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외교장관, 입장 확인에 그친 '우크라이나 담판'

블링컨 "러시아 침공 시 신속, 엄중하게 대응" 경고
라브로프 "미국이 다음 주 안전 보장 문서 주기로"
러, 해군 훈련 긴장 고조...바이든 '경미한 침입' 논란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회담을 앞두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제네바=A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을 막기 위해 미국과 러시아 외교장관이 21일(현지시간) 담판을 벌였지만 뚜렷한 합의점을 찾지는 못했다. 다만 러시아가 주장한 안전 보장 요구에 미국이 다음 주 답을 주기로 하는 등 대화는 이어가는 모양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위협한 적 없다”고 침공 가능성을 부인했지만 미국은 러시아의 군사행동에 ‘신속,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맞섰다.

러시아의 변칙 전술에 휘둘리는 와중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경미한 침입(minor incursion)’ 실언 논란과 유럽 분열 상황도 이어져 미국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스위스 제네바에서 1시간 30분 동안 우크라이나 문제 등을 논의했다. 러시아가 12만7,000명의 병력으로 1, 2월 중 우크라이나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양국 최고위급이 담판을 벌이는 자리였다.

블링컨 장관은 회담 전 독일 베를린에서 “전면적인 전쟁 위험이 우리 모두의 머리 위에 있다”며 다시 한번 러시아에 경고장을 날렸다. 이날 회담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의견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와 대화의 길에 동등하게 전념하고 있다”며 “그러나 만약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공격을 강행할 경우 단결되고, 신속하며, 엄중한 대응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블링컨 장관은 우크라이나 문제에 돌파구를 찾지는 못했지만 미러 양국은 상대의 우려를 명확히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라브로프 장관은 회담 후 “우리는 다음 주 (미국으로부터) 러시아의 제안에 대한 문서로 된 답변을 받기로 하고 회의를 끝냈다”라고 밝혔다. 러시아는 지난달 15일 구소련 국가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원국 가입 중단 등을 요구하는 안전 보장 조약 문서 초안을 미국에 전달한 상태다.

라브로프 장관은 또 “러시아 입장을 분석하는 사람들에게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국민을 한 번도 위협한 적이 없음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는 도발 수위를 계속 끌어올리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는 전투함 및 지원함 140여 척, 군용기 60여 대, 군 장병 1만여 명을 동원해 2월까지 지중해, 동해, 북대서양 등 세계 전역에서 훈련을 한다고 발표했다.

19일 우크라이나 북쪽에 있는 러시아 스몰렌스크주 옐냐에 군부대와 차량이 배치된 모습을 촬영한 위성 사진. 엘냐=로이터 연합뉴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20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기자들을 만나 “그 어떤 러시아 병력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어 이동한다면 이는 침공(invasion)”이라고 말했다. 하루 전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만약 (러시아의) 경미한 침입일 경우 우리는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두고 싸워야 하는 처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던 데 대한 해명이었다.

바이든 대통령 발언 후 우크라이나에서 “침입과 침공을 구분하려는 데 경악했다”는 반발이 이는 등 실언 논란이 일었다. 러시아의 소규모 침공 길을 열어줬다는 비판이었다.

서방 동맹 내 갈등도 드러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19일 유럽연합(EU) 의회에서 “우리가 유럽인으로서 다른 유럽인들이나 나토와 논의한 뒤 그 결과를 러시아에 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미국을 일방적으로 따르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됐기 때문이다.

워싱턴= 정상원 특파원 ornot@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