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접? 돈쭐?" 과감한 예능 제목을 바라보는 시선

입력
2022.02.04 08:40
'검정고무신'의 캐릭터가 '주접이 풍년'이라는 프로그램명에 관심을 보였다. KBS2 '주접이 풍년' 티저 영상 캡처

'검정고무신'의 캐릭터가 '주접이 풍년'이라는 프로그램명에 관심을 보였다. KBS2 '주접이 풍년' 티저 영상 캡처

개성 넘치는 제목을 가진 예능들이 안방극장을 채워나가고 있다. 과감하게 활용된 유행어, 신조어 등이 프로그램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유쾌한 제목에 절로 나오는 웃음은 덤이다. 다만 이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KBS2 '주접이 풍년'은 지난 20일 첫 방송됐다. 이 예능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연예인에 깊게 빠진 채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주접단을 조명한다. '주접이 풍년'이라는 제목은 많은 이들이 우스갯소리처럼 하는 '지X이 풍년'이라는 말과 상당히 유사하다. 티저 영상에 등장한 만화 '검정고무신'의 할머니도 제목을 듣고 "뭐? 지X이 풍년이라고?"라고 되물었다. 주접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도 인상적이다.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 NQQ '지구에 무슨 129?' 역시 독특한 프로그램명으로 시선을 모은다. 이 예능은 지구 곳곳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들을 다룬다. '지구에 무슨 129?'는 '머선 129'라는 유행어를 떠올리게 만든다. '머선'은 '무슨'을, '129'는 '일이고'를 의미한다. '신서유기'는 '머선 129'라는 말을 자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IHQ '돈쭐내러 왔습니다'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이 프로그램은 코로나19의 유행으로 인해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 자영업자들을 위해 탄생했다. 남다른 먹성을 지닌 출연자들이 식당을 방문해 사장님이 웃을 때까지 음식을 주문해 먹으며 매출을 올려준다. 이 프로그램은 '돈쭐'이라는 신조어를 제목으로 활용했다. '돈쭐'은 '돈으로 혼쭐'이라는 의미다. 예컨대 선한 행보를 보여준 가게의 물건을 팔아주는 경우에 사용된다.

'돈쭐내러 왔습니다'가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IHQ 제공

'돈쭐내러 왔습니다'가 시청자들을 만나고 있다. IHQ 제공

이러한 개성 넘치는 프로그램명을 향해 많은 이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주접이 풍년'이라는 제목과 관련해 "재밌다" "심상치 않다" "취향 저격이다" 등의 글이 게재됐다. 프로그램명 속 단어들이 성격을 잘 담아냈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주접이라는 단어는 '주접 댓글'처럼 스타를 사랑하는 이들의 남다른 팬심을 장난스레 표현할 때 사용되고 있다. '지구에 무슨 129?'는 유행어를 통해 세계 곳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묻는다. '돈쭐내러 왔습니다'의 경우 '돈쭐'에 출연진이 많이 먹어 빠르게 매상을 올려준다는 의미를 담았다.

다만 우려의 시선도 존재한다. 몇몇 이들은 신조어의 과도한 사용이 세대 격차를 심화시키고 한글 파괴라는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일부 단어들이 방송의 품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도 주장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태곤은 '주접이 풍년'의 온라인 제작발표회를 찾았을 때 "제목이 '주접이 풍년'이라고 해서 놀랐다. 'KBS에서 주접이라는 말을 한다고?'라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일부 제작진은 제목을 위해 부정적인 시선과 맞서 싸워야 했다. '주접이 풍년'의 편은지 PD는 "KBS 예능 제목에 주접이라는 단어가 들어가까지 부침이 많았다. 가능하게 해주신 선배님들께 감사드린다. 주접이라는 단어가 부정적으로 쓰였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과장하고 재치 있게 표현하는 뜻으로 쓰인다. 저희 프로그램을 통해 주접이 부정적인 의미보다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물론 유행을 반영한 재밌는 제목이 누군가를 불쾌하게 만들거나 한글 훼손을 부추겨서는 안 된다. 제작진 앞에 놓인, 결코 쉽지는 않은 숙제다. 몇몇 예능들이 인상적인 이름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온 상황 속에서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들이 안방극장을 찾아올지 이목이 집중된다.

정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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