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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시간 일하고 3만 원... 계약서 한 장 없이 헐값 시장에 방치된 영상 편집자들

입력
2022.02.05 04:30
수정
2022.02.05 10:4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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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계약서 없이 지인 통해 일감 받아
노동 시간 아닌 영상 분량에 따른 급여
"1분에 2,000원" "무료" 셀프로 단가 깎아
타 직군 연봉의 절반... "단순 알바 아냐"

유튜브 채널 편집자로 일했던 김모씨가 편집 중이던 모니터 화면. 김씨는 당시 구독자 50만 명 규모의 또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도 일했는데 "컷편집, 자막 처리, 효과 작업까지 다 해서 1분당 1만 원"이라는 통보에 따랐을 뿐,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김씨 제공

유튜브 채널 편집자로 일했던 김모씨가 편집 중이던 모니터 화면. 김씨는 당시 구독자 50만 명 규모의 또 다른 유튜브 채널에서도 일했는데 "컷편집, 자막 처리, 효과 작업까지 다 해서 1분당 1만 원"이라는 통보에 따랐을 뿐,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다. 김씨 제공

1분당 1만 원. 구독자 50만 명 규모의 유튜브 채널에서 영상 편집자로 일했던 김모(26)씨는 유튜브 업계의 영상 편집자 임금을 이렇게 설명했다.

1분 편집당 1만 원을 받는다니, 꽤 괜찮은 보수일까. 실상을 알면 노동강도는 살인적이다. 영상 제작사에서 영상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모씨는 "프리랜서 편집자들은 20시간 일하고 3만 원 받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유튜브에 올릴 3분짜리 영상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는 줄 아세요?" 촬영원본의 분량 등에 따라 물론 차이가 크지만, 그가 설명한 프리랜서 영상 편집자의 노동 시간은 다음과 같다. "원본 분량이 총 5시간이라고 가정하면 내용 파악에 한 번, 주제 찾기에 한 번, 편집점 잡기에 한 번, 못해도 세 번은 영상을 살펴봐야 합니다. 처음에는 정속으로, 나머지는 2·3배속으로 본다고 가정하면 원본 확인에만 적어도 10시간이 걸리죠. 이후 영상 구성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1분당 최소 1시간으로 치면 3시간이 더해져요. 여기에 편집 시간도 3시간 더해야 합니다. 편집을 끝내고 영상을 최종본으로 추출하는 데 30분이 더 걸리고, 이외 수정 시간도 분당 3시간으로 가정하고 섬네일(영상 표지) 만드는 시간을 30분으로 잡습니다. 모든 과정을 예상하면 총 20시간이 소요되죠."

이 경우엔 시급이 1,500원에 불과해진다. 영상콘텐츠가 문화를 장악한 시대, 그 최첨병에 있는 영상 편집자는 어쩌다가 최저임금의 16%에 불과한 급여를 받게 됐을까.


영상 편집자 김모씨는 "유명 유튜버 채널에서 일할 당시 채널 수익을 배분해 준다고 약속하고는 편집 완료한 13편에 대해 아무런 급여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씨 제공

영상 편집자 김모씨는 "유명 유튜버 채널에서 일할 당시 채널 수익을 배분해 준다고 약속하고는 편집 완료한 13편에 대해 아무런 급여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씨 제공


직고용 구조 해체, 각자도생의 편집자들

유튜브 통계 업체 플레이보드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으로 구독자 1,000명 이상이면서 1년간 전체 시청 시간이 4,000시간 이상인 국내 유튜브 채널 수는 10만370개에 달했다.

이 수많은 영상을 편집하는 이들의 규모는 제대로 조사된 바 없다. 다만 앞선 통계에 따라 채널당 편집자를 한 명으로만 잡더라도 10만 명은 가뿐히 넘는다. 유튜브 외 다른 동영상 플랫폼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아진다. 영상 콘텐츠 시장이 팽창하는 한 ‘편집자’라는 직업군 규모도 커질 수밖에 없다.

영상 편집자 대부분은 프리랜서다. 방송사나 제작사에서 연출·편집을 담당하는 PD외에 편집만을 담당하는 편집자를 직고용하는 경우는 드물다. 예능·드라마는 편집에 필요한 인력이 많아 프리랜서 수급이 흔하다. 영상 콘텐츠 시장이 단기간에 개인 활동을 촉진하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중심으로 확장된 점도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프리랜서로서 직접 계약하든 제작사를 통해 발주를 받든 구두 계약이 대부분이다.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일감을 소개받는 업계 특성상 평판이 중요한데, 편집자들이 먼저 서면 계약서를 요구하면 ‘야박하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분당 1만 원'의 급여 책정엔 별 이유도 없다. 외국계 기업 영상 편집자인 K(26)씨는 “개인 사정으로 3분짜리 영상 편집을 외주 맡길 일이 있었는데 대학생 지원자가 1분당 5,000원까지 승낙해서 급여가 1만5,000원(3분 총액)으로 책정된 적이 있다”며 “급여라고 하기엔 민망한 금액이라 사측에서 그냥 ‘0’을 하나 더 붙여서 15만 원을 줬을 정도로 아무 기준이 없다”고 설명했다.

영상 제작사에서 편집자로 일한 권모(27)씨는 “프리랜서 편집자는 발주 측으로부터 ’네가 받을 연출료(편집료)는 얼마다’만 전달받을 뿐”이라며 “그 연출료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지만 인건비 책정 기준이나 영상 총 제작비 규모 등을 따져 물을 수 없다”고 말했다. 제작사 측에서 편집자가 가져가야 할 몫을 일부 떼 간다고 해도 편집자로선 알 도리가 없다.

권씨는 “그래서 방송 쪽 편집자들은 영상 마지막에 나오는 스태프 스크롤에 본인 이름 넣는 것을 필사적으로 챙긴다”며 “계약서 없이 내가 노동했다는 증거를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모 언론사에서 영상 편집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김모씨가 2020년 영상을 만들던 모습. 김씨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도 '기자의 도우미' '잡일하는 사람' 정도로 취급받는 게 부당하다고 느껴져 퇴사했다"고 심경을 설명했다. 김씨 제공

모 언론사에서 영상 편집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김모씨가 2020년 영상을 만들던 모습. 김씨는 "영상 콘텐츠를 만들어도 '기자의 도우미' '잡일하는 사람' 정도로 취급받는 게 부당하다고 느껴져 퇴사했다"고 심경을 설명했다. 김씨 제공


실제는 근로자인데...'사업자 등록' 종용 받아

이들은 프리랜서라곤 하지만 근로자성이 강하다. 고(故) 이한빛 PD 사망 이후 영상 스태프 권익 보전을 위해 설립된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측은 "영상 편집자들은 방송사・제작사・개인 채널 등 사업주로부터 업무 지시를 받아 근로를 제공하기 때문에 근로자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근로계약서 미작성은 불법행위로 작성 책임은 근로자가 아닌 사업주에게 있다. 서면 계약서를 체결・교부하지 않은 사업주에게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방송사조차 직고용과 근로기준법 적용을 피하고자 편법이 만연하다. 모 방송사에서 일하는 영상 편집자 이모(29)씨는 인력 파견업체를 끼지 않고 계약을 한다는 방송사의 말을 들을 당시엔 직접 고용일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계약을 앞두고 사측에서 “사업자 등록을 해와야만 계약이 가능하다”고 통보했다. 이씨를 1인 기업으로 만들어 위탁 계약을 하겠다는 뜻이었다. 결국 이씨는 사업자 등록 후 계약을 진행했다.

이씨 팀에 속한 편집자 4명 모두 같은 방식으로 위탁 계약을 맺었다. 이씨는 “규모가 큰 팀은 편집자가 10명 넘게도 있는데 그들도 모두 나와 같은 계약 형태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봄·가을 개편이 이뤄지는 방송 프로그램 특성상 편집 기간에는 하루 12시간 일하는 게 예사지만 비편집 기간에는 일이 아예 없기도 하다. 사측은 비편집 기간에도 꼬박꼬박 월급을 줘야 하는 정규직보다 편집 기간만 따져 급여를 줄 수 있는 프리랜서를 선호한다.

영상 편집자로 일한 권씨는 “이 분야는 연차가 높아질수록 프리랜서 비율이 더 높아진다”며 “경력이 쌓여 더 나은 조건으로 이직해서가 아니라 월급이 인상될수록 비편집 기간에 더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방송사 정규직 PD인 L씨는 "1, 2년에 한 명씩 뽑는 공채 PD 극소수를 제외하면 방송사 편집자 80% 이상이 위탁 계약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통상 '에디터'나 '인턴'이라고 불리는 어린 편집자들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지원준 한국독립PD협회 위원은 “이제 영상 편집자를 직접 고용하는 방송사는 없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는 그간 사측이 인력 파견·위탁 업체를 끼워서 직접 고용을 피하던 방식과는 또 다르다. 지 위원은 “요즘 방송사는 업체에 웃돈을 얹어주는 비용도 아까워한다”며 “아예 편집자를 1인 기업으로 만들어 노동법 적용을 피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사업자 등록을 한 편집자들은 고용 불안뿐만 아니라 이직 시장에서의 불리함까지 감수해야 한다. 사업자 등록을 기점으로 개인으로서 최소 1년 이상 방송사에서 일했던 경력이 끊겨버리기 때문이다. 지 위원은 “같은 방송사에서 같은 업무를 하고 있는데도 경력의 연속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분당 2,000원”... ‘셀프 후려치기’ 허다

영상 편집이 업무 환경이나 자격에 제약이 없다 보니 중·고등학생이나 ‘투잡’ 직장인들이 쉽게 뛰어드는 경향도 문제를 심화한다. 중학생 정모(14)군은 “영상 편집은 노트북만 있으면 집에서도 할 수 있어서 용돈벌이로 부담 없이 시작했다”며 “구독자 15만 명 규모 유튜브 채널과 1분에 7,000원 선으로 협상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인구직 커뮤니티 '트게더'에 올라온 구직 게시물. 분당 5,000원~1만 원 선으로 가격이 다양하고 무료 편집을 자처하는 편집자들도 적지 않다. '트게더' 캡처

구인구직 커뮤니티 '트게더'에 올라온 구직 게시물. 분당 5,000원~1만 원 선으로 가격이 다양하고 무료 편집을 자처하는 편집자들도 적지 않다. '트게더' 캡처

실제로 영상 편집자들이 주로 활용하는 구직 커뮤니티 ‘크몽’과 ‘트게더’에는 “1분당 2,000원에도 가능합니다” 등 극히 낮은 급여를 제시하는 게시물이 적지 않았다. “포트폴리오를 쌓을 겸 무료로 편집해주겠다”고 자처하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해당 커뮤니티 외에도 ‘틱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영상 편집 의뢰를 무료로 받는 이른바 ‘편집계’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구인구직 커뮤니티 '트게더'에 올라온 영상 편집자의 구직 글 일부. 분당 2,000원을 제시하는 등 '단가 셀프 후려치기'가 만연해 영상 편집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몸값을 지키기 힘든 실정이다. '트게더' 캡처

구인구직 커뮤니티 '트게더'에 올라온 영상 편집자의 구직 글 일부. 분당 2,000원을 제시하는 등 '단가 셀프 후려치기'가 만연해 영상 편집을 생업으로 삼는 사람들은 몸값을 지키기 힘든 실정이다. '트게더' 캡처

‘단가 셀프 후려치기’가 심화되자 영상 편집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편집자들은 최소한의 몸값조차 지키기가 어려워졌다. 영상 편집자 김씨는 “애초에 채널 측에서 컷편집, 자막 처리, 효과 작업까지 다 해서 1분당 1만 원이라고 정해놓고 시작했다”며 “급여 수준이 부당하다고 지적하려 해도 ‘이전 편집자는 이 돈에 했는데 당신은 왜 더 요구하냐’고 되레 따지니 할 말이 없었다”고 말했다.


프리랜서 구직 사이트 '크몽'에 올라온 영상 제작사들의 공고. 클릭해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분당 1만 원, 건당 30여 만원(7일 소요 기준) 등 금액 책정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크몽' 캡처

프리랜서 구직 사이트 '크몽'에 올라온 영상 제작사들의 공고. 클릭해서 내용을 들여다보면, 분당 1만 원, 건당 30여 만원(7일 소요 기준) 등 금액 책정 기준은 천차만별이다. '크몽' 캡처


연장・추가 업무에도 보상 없어

영상 송출 일자가 연기되거나 편집 분량이 늘어나는 등 예기치 못한 변수가 자주 생기는 직군이지만 그에 대한 보상도 기대하기 힘들다. 권씨는 “프리랜서는 3개월짜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계약을 해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방송 일자가 밀리다보면 계약 기간이 4, 5개월로 늘어나지만 급여는 그대로”라며 “기약 없는 방송일을 기다리면서 빈손으로 버티거나 부랴부랴 다른 일을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상 편집자 박모(34)씨는 기업홍보영상 제작사를 통해 간단한 편집 업무를 맡았다가 훨씬 많아진 업무량에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 박씨는 “처음 발주받을 때만 해도 컷편집만 하면 된다며 90만 원을 제시하길래 수락했다”며 “일을 하다 보니 30여 분 최종 편집본 전체 멘트를 자막으로 쳐야 한다고 바뀌고 2, 3회만 수정한다더니 20회 넘게 바꿨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결국 3, 4개월에 걸쳐 영상을 완성했지만 첫 제시 금액인 90만 원밖에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업무량이 많아져서 총 편집영상 완성본이 900분이 넘었으니, 1분당 1,000원도 안 되는 돈을 받은 셈이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예술인 고용보험 시행 1주년을 맞아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을 방문해 예술인 고용보험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이 예술인 고용보험 시행 1주년을 맞아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을 방문해 예술인 고용보험 관련 간담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계약서 미작성 불이익 강화해야... “인식 개선 시급”

영상 편집자를 위한 제도가 없는 건 아니다. 2020년 12월 10일부터 시행 중인 예술인고용보험 제도는 영상 편집자를 예술인 범주에 포함하고 있다. 그간 직장인만 가입이 가능했던 4대보험 대상이 편집자 등 프리랜서로도 확대되고, 일이 없는 기간에 구직 급여도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 역시 계약서조차 없는 대다수 프리랜서 편집자들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 예술인 창작 여건 개선을 위한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의 황경하 조직국장은 “근로계약서 미작성에 대한 사측 불이익을 강화하거나 계약서 미작성 신고자에 대한 보복을 방지해 영상 편집자가 계약을 증명하고 사회 제도를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상 편집을 단순 잡무로 치부하는 인식부터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소수의 정규직 영상 편집자들도 조직 내의 처우 불평등에 시달린다. 모 언론사의 영상 편집 직군 정규직 종사자인 B(28)씨는 “같은 정규직인데도 기자, 행정직 등에 비해 연봉이 반토막인 것만 봐도 이 직군을 간단한 아르바이트 수준으로 여기는 인식이 드러난다”며 “영상 편집 역시 타고난 감각과 전문적인 능력을 요하는 만큼 타 직군과 마찬가지로 시간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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