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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을 화살로 쓴 우리 시대의 로빈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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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 하비(Phil Harvey)는 선진국 시민들에게 성인용품을 팔아 번 돈으로 저개발국 여성들이 '콘돔'이 없어서 겪는 비참을 더는 데 쓴 미국인 사회사업가다. 그는 피임-성인용품 마케팅과 온라인 판매가 불법이던 1960년대 말부터 행정-사법 당국과 싸워가며 사업을 시작해 지난 50년 사이 전 세계 수억 명의 회원 고객을 둔 미국 최대 성인용품 유통 브랜드로 성공시켰고, 그 이윤으로 가난한 나라 여성 수십 억 명을 원치 않는 임신과 위험한 낙태- 출산 환경에서 구했다.
개인의 자유를 지상 가치로 여긴 리버테리언(자유지상주의자)인 그는 임신-출산 문제는 원칙적으로 국가가 아닌 개인이 선택할 사안이며, 예외적인 경우가 아닌 한 의사가 판단하는 것도 주제넘은 짓이라 여겼다. 성, 특히 피임-가족계획은 의료-국가적 이슈가 아니라 개인 이슈이자 시장 이슈란 게 그의 판단이었다. 그가 여유 있는 이들에게 콘돔(쾌락)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헐값에 콘돔(안전)을 판 것도, 시혜-수혜의 자선모델이 아닌 철저한 시장 모델을 좇은 거였다. 스스로 '로빈후드 효과(Robinhood Effect)'라 명명한 독창적인 사회사업 모델을 성공시킨 신념의 리베터리언 필 하비가 지난해 12월 2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그의 구상은 1960년대 인도 NGO 봉사활동 현장에서 시작됐다. 61년 하버드대(슬라브어문학 전공)를 졸업하고 약 2년 군 복무를 마친 그는 국제 구호단체 '케어(Care International)' 활동가로 인도 빈민지역 5년 봉사활동을 떠났다. 미국이 실어 보낸 구호물자를 나눠주는 게 그의 주된 일이었지만 그를 힘들게 한 건 불쑥불쑥 치미는 회의감이었다. 자신들이 나눠주는 한 끼 식량이 그들을 구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적 회의.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건 자의식이었다. 그는 분유를 나눠주던 그의 발 앞에 무릎 꿇고 구걸하듯 팔을 내밀던 다 해진 사리(Sari) 차림의 펀자브(Punjab) 여성과 아이들의 모습에 익숙해지지 못했다. 시혜와 굴욕적 수혜의 한 끼 밥보다 콘돔 하나가, 다시 말해 피임과 가족계획이 더 현실적인 해법이 아닐까 생각했다.
69년 귀국한 그는 포드 재단 장학금을 받아 노스캐롤라이나대 대학원 가족계획정책 과정에 진학했고, 거기서 포드 장학생으로 영국서 유학 온 외과의사 팀 블랙(Timothy R.L. Black, 1937~2014)을 만났다. 런던 세인트조지 의대를 졸업하고 아프리카 인도 등지를 여행하며 의료봉사활동을 해온 블랙 역시 가난과 출산(피임 부재)의 질곡을 수없이 보고 겪었고, 어렵사리 조산아 출산을 도운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먹여야 할 입이 늘어났다며' 낙담하던 산모를 보고 충격을 받기도 한 터였다.
의기투합한 하비와 블랙은 69년 말 석사논문 자료조사를 명분 삼아 콘돔 우편 판매를 시작했다. 미국 300여 개 주요대학 교지에 실은 그들의 광고 문구는 "애인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로 뭘 고르시렵니까? 임신?"이었다. 피임용품 우편 판매도, 광고도 불법이던 시절이었다. 그들의 사업은 한 마디로 '대박'을 쳤다.
“What will you get her this Christmas – pregnant?”
1969년 필 하비의 콘돔 우편 판매 광고 카피
둘은 이듬해 대학 인근 카버러(Carrboro)에 '아담과 이브(Adam & Eve)'란 회사를 설립하고, 미국 정부 비군사 원조기구인 '국제개발처(USAID)'의 지원을 받아 '국제인구서비스(PSI)'라는 비영리 가족계획 후원단체를 꾸렸다. 콘돔 매출 수익금으로 가난한 나라 시민들에게 콘돔을 거저나 다름없는 헐값에 판매-보급하는 사업 모델. 그들은 현지인을 매니저로 고용, 가격정책 외에는 일체 간섭 없이 현지 실정에 맞게 판매망을 구축하도록 했고, 매니저 등 판매원 급여 등 적자는 '아담과 이브' 수익금과 후원금으로 보전했다. 2020 회계연도 기준 연예산 4억5,700만 달러 규모로 성장한 PSI는 미국 워싱턴D.C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케냐 나이로비에 지역 본부를 두고 50여개 저개발국에서 의료인력 등 직원 5,000여 명과 함께 여성 보건과 성교육, HIV/AIDS 등 전염병 예방-치료 사업을 벌이고 있다. PSI측은 지난 50년간 1억1,3000만 명의 원치 않는 임신을 막고, 산모 25만여 명의 목숨을 구하고, 근년의 코로나19를 비롯한 전염병으로부터 200만명의 인명 피해를 예방했다고 밝혔다.
원년 CEO 하비는 77년 PSI 운영의 모든 책임을 후임에게 넘기고 이사 겸 후원자로 물러앉았고, 2003년 이사직도 사임했다. 그는 설립자가 무한정 리더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것은 옳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여겼다.
한 해 전인 76년 하비는 PSI 영국 지부를 운영하던 블랙 부부와 함께 재정난으로 청산하려던 런던 휫필드 가 마리스토프스클리닉(Marie Stopes Clinic)을 인수, 이듬해 'MSI 출산 선택(Marie Stopes International Reproductive Choices)'이라는 새로운 단체를 설립했다. 마리 스토프스(1880~1958)는 가족계획의 선구자라 불리는 영국 여성운동가. MSI는 "여성과 소녀가 힘을 얻으면, 가정이 힘을 얻고, 국가와 세계가 강력해진다"는 구호하에, 여성의 피임-낙태 선택권을 옹호하며 의료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활동해온 국제비영리단체. 현재 9,000여 명의 직원이 37개국에서, 근년 하루 평균 3만5,000여 명(통산 3억 2,000여 만 명)의 여성 '고객'에게 원칙적으로 헐값의 유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피임은 의료 문제가 아니라 시장 문제라는 설립자의 판단과 신념을 좇아 MSI 의료진은 '환자(patient)'를 항상 '고객(client)'으로 부르며 응대한다. 블랙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여성의 몸은 국가나 교회로부터 빌린 것이 아니다. 여성의 몸은 그들 자신의 것이다"라고 말했다. MSI 대표는 블랙이 맡았고, 하비는 숨질 때까지 이사로 일했다.
89년 출범한 세계 최대 민간 가족계획 홍보-지원 비영리단체 중 하나인 'DKT 인터내셔널'도 89년 필 하비가 설립한 단체다. 'DKT'란 이름은 하비가 인도에서 만나 친구처럼 지냈다는 무명의 현지 공무원 이름(Dharmendra Kumar Tyagi)에서 따온 것. 하비는 자신들이 밀가루를 배급할 때 티야기(Tyagi)는 열차나 코끼리의 등에 피임을 권장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인상적인 가족계획 캠페인을 벌였다고 소개했다. DKT는 2020년 현재 24개국에 법인을 두고 60여개 국에서 연 평균 4,860만 커플에게 의료 등 다양한 유료 서비스를, 의도적으로 적자를 내면서 제공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국방부는 DKT의 제안에 따라 모든 휴가 군인에게 콘돔을 의무적으로 휴대하도록 하고 있다.
그의 기발하고 도발적인 사회사업은 70,80년대 미국 보수 정부의 눈엣가시였다. 경찰-검찰은 불시 단속 등으로 규제했고 하비는 소송 등을 통해 당국의 탄압에 맞섰다. 77년 하비는 의사 면허 없이 피임용품을 판매하거나 16세 미만 청소년에게 판매하는 행위, 피임용품 광고-전시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한 뉴욕주 교육법이 수정헌법 1조(자유권)와 14조(평등-차별금지) 위반이라며 소송을 걸었다. 뉴욕주 주지사 휴 케리(Hugh Carey)를 피고로 한 이른바 '케리 v.s. PSI' 소송에서 연방대법원은 PSI의 편에 섰고, 주정부는 "피임도구를 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해서 10대 청소년의 성행위가 더 늘어난다는 증거는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다.
86년, 37명의 무장 경찰이 하비의 '아담 & 이브' 사무실을 급습, '음란용품' 일체를 압수하고 그를 입건했다.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법무부 검찰총장 에드윈 미즈(Edwin Meese)가 미국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인 '음란물과의 전쟁'의 일환이었다. 검찰은 전국에 산재한 업체 경영자들에게 즉각 사업을 포기하면 처벌은 면하게 해준다는 조건을 제시하며 괄목할 만한 단속 효과를 거뒀다. 하비는 연방정부를 상대로 '국가권력 남용' 소송을 제기했고, 300만 달러의 법률 비용을 쏟아 부으며 92년 제10항소법원에서 승소했다. 이후 그는 회사를 노스캐롤라이나 채플힐 외곽 힐즈버러(Hillsborough)로 확장 이전했고, 6년 법정투쟁의 전모를 '정부 vs. 성애물(The Government vs. Erotica: The Siege of Adam & Eve, 2001)'이란 제목의 책으로 출간했다. 미국시민자유연맹(ACLU) 당시 의장 네이딘 스트로센(Nadine Strossen)은 책 서문에 "필 하비는 미국 정부의 무자비하고 난폭한 위협으로부터 자신의 사업을 지켜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유사한 압제로부터 개인의 자유를 보장받을 수 있는 법적 선례를 남겼다"고 썼다. 그해 전미도서관협회(ALA)는 그의 책을 지적 자유 신장을 이끈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레이건 행정부는 84년 'global gag rule(재갈 원칙)'이라 불리는 이른바 '멕시코 시티 정책'을 채택했다. USAID 등 미국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NGO는 절대로 낙태를 옹호하거나 관련 의료행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제하는 정책이었다. DKT는 다른 국제NGO들과 함께 수정헌법 1조 위반이라며 USAID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워싱턴D.C 항소법원은 미국 기반 NGO에 한해 저 정책에 구애 받을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저 정책은 93년 클린턴 정부에 의해 아예 폐지됐지만 2001년 조지 W. 부시 집권기에 부활했고, 오바마 정부가 2009년 다시 폐지했고, 2017년 트럼프 정부가 되살렸다.
2006년 부시 정부는 AIDS와 국제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미국 정부 예산을 지원받는 모든 NGO는 성매매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공개 천명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원칙(Anti-prostitution pledge)을 내놨다. 하비는 그 역시 수정헌법 1조가 금한 강제 발언에 해당되며 국제 NGO의 HIV/AIDS 예방 활동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ACLU와 함께 소송을 제기했고, 1심 승소-2심 패소를 거쳐 2013년 4월 연방대법원에서 6대2로 최종 승소했다.
하비는 2010년 시민 자유를 옹호하기 위한 'DKT 리버티 프로젝트'라는 또 하나의 비영리 단체를 설립, 국가권력의 과도한 사생활 개입 의도를 저지하는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왔다. 그는 'The Government vs. Erotica' 외에 자신의 철학과 사회사업 활동을 소개하는 5권의 책을 출간했고, 표현의 자유를 주제로 한 'Can We Take a Joke?(2015)' 등 두 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그는 NGO 자선활동이 시혜자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체로 무척 비효율적이며 심지어 부도덕할 때도 많다고 비판했고, 무상 지원에 치중하는 현대 복지국가 모델은 개인의 자율적 성취의 가능성에 오히려 장애가 된다고 여겨 반대했다.
근년 PSI 예산의 약 70%는 '고객'들이 지불하는 돈으로 충당하며, 나머지는 '아담과 이브' 수익금과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과 개인 후원금, 국가와 국제기구 지원금으로 메꾸고 있다. 콘돔 우편 판매로 시작해 경쟁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성인 비디오와 속옷, 성보조기구 등 토털 성인용품 온-오프라인 사업체로 확장해온 '아담 & 이브'가 저 모든 혁명적 시도의 거점인 셈이었다. 2005년 인터뷰에서 하비는 당시 연 예산 1억 3,000만 달러의 약 80%를 후원이 아닌 독자적인 적자 수익과 2,500만 명 '아담 & 이브' 고객들이 지불한 이윤으로 충당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안정적인 예산 구조가 국가 권력이나 종교인 등 후원자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사업 성공 모델의 기반이었다.
하비는 2013년 DKT 회장직도 내놓고 이사로 지냈지만 '아담 & 이브' CEO 자리는 숨질 때까지 유지했다. 2002년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여유 있는 미국인들에게 쾌락의 도구를 팔아 그 돈으로 저개발국 가족계획에 쓰는 '로빈후드 효과'에서 얻는 기쁨을 포기할 수 없어서'였고, 2015년 인터뷰에서 말한 것처럼 "다 은퇴하면 정신 건강에 나쁠 것 같아서"였다. PSI 현 회장인 칼 호프먼(Karl Hofmann)은 "필 하비는 새 길을 앞서 연 페이스세터(pacesetter)이자 전통적 규칙의 파괴자(rulebreaker)이며, 전 세계 보건과 사회 정의의 지평을 바꾼 영감의 리더였다"며 "PSI는 그의 유무형의 유산을 기반으로, 여성 권리와 보건을 위한 더 폭넓은 조직으로 성장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비는 화가 해리엇 레서(Harriet Lesser)와 1990년 결혼, 레서의 두 자녀와 가정을 이뤄 해로했다. 7년 먼저 별세한 평생 친구 팀 블랙의 장례식에 다녀온 직후, 삶의 교훈을 들려 달라는 인터뷰어의 청에 그는 "당신의 열정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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