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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대가 하다 56년 만에 문 닫았다... 3대가 13년 뒤 다시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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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하는 이보다 말리는 이가 더 많았다. 30대 초반 국내 한 대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며 승승장구하던 진정하(41)씨. 그는 남들이 부러워하던 직장 생활을 접고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자신보다 열 살도 더 어린 친구들과 섞여 제과제빵 기술을 배우는 데 2년을 쏟아부은 진씨는 귀국 뒤 '그래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던지, 전국 유명 빵집에서 종업원으로 일했다. 그리고 고향 포항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2018년 8월 16일 빵집을 다시 열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대를 이어 운영하다 간판을 내린 그곳에 13년 만에 다시 같은 빵집 간판을 내건 것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경북 포항 중앙상가에 자리한 '시민제과'. 1949년 처음 문을 열었다가 56년 만이던 2005년 폐점된 제과점이다. 창업주의 손자가 팔을 걷어붙이면서 다시 태어났다.
시민제과가 자리한 포항 중앙상가 일대는 지명에서 드러나듯 지역의 중심지이자 최대 번화가였다. 포항에서 가장 큰 극장과 백화점, 우체국이 있었고, 시중은행과 유명 의류 브랜드들이 포항에 점포를 낼 때 제일 먼저 자리를 물색해 터를 잡던 곳이다. 휴일은 물론 평일 대낮에도 붐비는 '포항의 명동'이었다.
유명 음식점이 즐비했다. 제과점은 셀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시민제과의 명성을 따라올 수 없었다. 1949년 1대 고 진석률 대표가 찐빵 하나로 ‘시민옥’을 연 뒤 반세기 가까이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곳이었다. 고 박태준 포스코 전 명예회장도 단골 중의 하나였다.
시민제과는 진 대표의 차남인 상득(73)씨가 뛰어들면서 더욱 번창했다. 공기업에서 일한 상득씨가 직장 생활로 터득한 경영 기술이 아버지의 손맛에 더해지면서 빵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맛과 재료는 물론, 시대 변화에 따라 포장에도 심혈을 기울인 결과였다. 업계 동향과 정보 공유를 위해 전국 유명 제과점과 협회를 결성했다. 해외여행이 쉽지 않던 시절, 직원들을 일본 제빵 학원으로 연수를 보내는 곳은 이곳이 거의 유일했다.
1990년대 말 시민제과의 종업원 수는 100명이 넘었고, 분점이 10곳이나 됐다. 제과회사라 불러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성업을 이루었다. 연일 문전성시였다.
그랬던 시민제과에도 시련이 왔다. 가게 주변에 글로벌 브랜드의 햄버거, 피자 가게가 들어서면서 주변 빵집들이 하나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 중앙상가 일대에는 빈 점포도 늘었다. 영원할 것 같던 포항의 명동도 포항이 덩치를 키우면서 구도심엔 사람들이 예전처럼 모이지 않았다.
문제는 안에서도 생겼다. 최신 기계를 들여도 제빵 기술자 구하기가 예전 같지 않았고, 한창 일할 나이의 청년들은 대구로, 서울로 빠져나갔다. 2대 상득씨의 부인 한혜자씨는 “숙식 제공에 높은 급여를 내밀어도 일하겠단 사람이 없었다”며 “그렇다고 대충 만들어 팔 순 없어 힘들었다”고 말했다.
설상가상. 상득씨의 건강도 나빠졌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 가 이미 그곳에 터를 잡은 상득씨의 두 아들이 도울 상황도 아니었다. 반세기 넘게 시민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시민제과도 더 버티기 힘들었다. 2005년 문을 닫았다.
상득씨 부부는 점포를 임대한 뒤 살던 집까지 정리해 상경했다. 제과점이 있던 자리에는 유명 피자 가게가 입점했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난 어느 날. 상득씨의 아들 정하씨는 우연히 포항의 옛 친구들을 만났다가 여전히 많은 사람이 시민제과를 잊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하는 직장 생활에서 무료함을 느끼기 시작하던 그였다.
정하씨는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고이 간직해 둔 가게 장부를 뒤졌다. 1991년 5~10월 매출전표에 찍힌 팥빙수는 8만 개가 넘었다. 하루 440개 넘게 팔린 셈이다. 그는 무엇에 홀린 듯 곧바로 서울의 한 제과제빵 학원에 등록했다. 제빵사 자격증을 따기로 마음먹은 건 기술자를 구하지 못해 애를 먹던 아버지를 옆에서 보면서 깨달은 바이기도 했다. 프랑스 제과제빵 아카데미까지 마친 그는 귀국해 전국의 유명 제과점을 직접 다니며 배웠다.
2018년 8월 16일, 시민제과는 13년 전 내렸던 가게 셔터를 다시 올렸다. 정하씨의 예상은 적중했다. 문을 열자마자 고객들은 기다렸다는 듯 몰려들었다. 추억의 제과점이 부활했다는 소식에 타지에 사는 옛 단골까지 찾아와 반가움을 표시했다. 심지어 예전에 빵을 담았던 비닐봉투를 내밀며 재개업을 고마워하는 고객도 있었다.
사실 56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졌던 점포를 다시 여는 입장에서 부끄러움이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정하씨는 오히려 시민제과와 함께했던 옛 고객들의 추억 소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1949년 개업 당시의 장면을 모던하게 리모델링한 매장 곳곳에 노출했다. 전면에 내세운 주력 제품도 70년 전 조부가 창업 당시 팔던 찐빵과 찹쌀떡이었다. 먹을 것 귀하던 시절, 몇 푼에 배를 채워주던 '사라다빵(샐러드 빵)'을 저렴한 가격(2,900원)으로 선보였다.
시민제과의 재개업 소식이 입소문을 타면서 기적 같은 일도 있었다. 30년 전 일했던 제빵사가 이 소식을 듣고 다시 일하겠다며 가게 문을 두드린 것이다. 시민제과의 SNS에는 반가움과 응원이 담긴 옛 단골의 글이 끊이지 않았다.
올해로 재개업 4년을 맞은 시민제과는 평일 낮에도 손님이 북적거릴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그새 직원은 39명으로 늘었고, 롯데백화점 포항점에 2호점도 냈다.
정하씨는 “시민의 사랑 덕분에 판매 실적이 나쁘지 않은 편”이라며 “재오픈을 손꼽아 기다려준 고객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진정하 대표는 2018년 8월 가게 문을 연 뒤 지금까지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있다. 매일 오전 6시 30분에 제과점으로 가장 먼저 출근한다.
정하씨는 13년 전 그 자리에 빵집을 열었지만, 가게에서만 제품을 팔지 않는다. 인기 메뉴는 인터넷을 통해 주문하면 택배로 받을 수 있도록 포털 사이트에 온라인 매장도 개설했다. 포항 지역에는 배달 서비스도 하고 있다.
시민제과가 선전하자, 여기저기서 분점을 내달라는 요구도 빗발친다. 하지만 정하씨는 신중에 신중을 더하고 있다. 주위 말만 듣고 확장했다가 대를 이어 다진 옛 명성에 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2호점을 낼 때는 한 달 넘게 백화점을 드나들며 시간대별 방문객 수와 소비 패턴을 분석했고, 결과지를 들고서도 오랜 고민 끝에 2호점 분점을 결심했다.
진정하 대표는 “손님들에게 ‘가게를 다시 열어 고맙다’는 말을 듣는데 어느 것 하나 허투루 할 수 있겠느냐”며 “10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시민제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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