥상물가 상승은 식량안보 걱정까지 증폭시킨다.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4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 수준인 데다 그중에서도 곡물자급률은 21%에 그쳐서다. 2020년 환경부가 발간한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를 보면, 2100년 쌀 생산량은 지금보다 25% 감소한다. 이는 수입 의존도를 높이게 되고, 식량 안보에 적신호가 켜지는 결과를 낳는다.
이미 2010년 기상이변이 일어나자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은 곡물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식량의 무기화'가 시나리오에만 있는 게 아니다. 김건영 회장은 "식량에서도 요소수와 같은 일이 없으리란 법이 없다”며 “오히려 농작물은 요소수와 달리 단기간에 급히 생산량을 늘릴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지금부터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등의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김지석 그린피스 에너지 전문위원은 "이런 우려에 대해 우리 정부는 '유통망 다각화' 같은 근시안적 대책만 내놓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근본적인 기후변화 대응과 농가 보호 대책을 고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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