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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결혼 신상정보 역주행

입력
2022.01.2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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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2010년 7월 결혼한 지 일주일 만에 정신질환을 앓던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씨를 추모하는 이주결혼여성들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 사건 이후 맞선 전 신상정보를 제공하도록 '결혼중개업법'이 개정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0년 7월 결혼한 지 일주일 만에 정신질환을 앓던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씨를 추모하는 이주결혼여성들의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이 사건 이후 맞선 전 신상정보를 제공하도록 '결혼중개업법'이 개정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국제결혼인권연대’라는 단체가 3개월째 매일 오후 시위를 벌이고 있다. 국제결혼중개업자 모임인 이들은 ‘맞선 전’ 신상정보를 교환하도록 돼 있는 법령을 당사자 동의를 받아 늦출 수 있도록 개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치지 않는 확성기 시위에 오죽하면 주무부처인 여성가족부는 정치권의 부처 폐지 공약보다 이들의 확성기 소리가 더 압박감을 준다고 토로할 정도다.

□ 이 단체는 베트남, 캄보디아 등 주요 결혼이주여성 출신국의 행정절차가 복잡해 맞선 전까지 여성들이 신상정보 자료를 발급받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중개업자들은 어쩔 수 없이 일부 서류가 미비하더라도 관행적으로 동의를 받아 현지에서 결혼을 성사시키는데 성혼율을 높이기 위해 이 관행을 제도화시켜 달라는 것이다. 파경을 맞을 경우가 문제라고 한다. 이주여성들은 ‘탈법’을 빌미로 중개업자들을 고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연 매출 1억 원 미만 영세사업자가 대부분인 업계 사정상 고발 한두 번이면 존폐 위기에 몰린다고 호소한다. 이 단체는 최근 폐업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경기도 한 중개업자의 영정을 들고 21일 침묵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여가부는 부정확한 정보로 인한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선 맞선 전 정보제공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피해가 감소했다고는 하지만 국제결혼중개업체에 입은 피해 중 ‘정보 미제공과 허위정보 제공’이 전체의 4분의 1이나 된다. 국제결혼은 맞선부터 결혼까지 5.7일밖에 걸리지 않는 속성결혼이다. 이런 특성상 결혼하고 봤더니 이혼경력이 있다거나 신용불량자였다는 피해 호소가 끊이지 않는다.

□ 국제결혼은 한 해 2만 건을 헤아려 전체 결혼의 10% 안팎이다. 저개발국가 여성들에 대한 매매혼ㆍ인권피해 등 지적이 잇따르면서 정부는 결혼ㆍ범죄경력 등 신상정보 교환을 의무화(2012년)하고 키, 얼굴 등을 공개하는 국제결혼 광고를 금지(2021년)하는 등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건 국제결혼의 신상정보 제공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11명이 발의(결혼중개업 관리법)해 심의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인권을 존중한다는 정당의 국회의원들이 할 일인가.

이왕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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