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84세로 일본에 이어 세계 2위다. 영국에서 세계 유력 국가의 기대수명을 연구한 결과, 2030년 우리의 평균 수명은 90세가 될 것이라고 한다. 초고령 사회를 넘어, 이제까지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초초고령 사회가 도래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고갈을 예상해보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우리의 합계 출산율은 0.84을 깨고 0.7대로 예측되고 있다. 이에 따른 대학의 몰락 역시 누구나 생각해볼 수 있다. 화살은 쏘아졌으나 아직 도달하지 않은 것뿐이다.
한국갤럽의 종교 관련 조사에서 20대의 78%, 30대의 70%가 '종교가 없다'고 답했다. 종교의 몰락 역시 정해진 미래인 셈이다. 초고령 사회의 도래는 의료와 과학의 발달이 초래한 결과다. 그리고 합계 출산율 감소는 사회 구조의 변화가 아이의 양육 조건과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종교는 배척되는가? 나는 이것이 종교가 전통과 권위를 강조하는 꼰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젊은이들은 멘토는 선호하지만 꼰대는 극혐한다. 그러나 멘토와 꼰대는 종이 한 장 차이이다. 다만 그 한 장의 차이가 실제로는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점에 문제가 있다.
과거 명절은 최대의 기쁨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와 같은 말을 대체하는 것은 '명절증후군'이다. 명절 연휴 후에는 이혼율이 급증하기 때문에 '명절 이혼'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즉 밝았던 행복이 어두운 그늘로 변모한 것이다.
관계성을 중시하던 문화가 해체되고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시대가 되면서, 강요되는 전통은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즉 선의의 조언이지만, 그것은 멘토의 말이 아닌 꼰대의 언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종교 역시 스스로를 비판하며 거듭나고, 사회와 국민을 위해 변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흥미로운 것은 20∼30대의 종교에 관한 관심은 낮지만, 명상과 자아실현의 욕구는 그 어느 시대보다 크다는 점이다. 즉 꼰대인 종교는 싫어하지만, 명상이라는 멘토는 선호하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종교의 좌표가 어디에 찍혀야 하는지를 분명히 해준다.
불교는 명상에서 시작된 종교다. 붓다는 태자라는 금수저의 신분을 버리고, 인간 완성과 행복을 목적으로 출가했다. 이런 행동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역시 오늘날처럼 기존 질서가 해체되고 새로운 가치를 요청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붓다의 깨침은 현재의 행복으로 귀결된다. 이것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전한 것이 불교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불교는 태생적으로 현대의 젊은 분들에게 최적의 적합도를 가진다. 다만 오랜 전통 속에 닫혀 현대와 유리되어 있는 것이다.
제련되지 않은 강철은 녹슨 쇠일 뿐이다. 쇠가 강철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용광로를 거쳐, 무수한 담금질을 당해야만 한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가진 것의 익숙함을 내려놓고 사회로 나가야만 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가장 풍요롭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갈등 속에 있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안주에서 벗어나 각성하고 깨어나야만 한다.
불교에서는 깨침의 전승을 '등불의 확산', 즉 '전등(傳燈)'이라고 했다. 등불은 스스로를 불태우며 주변에 빛을 뿜어 밝음을 준다. 그리고 불은 다른 등으로 옮겨 가도 줄어들지 않는다. 그렇게 우리는 밝아지고, 사회는 더욱 맑아지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귀결 처로 돌아가는 행복 바이러스의 확산, 이것이 불교의 목적이라고 붓다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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