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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사진발? 아무리 보정해도 실제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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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은 국내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꼭 2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동이 자유롭지 못한 만큼 여행에 대한 갈증이 커졌다. 사실상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나라 안으로 눈을 돌리게 된 건 그나마 다행이다. 여행 사진은 흔히들 ‘사진발’이라 말한다. 반만 맞다. 보정 작업으로 예쁘게 보일 수는 있지만, 단언컨대 실제의 아름다움을 넘지 못한다. 현장의 깊이와 감동은 말할 것도 없다. 거리두기가 가능하면서도 계절의 아름다움을 마음에 담을 수 있는 여행지를 월별로 골랐다. 사실 언제 가도 좋은 곳이다. 오미크론 폭풍이 지나면 올해는 맘 편히 여행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장성 축령산 편백나무 숲은 국내 최대 규모의 편백나무 숲이다. 1956년부터 20여년 동안 심은 나무가 253만그루, 면적은 여의도의 두 배에 가깝다. 계절에 상관없이 좋지만, 눈 내리는 날을 택하면 환상적인 설경을 즐길 수 있다. 원뿔형으로 솟은 나뭇가지에 소복하게 눈이 덮이면 타이가 침엽수림 못지않게 이국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서삼면 추암마을 주차장에서 임종국 공덕비가 있는 산등성이까지는 약 1.5㎞, 쉬엄쉬엄 1시간가량 걸린다. 임도를 겸하는 주 탐방로는 산 넘어 금곡마을까지 이어진다. 널찍하고 경사도 완만한 편이다. 주차장에서 오른쪽 흙길을 선택하면 거리는 비슷하지만 조금 더 운치 있다. 편백숲의 최고 정취는 공덕비에서 금곡마을로 이어지는 산길 약 1.5㎞ 구간이다. 이 길을 중심으로 숲내음숲길, 산소숲길, 건강숲길, 물소리숲길, 맨발숲길, 하늘숲길 등이 가지처럼 연결돼 있다.
2월 말에서 3월 초, 강원 산간지역엔 눈이 많이 내린다. 정선과 태백의 경계, 함백산 눈꽃 산행은 이때가 제격이다. 한겨울 칼바람도 조금은 기세가 누그러지고, 습기 머금은 눈송이는 한결 탐스럽다.
해발 1,573m 함백산은 남한에서 여섯 번째로 높지만 상대적으로 쉽게 오를 수 있다. 해발 1,300m 까지 차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태백선수촌 부근 등산로 입구에서 정상까지는 약 1㎞, 제법 가파르지만 넉넉잡아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등산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이들에게는 ‘가성비 갑’이다.
정상 전망은 거칠 것 없이 시원하다. 서쪽으로 만항재부터 이어지는 해발 1,000m 안팎의 운탄고도 능선이 장엄하게 펼쳐지고, 반대편으로는 날이 좋으면 멀리 동해까지 조망된다. 궂은 날이면 변화무쌍하게 펼쳐지는 대자연의 생생한 쇼가 펼쳐진다. 겨울 산행이 부담스러우면 시기를 조금 늦춰도 된다. 함백산에는 4월에도 눈 구경이 어렵지 않다.
고창 운곡람사르습지는 인간의 간섭이 없을 때 자연이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30년 가까이 버려졌던 농경지가 자연스럽게 원시 습지로 복원되는 되는 중이다. 운곡저수지 초입 탐방안내센터에서 시작한다. 우선 저수지 상류의 생태공원까지 3.4㎞는 전동 셔틀(평일 6회·편도 2,000원)을 타거나 걸어야 한다.
생태공원부터는 오로지 걸어서만 갈 수 있다. 탐방로 목재 덱은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 두 사람이 나란히 걷기 힘들 정도로 좁게 만들었다. 습지에 뿌리를 내린 나뭇가지가 어지럽게 엉켜 있고, 민가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간간이 대숲도 보인다.
운곡습지에 가장 흔한 수종은 버드나무다. 3월 중순이면 잎보다 먼저 핀 버들강아지 꽃술이 계곡을 연둣빛으로 뒤덮는다. 4월이면 제멋대로 피어난 산벚과 진달래까지 화사하게 색의 향연이 펼친다. 인공 소음이 전혀 없어 원시의 숲 한가운데에 들어선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탐방로를 따라 고갯마루를 넘으면 고창 고인돌유적지로 연결된다.
금산 보곡산골은 전국 최대의 산벚나무 자생 군락지다. 금산 군북면 보광리·상곡리·산안리에서 각각 한 글자를 딴 작명이다. 4월 초·중순이면 산골짜기 일대가 찬란한 봄을 맞이한다.
3개 마을에 걸쳐 있으니 동선 짜기가 쉽지 않다. 보통 산안리 ‘자진뱅이’ 마을 뒤편 산자락을 한 바퀴 돌아오는 코스를 걷는다. 대략 6㎞, 넉넉잡아 2시간가량 걸린다. 출발점은 언덕배기의 ‘보이네요’ 정자다. 이곳부터 임도를 따라가면 맞은편 산자락과 계곡 풍경이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신록이 더해가는 산중턱 곳곳에 산벚꽃이 점처럼 흩뿌려져 있다. 저절로 자라난 산꽃이니 개화 시기도 조금씩 다르고, 새하얀 것부터 진분홍까지 색깔도 각양각색이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공원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멋이 풍긴다. 벚꽃이 지고 나면 조팝나무 병꽃나무 산딸나무 등이 뒤를 잇는다.
예산의 예당저수지는 다목적댐으로 형성된 호수를 제외하면 전국에서 가장 크다. 주변을 한 바퀴 돌면 40㎞가 넘는다. 저수지 수문 인근에 출렁다리와 음악분수가 있다. 분수는 평일 5회, 주말 7회 20분 간 물을 뿜는다. 해가 지면 경관조명이 켜진다. LED 조명이 일곱 색깔 무지개로 변하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곳부터 대흥면 소재지까지 약 5.2㎞ 구간에 ‘느린호수길’이 조성돼 있다.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 걷는 목재 덱 수상 산책로다. 수심이 얕은 물가에 버드나무가 무성하다. 반쯤 물에 잠긴 나무가 원시의 숲인 듯 신비롭다. 바람이 잔잔한 날이면 버드나무 군락이 수면에 반사돼 멋진 작품을 연출한다. 발 아래에서 가끔씩 물고기가 뛰어오르고, 무성한 가지 사이로 물닭이 헤엄친다. 하얀 백로가 날개를 펼치면 선경인 듯 황홀하다. 종착지인 대흥마을 뒤편 봉수산 자연휴양림에 오르면 마을과 저수지가 그림처럼 내려다보인다.
㎞영양 검마산 중턱 해발 600m 깊은 산중 자작나무숲이 있다. 솔잎혹파리 피해를 입은 소나무를 베어내고 1993년부터 조림한 젊은 숲이다. 30년 가까운 세월에 평균 키가 20m에 달할 정도로 자랐다.
녹음으로 가득한 숲에서 불현듯 나타나는 순백의 숲길, 완전히 딴 세상이다. 한 발 두 발 옮길 때마다 하얀 기둥이 슬로비디오처럼 다가왔다 멀어진다. 천천히 걸으면 두어 시간은 후딱 지나간다. 이따금씩 얇은 나뭇잎이 바람에 팔랑거리면 신선한 초록이 똑똑 떨어지는 듯하다. 하얀 숲이 내뿜는 청량함은 오히려 겨울보다 낫다.
자작나무숲에 가려면 죽파마을에 차를 대고 임도를 따라 약 4㎞ 걸어야 한다. 경사가 거의 없고 잘 다져진 흙길이다. 길 양편으로 나무가 우거져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나란히 이어지는 죽파계곡은 맑고 차다. 녹음 속에 손발을 담그고 더위를 씻기에 더없이 좋은 계곡이다. 지역에서도 일부만 아는 숨겨진 피서 명당이다.
정선 화암팔경은 화암면 소재지를 관통하는 소금강에서 광대곡으로 이어지는 계곡에 흩어져 있다. 도로를 따라 한 굽이 돌 때마다 수직에 가까운 바위 절벽이 나타난다. 도로변 경치가 빼어난 2곳에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그 끝은 광대곡이다. 입구(광대사)에서 영천폭포까지 1.7㎞ 등산로가 개설돼 있다. 약 30분이 걸린다. 인적이 뜸한 길이라 선명하지 않고 때로는 바위투성이 계곡을 가로질러야 한다. 약 700m를 올라가면 본격적으로 폭포와 소가 이어진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선녀폭포, 바위를 나선형으로 깎으며 흐르는 골뱅이폭포, 표주박 모양의 바가지소가 차례로 나타난다.
영천폭포는 탐방로에서 조금 비껴 있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에메랄드빛 소를 만들었다. 커다란 항아리에 양동이로 물을 쏟아 붓는 모양새다. 절벽에 자라는 우산나물과 돌단풍은 물기를 가득 머금고 있다. 햇볕이 거의 들지 않아 태고의 신비로움을 고이 간직한 모습이다.
보령 원산도는 2019년 12월 안면도와 다리로 연결되며 섬 신세를 면했고, 지난해 말 대천항과 해저터널로 이어지며 다시 주목받았다. 그러나 스쳐가는 섬으로 인식되는 탓에 대천이나 안면도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한적하다. 원산도는 동서로 7㎞ 남짓한 작은 섬으로 북쪽엔 갯벌이, 남쪽엔 모래사장이 발달해 있다. 안내도에는 5개 해수욕장이 표시돼 있는데 실제는 원산도해수욕장과 오봉산해수욕장 2곳만 갈 수 있다.
원산도해수욕장은 가운데 작은 봉우리를 사이에 두고 1.8㎞ 뻗어 있다. 섬의 규모에 비해 길기도 하지만 물이 빠지면 모래사장이 드넓게 펼쳐진다. 바닷물이 얇게 번지는 해변을 걷는 것도 낭만적이다. 모래는 한없이 고와 한 움큼 잡으면 손가락 사이로 솔솔 빠져나갈 정도다. 해변에 모래 다음으로 흔한 게 조개껍데기다. 운이 좋으면 살아 있는 조개를 주울 수도 있다.
1955년 개통된 영암선(영주~철암) 철도는 차로는 가기 어려운 봉화의 산골 마을을 차례로 통과한다. 여행의 시작은 분천역이다. 백두대간협곡열차 덕분에 산타마을로 변신한 역이다. 이 관광열차는 하루 2회(수~일요일 운행) 분천역~철암역 구간을 왕복한다. 산과 강을 넘나들며 태백산 자락과 낙동강 상류의 비경 속을 달린다. 강릉에서 출발하는 동해산타열차(수~일 운행), 동대구에서 출발하는 경북나드리열차(토ㆍ일 운행)도 분천역이 종착역이다.
이들 관광열차는 비동승강장, 양원역, 승부역에 잠시 정차한다. 비동승강장에서는 철교 아래로 펼쳐지는 강 풍경이 눈부시다. 영화 ‘기적’에 나오는 양원역은 국내 최초의 민자역사다. ‘양원역에 첫 열차가 정차한 날, 사람도 산도 강도 감격해 울고 웃었다’고 한다. 영화처럼 세상에서 가장 서럽고 소박하고 간절한 역이다. 승부역~분천역 구간에선 시간만 잘 맞추면 기차여행과 걷기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다. 분천역에서 승부역까지 기차로 이동한 후 낙동강을 따라 내려가는 ‘세평하늘길’을 걷는다.
이름만으로도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 설악산, 그러나 대청봉 꼭대기까지 갈 게 아니면 선택지는 다양하다. 천불동계곡은 신흥사에서 출발하는 ‘양폭코스’의 일부 구간으로 설악의 깊은 속살을 파고든다. 최고 절경으로 꼽히는 오련폭포까지는 왕복 12㎞, 6시간가량 잡는다.
신흥사에서 약 1㎞ 구간은 순한 길이고, 비선대를 지나면 본격적으로 천불동계곡이다. 아찔한 절벽이 끝없이 이어지고, 하얀 물줄기는 바위를 타고 매끄럽게 흘러내린다. 수없이 많은 기암괴석을 불상에 비유한 천불동이다. 귀면암 고개를 넘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오련폭포에 닿으면, 설악산 단풍이 왜 최고인지 이해하고도 남는다. 새하얀 물줄기가 깊은 골짜기로 떨어졌다 고이고 다시 미끄러진다. 그렇게 생긴 다섯 개의 웅덩이마다 푸르스름한 옥수가 담겼다. 그 산비탈로 단풍이 흩뿌려져 있으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단풍철에는 신흥사 앞 소공원주차장(5,000원)에 차를 대기가 쉽지 않다. 아래쪽 B지구, C지구에 차를 대고 걷는 게 빠르다. 신흥사 입장료(3,500원)는 별도다.
청송 주왕산의 단풍은 10월 말, 11월 초가 절정이다. 최고 명소는 절골계곡이다. 보통 입구에서 3.5㎞ 떨어진 대문다리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탐방로는 개울과 나란히 자갈길을 걷고 때로는 징검다리로 얕은 여울을 건넌다. 소풍 가듯 쉽게 걸을 수 있다. 대문바위 가까이 다다르면 넓은 암반에 고인 계곡물에 빨갛고 노랗게 물든 낙엽이 곱게 덮였다. 가을이 쌓이고 느린 시간이 흐른다. 잠시 다른 세상, 다른 시간에 떨궈진 것 같은 황홀한 착각에 빠진다.
인근 주산지는 물속에 뿌리를 내린 30여 그루의 왕버드나무가 몽환적인 풍경으로 빚는 곳이다. 최고 300년 된 왕버들의 위풍당당한 자태가 수면에 비쳐 데칼코마니를 이룬다. 일교차가 큰 시기에는 오전 8시까지 안개가 짙고, 9시는 넘어야 주변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울긋불긋하게 물든 주변 산자락까지 물속에 내려앉아 한 폭의 가을 수채화를 완성시킨다. 주차장에서 저수지까지는 약 1㎞, 걷기 편한 길이다.
평창 오대산 자락은 12월부터 눈으로 덮인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선재길’은 깊은 산중이지만 걷기에 순탄하다. 시작은 전나무 숲길이다. 잘 다져진 산책로 양편으로 아름드리 전나무가 하늘을 찌른다. 이따금씩 도깨비장난처럼 눈가루가 흩날리면 환상적이다.
상원사까지는 계곡과 나란히 걷는다. 개울가의 작은 바윗돌, 길섶의 앙상한 나뭇가지, 산자락의 침엽수에 눈이 쌓이면 걸음걸음이 선경이다. 찬바람이 불면 그것대로 괜찮다. 깨달음의 길이자 구도자의 길이다. 거리는 약 9㎞, 걷기에 부담스러우면 버스를 이용해도 된다. KTX 진부역에서 약 1시간 간격으로 시내버스가 운행하기 때문에 대중교통 여행에도 어려움이 없다.
상원사에서 좀 욕심을 내 적멸보궁까지 다녀오는 것도 괜찮다. 약 1.5㎞, 왕복 2시간을 잡는다. 선재길이 산책로라면 적멸보궁 가는 길은 등산로다. 바위 계단에 눈이 얼어붙기 십상이어서 아이젠을 꼭 챙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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