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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팬데믹·학교폭력... '지금 우리 학교는'이 기존 K좀비물과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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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좀비다. 부산행 기차를 타고 등장해 조선시대에서 미래의 한국까지 휩쓸었던 좀비가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이번엔 코로나19에서 벗어난 가상의 현재, 경기도에 있는 가상의 도시 효산시의 효산고가 배경이다. ‘부산행’ ‘킹덤’ ‘반도’ 같은 작품들이 좀비에 대항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라면, ‘지금 우리 학교는’은 고등학생들이 좀비와 싸우는 이야기다.
요나스 바이러스를 만들어 실험 중이던 효산고 과학교사 이병찬(김병철)의 과학실험실에서 학생이 실험용 쥐에 물리는 사건이 발생한다. 좀비로 변한 학생은 보건 교사를 물고 교사가 다른 학생을 물면서 학교는 피로 물들기 시작한다. 어릴 적부터 단짝 친구였던 청산(윤찬영)과 온조(박지후), 온조가 짝사랑하는 이수혁(로몬), 급우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반장 남라(조이현), 이기적인 ‘금수저’ 나연(이유미) 등은 좀비에 둘러싸인 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인다.
28일 공개된 넷플릭스 12부작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은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네이버웹툰에 연재된 동명의 웹툰을 극화한 작품이다. 영화 ‘7급 공무원’, 드라마 ‘추노’ 등으로 유명한 천성일 작가가 각본을 썼고,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 영화 ‘완벽한 타인’ 등을 연출한 이재규 감독이 김남수 감독과 함께 메가폰을 잡았다.
극의 전개 방식은 기존 좀비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디선가 좀비가 나타나거나 만들어진다. 이 좀비가 누군가를 물어 뜯으면서 좀비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하악하악’ 소리를 내며 달려드는 좀비 떼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숨는다. 생존자들 중엔 이타적인 영웅과 이기적인 악당이 공존한다. 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누군가는 배신하고 누군가는 희생된다. 생존자들은 사랑하는 사람이 좀비로 변하는 걸 지켜보면서 갈등을 겪는다.
‘지금 우리 학교는’도 이 같은 전형적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진부한 클리셰가 이어지면서 극 초반은 다소 평이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각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살이 붙고 갈등 구조가 본격화하면서 서사의 속도감과 긴장감은 탄력을 받는다. 학교라는 공간의 특수성을 살린 설정은, ‘부산행’이 그랬듯, 이 작품을 기존의 좀비물과 달라 보이게 하는 가장 큰 차별점이다. 학생들은 총과 칼 대신 대걸레 자루를 들고 좀비와 싸우고 의자와 책상을 쌓아 바리케이드를 만든다. 도서관에선 좀비들을 피해 도미노처럼 쓰러지는 서가 위를 뛰어다닌다.
학교 공간과 소품이 차별화의 전부는 아니다. 청춘의 풋풋한 사랑과 우정, 어른도 아이도 아닌 10대 후반의 불확실성과 불안감, 학교 폭력을 둘러싼 갈등 등의 서사는 이질적인 청춘물과 좀비물을 단단히 하나로 묶어 낸다. 해외 평론가와 관객들이 신선하게 여기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미국 온라인 영화 전문 매체 필름 인콰이어리는 "이 시리즈는 감정적 상호작용을 십분 활용하는데 이러한 상호작용은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체험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한편 관객들이 등장인물들과 함께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고 평했다.
드라마는 생존 학생들의 사투를 두 팀으로 나눠 진행시키고 강력한 악당을 내세워 긴장감을 강화하는 한편 재난 서사를 학교 밖, 효산시 밖으로 확장시킨다. 학교에 갇힌 딸을 구하려는 소방관 아버지, 사건 해결의 단서를 당국에 알리려는 경찰, 다수를 지키기 위해 소수를 희생시켜야 하는 권력자 등의 이야기가 더해지면서 좀비 서사는 더욱 풍성해진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넷플릭스의 이전 시리즈인 ‘D.P’ ‘오징어 게임’처럼 장르물에 사회를 반영하는 요소를 가미해 보다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게 만든다. 주요 소재는 학교 폭력이다. 여기엔 약자에 대한 강자의 폭력, 소수에 대한 다수의 폭력, 학생에 대한 교사의 폭력,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 계급 차이가 만들어내는 폭력 등이 포함된다. 좀비 바이러스의 출발과 확산의 중심에 학교 폭력이 있다.
세월호 사고를 연상시키는 대목도 여럿 등장한다. 좀비 사태가 벌어진 지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도 자신들을 구조하러 오지 않자 한 학생은 교실 안에 있던 캠코더의 녹화 버튼을 누른 뒤 이렇게 말한다. “엄마랑 아빠는 저 구한다고 학교 앞에까지 왔는데, 경찰도 소방관도 아무도 안 왔어요. 나중에 누군가 이 영상을 보면 관계자들 꼭 처벌해주세요. 다들 우리를 버렸어. 전부 다.”
좀비물이 흔히 재난과 전염병에 대한 은유로 쓰이듯 이 작품에도 팬데믹 시대에 대한 은유로 읽히는 지점이 적지 않다. 드라마는 등장인물의 입을 통해 “다수가 살기 위해 얼마나 잔인해도 되는가” 묻기도 한다. 미국 일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미국적인 시각을 더해 "학교 내 총기 난사 사건과 코로나19의 그림자가 느껴진다"고 했다.
끊임없이 등장하는 코로나19 돌연변이의 등장은, 좀비이면서 인간 같기도 한 돌연변이 좀비의 출현과 포개진다. 돌연변이 좀비는 슈퍼히어로와 슈퍼 빌런 같은 캐릭터로 묘사되는데 이 드라마를 기존의 좀비물과 차별화시키는 또 하나의 요소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시청자를 끌어들일 만한 요소가 많은 작품이지만 단점도 적지 않다. 생존 학생들이 좀비를 피해 학교 건물 안의 공간을 옮겨 다니는 시퀀스들은 반복적이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긴장감이 떨어진다. 일부 캐릭터는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채 방치되거나 사라져 군더더기 같은 인상을 준다. 감정적인 드라마의 비중이 많은 점은 이 시리즈만의 차별점이기도 하지만 종종 극의 속도감과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내기도 한다. 12시간의 러닝타임이 다소 길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회비판적 요소들 역시 작가나 연출가의 의도를 드러내는 데만 쓰일 뿐 극 속으로 깊이 녹아 들지 않아 종종 겉도는 느낌을 준다. 표현 수위가 상당히 높은 편이어서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신체 훼손이나 폭력 묘사 등 웬만한 영화에서도 보기 어려운 장면들이 수시로 등장한다. 학교 내 성폭력을 묘사하는 부분은 공개 초 논란이 되기도 했다.
‘오징어 게임’이 그랬듯 ‘지금 우리 학교는’ 역시 국내보다 해외 반응이 더 뜨겁다. 31일 오전 현재 미국 영화ㆍ드라마 평점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는 신선도 지수 100%(9개 매체)를 기록했고, 영화 데이터베이스 전문 사이트 IMDB에선 관객 평점 10점 만점에 7.7점(약 4,000명)을 나타냈다. 관객 평점만 보면 '오징어 게임'보다 약간 낮고 '지옥' '고요의 바다'보다는 높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순위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선 집계 첫 날인 29일 곧바로 넷플릭스 TV시리즈 부문 전 세계 1위에 올라 이틀 연속 정상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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