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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증오의 대선은 없었다

입력
2022.02.07 00:00
26면

트럼프식 증오조장이 판치는 대선
당선돼도 반쪽 대통령, 패자는 사법처리?
대선후보 선출시스템에 문제는 없나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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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당시 많은 사람들은 전에 보지 못했던 광경에 큰 충격을 받았다. 트럼프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이 '힐러리를 감옥으로'(Hillary for Prison)란 피켓을 들고 트럼프를 옹호했던 것이다. 감옥에 갇힌 힐러리를 묘사한 피켓도 등장해서 현장 분위기를 고조시켰는데, 트럼프는 미소로 답했다. 이런 식의 선거 운동을 한 끝에 트럼프는 당선됐지만 그 후 4년 동안이 어떠했는지는 우리가 잘 알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은 자주 말을 바꾸고 근거 없이 자기를 미화하는 버릇이 있어서, 일찍부터 보수 평론가들의 표적이 됐다. 폭스뉴스의 로라 잉그레이엄도 힐러리를 비판하는 책으로 유명해져 인기 높은 TV 뉴스쇼 진행자가 됐다. 힐러리의 자기도취 성향은 자기 아버지가 에베레스트 정상을 처음 등정한 힐러리 경(卿)을 본떠 자기 이름을 지었다고 말한 데서 잘 나타났다. 등산가 에드먼드 힐러리는 1953년 5월에 에베레스트 정상에 올랐고, 힐러리 클린턴은 1947년에 태어났으니까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이처럼 공화당 논객들은 힐러리의 모든 것을 파헤쳐 책으로 펴내고 방송에서 이야기했고, 그 덕분인지 힐러리는 2008년 민주당 후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힐러리의 백악관행을 잘 막았다고 생각했더니 흑인인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사태를 맞은 백인 보수 세력은 결국 거침없는 도널드 트럼프를 공화당 후보로 만들었다. 예상을 뒤엎고 트럼프가 승리를 향해 다가가자 '힐러리를 감옥으로'란 구호가 등장했고 결국 트럼프가 당선됐다. 힐러리는 여러 구설수에 휘말리기는 했지만 연방수사국이나 국세청이 그녀를 범죄 혐의로 수사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상대방에 대한 증오를 이용한 트럼프의 선거 전략이 성공을 거두는 바람에, 힐러리는 패배의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증오를 동원한 트럼프 정치는 미국 정치사에 큰 오점을 남겼고, 그 후유증은 2021년 1월 6일 의사당 난동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우리 대선의 양상이 '트럼프 정치'를 따라가고 있어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 그리고 두 후보를 미는 여론 매체와 지지자들은 상대방의 모든 것을 물고 늘어지는 네거티브 선거에 몰두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포퓰리즘 공약을 남발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모든 것을 비난함으로써 증오와 혐오를 조장하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선거에서 상대방을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번처럼 네거티브가 난무하고 특정 계층과 집단을 적으로 상정해서 분노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선거를 끌고 가는 모습은 전에 없던 낯선 풍경이다. 중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해 외연을 확장하는 전략으로 당선된 대통령은 그를 찍지 않은 사람들의 지지도 얻어 임기 초에는 지지율이 70%가 넘곤 했다, 하지만 선거의 양상이 이번과 같으면 새 대통령은 여전히 반쪽 대통령에 머물고 말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힐러리를 감옥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트럼프가 집권한다고 해서 힐러리가 정말로 감옥을 갈 것으로 믿었던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분노를 자아내기 위한 슬로건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 대선은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 간에 패배한 후보자와 그 주변은 다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양당의 두 후보 본인과 그 주변에 이런저런 하자가 많기 때문이다. 양쪽은 상대방을 두고 검찰 수사가 미온적이라거나 특검을 해야 한다고 치열한 공방전을 치르고 있어서 선거가 끝나도 후유증이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 대선 결과가 승리와 패배를 넘어서 사법적 처리로 연결될 정도라면 후보를 선출하는 우리의 시스템과 정치문화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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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돈중앙대 명예교수·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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