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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도체 부족이 ‘대만 대표처’ 간판도 바꿀까

입력
2022.01.27 14:26
수정
2022.01.27 20:25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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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하원 '미국 경쟁법안' 공개]
반도체 육성 62조원, 공급망 재편 박차
바이든 “中 능가할 중요한 발걸음” 평가
中, RCEP 앞세워 "걱정 없어” 평가 절하
美 대표처 ‘타이베이→대만’ 변경에 촉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백악관에서 민간기업 CEO들과 만나 '더 나은 재건'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 백악관에서 민간기업 CEO들과 만나 '더 나은 재건'에 관해 논의하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미국 의회가 중국을 옥죄려 반도체 카드를 또다시 꺼냈다. 중국은 “예상했던 수준”이라며 시큰둥하다. 다만 반도체를 구실로 대만 문제에 개입하려는 점은 껄끄럽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따른 우려보다 ‘하나의 중국’ 원칙이 흔들릴까 신경이 곤두선 모습이다.

바이든 “中 능가할 중요 발걸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백악관에서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관한 행정명령 서명에 앞서 반도체 칩을 들고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2월 백악관에서 반도체 공급망 구축에 관한 행정명령 서명에 앞서 반도체 칩을 들고 취지를 설명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미 하원이 26일(현지시간) 공개한 ‘미국 경쟁법안’은 520억 달러(약 62조3,220억 원)를 투입해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는 내용을 담았다. 지나 레이몬도 상무장관이 전날 “미국의 반도체 칩 재고는 2019년 40일에서 현재는 5일 치에도 못 미친다”며 지원을 읍소할 정도다. ‘미국 혁신경쟁법(30조 원 규모)’이 지난해 6월 상원을 통과한 데 이어 반도체 공급망을 틀어쥐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구상에 탄력이 붙었다.

이번 법안은 비시장경제 국가가 미국에 수출한 제품에는 관세 혜택을 없애는 조항도 포함됐다. 정부가 개입해 시장원리를 거스르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망을 강화하고 경제의 혁신 엔진을 재가동해 중국과 나머지 국가들을 능가하는데 중요한 발걸음을 내디뎠다”고 했고,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미국의 안보수준과 경쟁력, 국제사회 리더십을 높일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中 “RCEP 있는데 무슨 걱정”

문재인(가운데) 대통령이 2020년 11월 세계 최대규모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CEP) 정상회의에서 베트남 산업통상부 장관이 협정 서명본을 아세안 사무총장에게 화상으로 전달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손뼉을 치고 있다. 한국과 아세안 10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 등 15개국이 협정에 가입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가운데) 대통령이 2020년 11월 세계 최대규모 자유무역협정(FTA)인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 (RCEP) 정상회의에서 베트남 산업통상부 장관이 협정 서명본을 아세안 사무총장에게 화상으로 전달하는 장면을 지켜보며 손뼉을 치고 있다. 한국과 아세안 10개국을 비롯해 중국, 일본, 뉴질랜드, 호주 등 15개국이 협정에 가입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중국은 애써 태연한 반응이다. 법안이 2,91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바이든 정부 출범 1년간 보여준 대중 압박 기조와 별반 다를 것 없다는 것이다. 가오링윈 중국사회과학원 연구원은 27일 “반도체를 앞세운 미국의 반중 선동에 일본, 영국 호주 등 동맹국이 영합하겠지만 정치 슬로건과 경제·무역은 별개”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미국의 공급망 재편에 맞서 믿는 구석이 있다. 1일 10개국에서 우선 발효한 세계 최대 무역블록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은 든든한 버팀목이다. RCEP에는 사사건건 미국 편을 들며 중국을 자극해온 일본, 호주, 뉴질랜드가 모두 가입했다. 미국의 경쟁법안이 충분히 효과적이라면 이들 국가들이 왜 중국과 RCEP을 통해 손을 잡았겠냐는 것이다.

美 대표처 ‘타이베이→대만’ 명칭 변경 반대

지난달 15일 중국 베이징 주재 리투아니아 대사관의 문이 굳게 닫힌 모습. 리투아니아는 이날 이곳 소속 자국 외교관들을 전원 귀국시키고 대사관을 폐쇄했다. 리투아니아는 지난달 수도 빌뉴스에 대만 대표처를 열었고, 이에 중국은 리투아니아에 대한 전면적인 경제 제재를 단행하고 리투아니아 주재 대사관을 대표처로 격하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지난달 15일 중국 베이징 주재 리투아니아 대사관의 문이 굳게 닫힌 모습. 리투아니아는 이날 이곳 소속 자국 외교관들을 전원 귀국시키고 대사관을 폐쇄했다. 리투아니아는 지난달 수도 빌뉴스에 대만 대표처를 열었고, 이에 중국은 리투아니아에 대한 전면적인 경제 제재를 단행하고 리투아니아 주재 대사관을 대표처로 격하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하지만 대만 문제는 경우가 다르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경쟁법안이 통과되면 미 국무부가 워싱턴 주재 ‘타이베이 경제문화대표처(TECRO)’ 명칭을 ‘대만 대표처’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라고 전했다. 대만은 14개 수교국 외에 59개국에 97개 타이베이 대표처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중국의 입장을 감안한 상대국이 대만이라는 간판을 꺼리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 문제로 지난해 유럽 리투아니아와 얼굴을 붉혔다. 리투아니아가 타이베이 대표처를 대만 대표처로 격상하자 중국은 대사를 소환하고 대사관을 대표부로 격하하며 맞섰다. 당시 유럽연합(EU)과 일부 주변국이 리투아니아에 힘을 실어주며 반중 공조를 펼친 전례가 있다. 인구 280만 명 소국 리투아니아도 이럴진대, 만약 미국이 같은 조치를 취한다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다. 국제사회에 대만 대표처 도미노가 벌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중국은 대만 경제의 대중의존도를 강조하며 차단막을 쳤다. 환구시보는 “지난해 중국과 대만 교역량이 전년 대비 26% 늘었다”며 “대만 수출의 42%를 차지하는 중국 덕분에 대만의 무역흑자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각종 수치를 나열했다. 탕융훙 샤먼대 대만연구센터 부소장은 “중국 본토의 강력한 수요가 대만과 협력의 견고한 기반”이라고 말했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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