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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문편지 논란에…'편지 찢는 여자들'이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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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새해를 시작하면서부터 한국사회는 때아닌 논란에 몸살을 앓았다. '군(軍) 위문편지'라는 많은 이들에겐 존재조차 희미한 유물 덕이다. 서울의 모 여자 고등학교에서 쓴 위문편지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개되면서 거센 비판을 샀다. 위문편지에 담긴 "앞으로 인생에 시련이 많을 건데 이 정도는 이겨줘야 사나이가 아닐까요" 등의 조롱 섞인 문구 때문이었다.
문제는 비판을 넘어 도를 넘은 집단 공격이 시작되면서였다.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해당 고교생의 신상 정보가 유포됐고, 욕설과 성희롱을 동반한 사이버 폭력이 이뤄졌다. 온라인 공격은 학교 전체를 대상으로 번졌다. 언론도 시끄러웠다. 이달 11일부터 약 2주 사이에 400건이 넘는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그러자 '시대착오적' 위문편지 문화 자체에 반기를 드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여자 고등학교에서 강요하는 위문 편지 금지해 주세요’라는 청원에는 하루 만에 10만 명이 서명했고, 26일 기준 약 15만명이 동의했다. 서울 시내 곳곳에는 위문편지를 없애야 한다는 현수막도 붙었다. 현수막은 해당 여고와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었던 강남역 10번 출구, 서울역, 청와대, 국회 앞 등 15개 지역에 총 16개가 설치됐다.
한국일보는 이 현수막을 만든 '편지 찢는 여자들(편찢들)'을 만나 위문편지 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사회 여성 청년의 시선을 직접 들어봤다. 사회의 여성폭력에 균열을 내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여성결사' 조직을 통해 만나 새로운 팀을 꾸린 편찢들은 공동대표인 라텔과 권태랑(반성폭력 운동가), 팀원 태평해, 해일, 쓰담, 디자이너인 주타, 맴유 등 7명의 여성으로 이뤄졌다. 인터뷰를 진행한 태평해씨는 이번 논란을 "남성에 의한 여성혐오 사건"이라면서 "위문편지의 '완전 철폐’가 필요하다"라고 주장했다.
_위문편지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게시하게 된 이유는.
"(온라인 공격을 받는)학생들에게 응원과 연대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편찢들은 모두 20대 초반부터 30대 중반의 나이의 여성들이다. 사회를 살아가는 한 명의 여성으로서 위문편지 사태를 보고 화가 났다. 사회도 학교도 보호자도 아무도 학생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우리라도 응원할 방법을 찾으려다 현수막을 생각해냈다.
온라인으로 현수막 제작을 위한 모금을 받았는데,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뤄졌다. 모금을 시작한지 약 3시간만에 목표금액이 채워져서 우리뿐 아니라 이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고 응원하려는 시민들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_현수막 게시는 어떤 기준으로 이뤄졌나.
"설치 지역마다 현수막의 내용과 디자인이 달랐다. 해당 여고에는 학생을 향한 폭력을 방관하는 학교를 비판하고 또 연대하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2개 설치했다. 또 인근 남고에서 온라인을 통해 여고 학생들을 괴롭힌다고 해서 이를 멈춰달라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도 만들었다. 또 청와대와 국회, 교육청, 서울시청, 각 정당 등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도 달았다."
_위문편지가 공개된 이후 학생 당사자는 물론이고 학교 전체를 향한 집단적인 온라인 폭력이 있었다.
"사실 주변에 이 사건을 아냐고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데도 남성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굉장히 큰 사건으로 몰고 마치 건수 잡았다는 듯이 공격에 혈안이 됐다. 그러자 학교는 사과문을 통해 학생의 보호가 아니라 군 위문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보는 순간 이대로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_조롱 섞인 군 위문편지는 이전에도 있었으나 온라인에서 유머로 소비됐다. 이번 사례만 격렬한 논쟁에 휩싸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가 여성을 어떤 존재로 보는지에 대한 대답이라고 본다. 일부 언론에서도 문제를 보도하면서 논란을 키워가는 방식으로 다뤘다. 강요된 위문편지가 여성을 향한 폭력이라는 사실은 외면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해당 학생이 아닌 여성 전체가 잘 못한 일로 못 박아졌고, 결국 여성을 공격할 그럴싸한 핑계가 됐다.”
_현수막이 게시 하루 만에 여러 곳에서 사라지기도 했다.
"현수막을 만들 때부터 훼손은 예상했던 일이다. 그런데 단순히 찢거나 망가뜨리는 방식이 아니라 구청 등에 민원을 넣어서 절차를 밟아 목소리 자체를 지웠다. 이번 현수막 설치는 옥외광고법 제8조에 따라 불법도 아닌 합법이었는데도 철거가 됐다. 하지만 더욱 목소리를 내야 되겠다는 오히려 고무적인 기분이 들었다."
_위문편지 사태는 어떤 방식으로 매듭이 지어져야 할까.
"이번 위문편지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시됐다. 종이에 손 글씨로 적은 위문편지가 군대에서 컴퓨터를 통해 인터넷에 올라왔다는 사실이 모순적이지 않나. 스마트폰 병영 시대에 위문편지가 필요한 시점이 아니라는 점의 방증이다. 교육청과 학교 내부적으로 반드시 비슷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방지책을 세워야 한다.
또 지금도 여성 군인을 향한 성범죄가 일어나고 이로 인한 극단적 선택이 이어지지만 제대로 주목 받지 못하건만 이번 위문편지에는 과도할 정도의 관심이 쏟아졌다. 위문편지에 분노한 이들 중 10%만이라도 여성 군인을 향한 성범죄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위문편지 사태 이후 여론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중앙일보가 자사 홈페이지에서 이달 17일부터 23일까지 진행한 군 위문편지 관련 여론조사에서도 '강요 안 돼'라는 답변이 75%를 차지했다. '필요하다'는 응답은 24%에 그쳤다.
논란이 불거진 고교에서는 위문편지 폐지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이버 폭력으로부터 미성년자인 학생의 보호를 요청한 시민사회의 성숙한 대처에 깊이 공감한다"며 "학교 현장에서 형식적인 통일·안보교육을 지양하고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평화 중심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데 힘쓰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서울교육청은 또 해당 고교생들의 신상 정보가 유포되고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는 신고가 접수되자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다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위문편지를 쓴 고교생의 퇴학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오는 등 온라인 괴롭힘은 이어진다. '편찢들'은 이대로 멈추지 않기로 했다. 각 정당의 대선 후보에게 질의서를 보내 위문편지 관련 입장을 물을 계획이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피해 학생들의 회복과 위문편지의 완전 철폐가 이뤄질 때까지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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