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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치료자 10만에도 허덕대는 정부 … '일본식 재택요양'으로 가나

입력
2022.02.04 18:15
수정
2022.02.04 20:4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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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대응에 재택치료자 방치사례 늘어
월말 10만 확진자 땐 감당할 수 없어
재택요양하려면 '초기치료체계' 급해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이비인후과를 찾은 시민이 음압처리된 진료실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오미크론 대응단계 전환에 따라 동네 병의원에서도 코로나19 감염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연합뉴스

4일 서울 종로구의 한 이비인후과를 찾은 시민이 음압처리된 진료실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다. 오미크론 대응단계 전환에 따라 동네 병의원에서도 코로나19 감염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연합뉴스

오미크론 유행에 따라 코로나19 재택치료자 수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곳곳에서 "재택치료 뒤 며칠간 전화 한 통 못 받았다"는 항의가 속출하고 있다. 하루 수만 명의 확진자가 쏟아져도 확진자의 90%를 재택치료로 소화해내겠다던 당초 방역당국의 큰소리가 헛발질로 드러난 셈이다.

방역당국은 부랴부랴 재택치료 모니터링 횟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관리 가능한 재택치료 인원을 15만 명 수준으로 늘렸다지만, 궁극적으로는 재택치료자들을 관리할 수 있는 동네 병의원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래도 확진자 규모가 더 불어날 경우 '일본식 재택요양'이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본은 저위험군에 속하는 건강한 성인 확진자의 경우 스스로 건강상태를 확인해 필요하다 싶을 때만 보건소에 보고토록 하고 있다.

재택치료자는 폭증 … 관리역량 확충은 게걸음

방역당국에 따르면 4일 0시 기준 재택치료 대상자는 10만4,857명이다. 일주일 전에 비해 2배 이상 늘었을 뿐 아니라 하루 새 늘어난 재택치료자만 2만1,102명이다. 이날 병원, 생활치료센터 등에 배정된 전체 인원의 87%다. 가히 폭발적 수준이다.

방역당국은 부랴부랴 확진자 1인당 하루에 전화를 거는 모니터링 횟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의사 1인당 관리 가능 인원을 100명에서 150명으로 늘렸다. 이렇게 하면 재택치료 관리 인원이 '10만9,000명'에서 단숨에 '15만 명'으로 불어난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재택치료자가 2배, 하루 새 2만 명이 불어나는 추세를 감안하면 관리 가능 인원이 5만 명 정도 더 늘어난 건 그야말로 '언 발에 오줌 누기'다. 거기다 의료현장에서는 '이미 하루에 200~300명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15만 명' 운운은 행정서류상 이야기일 뿐이라는 지적이다.

4일 오후 종로구의 한 이비인후과 병원이 코로나19 검사를 앞두거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오후 종로구의 한 이비인후과 병원이 코로나19 검사를 앞두거나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시민들로 붐비고 있다. 연합뉴스


재택치료 관리 동네 병의원 확충은 아직도 '진행 중'

이 문제는 결국 재택치료 관리시스템을 미리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방역당국의 늦장대응 때문이다.

현재 재택치료 관리 의료기관은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운영됐던 호흡기클리닉 187곳과 보건소, 병원급 의료기관 등 총 494곳이다. 전날에 비해 33곳 늘어났다. 하지만 동네 병의원들은 재택치료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일단 코로나19 검사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동네 병의원 숫자 자체가 이날 기준 285곳에 불과하다. 전날에 비해 78곳이 늘었다곤 하지만, 당초 1,000곳을 내세웠던 정부의 큰소리가 무색한 수준이다. 거기다 아직은 재택관리에 대한 두려움이 많다.

이기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통제관은 "정부로선 되도록이면 동네 병·의원에 재택치료까지 연계되는 모형을 요청하고 있지만, 현실적 어려움에다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으로 신청이 저조하다"고 말했다. 방역당국은 일단 코로나19 검사에 참여하는 동네 병의원 숫자는 4,000여 개까지 늘려 나가고, 이 가운데 재택치료자 관리에 참여하는 곳도 최대한 늘린다는 방침이다.

재택치료 감당 못 할 수준 되면 '재택요양' 고려해야

전문가들은 당분간 정부가 재택치료 관리 역량을 끌어올리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하지만 '동네 병의원 4,000여 개'로 감당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정기석 한림대 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재택치료 확대를 선언한 지 한참 됐는데도 병의원들을 제대로 규합해내지 못한 것은 큰 문제"라며 "동네 병의원 4,000여 개가 모두 재택치료에 투입된다 해도 확진자 규모를 감당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확진자 수 증가세가 가팔라 이달 말 하루 10만 명의 확진자가 쏟아질 경우, 하루에만 9만 명 수준의 재택치료자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식 재택요양 시스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재택요양=환자 방치' 안 되려면 초기치료 체계 갖춰야

재택요양은 코로나19 확진이 돼도 집에서 스스로 건강관리하며 약도 먹고 쉬면서 회복하라는 것이다. 상태가 이상하다 싶으면 스스로 보건소에 보고하고 추가 조치를 문의한다. 물론 무증상, 경증인 저위험군 환자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우리나라의 경우 백신 접종률이 상당히 높은 데다, 오미크론이 위중증으로 가는 비율이 크게 낮은 것으로 확인된다면 시도해볼 만한 시나리오 중 하나로 거론된다. 실제 방역당국도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사태가 진전될 경우 '재택요양은 사실상 환자 방치'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정기석 교수는 "설사 재택요양이 가동된다 해도 질병관리청의 권역별 인프라를 동원, 시군구 단위에서 초기 치료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는지 철저히 관리해야 하고, 대면 외래 진료 시스템까지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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