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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사용할 수 있는 플라스틱 컵? 친환경이 아니라 굿즈가 돼 버렸다 [그린워싱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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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워싱 탐정]<2>리유저블 플라스틱컵
지구는 병들어 가는데, 주변에는 친환경이 넘칩니다. 이 제품도, 이 기업도, 이 서비스도 친환경이라고 홍보를 하지요. 한국일보는 우리 주변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을 추적하고 정부와 기업의 대응을 촉구하는 시리즈를 4주에 한 번 연재합니다.
대학생 장상민(25)씨는 지난달 1일 방문한 강원 강릉시의 한 유명 카페에서 플라스틱으로 된 리유저블컵(다회용컵)에 음료를 받았다. 카페에는 이 컵에 대해 재사용할 수 있어 친환경이라고 설명하는 리플렛이 있었다.
일반 일회용컵보다 1,000원을 더 내야 했지만, 받아놓고 보니 난감했다. 그저 일회용컵보다 더 두꺼운 플라스틱컵이었다. 그래서 카페의 회수대에 놓고 왔다. 카페에 놓고 왔는데 1,000원을 돌려받지도 못했고, 돌려준다는 공지도 없었다.
두고 온 컵이 재사용된다면 다행이지만, 그냥 일반 머그컵을 쓰면 되지 굳이 플라스틱컵을 사용할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동행한 친구들은 다회용컵을 '굿즈'로 챙겨왔다. 원치도 않던 '플라스틱 굿즈'가 하나 더 생겼지만, 내구성이 떨어져 결국 버렸다고 한다.
일회용 플라스틱컵을 조금 더 두껍게 만든 뒤 “재사용할 수 있다”는 말을 붙이면, 이 컵은 친환경이 되는 걸까.
플라스틱 다회용컵은 지난해 스타벅스가 제주도에서 일회용컵을 사용하지 않고 다회용컵 재사용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주목받았다. 최근엔 50주년 행사로 증정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다시 쓸 수 있는 컵’이라는 리유저블 플라스틱컵은 스타벅스뿐만 아니라 많은 카페들에 퍼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회수율이 80%를 훌쩍 넘기지 않으면 차라리 일회용컵을 쓰는 게 낫다는 분석이 나온다. 컵을 뜯어보면 일회용컵과 큰 차이가 없고, 무게를 3, 4배가량 무겁게 만든 정도이기 때문이다.
일회용컵에 쓰이는 페트(PET) 대신 폴리프로필렌(PP) 재질을 썼지만, 어차피 플라스틱이다. 되레 환경단체에서는 플라스틱을 더 써서 환경 영향이 더 커졌다고 비판한다.
플라스틱 다회용컵을 사용하는 카페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스타벅스가 대표적이며, 소형 프랜차이즈도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일부 카페에서는 컵에 보증금 1,000원을 부과하고 다 쓴 컵을 반납하면 돌려준다. 그러나 대부분은 일정 금액 이상을 소비하면 컵을 증정하거나, 일회용컵 대신 이 컵을 제공하는 등 굿즈 행사에 그친다.
특히 플라스틱 다회용컵을 사용하는 카페들 중에서 컵이 4회 이상 사용되고 있다고 보장하는 곳은 알려진 바 없다. 일반 일회용컵보다 플라스틱을 3, 4배를 쓰니, 4회 이상 사용해야 의미가 있는데 말이다.
스타벅스, 폴바셋, 이디야 등은 다회용컵 굿즈도 내놨다. 파리바게뜨, 투썸플레이스 등도 단기 이벤트로 굿즈를 내놓은 적 있다. '더 두꺼운 플라스틱컵'이 '친환경' 이미지를 차용해 소비자들에게 어필되면서, 실질적으로 필요도 없는데 '굿즈용'이나 '행사용'으로 생산된다.
한국일보가 '리유저블컵'을 키워드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 게시물 3개월치(지난해 9월 28일부터 지난달 23일)를 분석한 결과, 게시물 수는 총 6,816건에 달했다. 스타벅스가 50주년 기념 행사로 다회용컵을 무료 증정한 날로부터 한 주간(9월 28일~10월 4일) 게시글이 52.3%(3,567건)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 밖에도 매주 100~300건의 게시글이 꾸준히 올라왔다.
리유저블컵으로 검색해 나온 게시물(6,816건)에 포함된 키워드로는 △텀블러(896건) △친환경(259건) △환경(257건) △지구(154건) △자연(81건) 등 플라스틱 다회용컵의 친환경성을 강조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밖에 △이벤트(360건) △행사(237건) △선물(223건) △캠페인(148건) 등 다회용컵을 주로 일회성 이벤트로 사용하는 추세도 엿볼 수 있었다.
2016년부터 플라스틱 다회용컵을 생산한 한 업체는 "2, 3년 전부터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다회용컵 수요가 급격히 늘었다"고 했다. 이 업체에서만 매달 다회용컵 약 300만 개가 생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플라스틱 다회용컵의 친환경성이 과장돼 있다며 다회용컵의 유행세에 우려를 표한다. 엄밀히 말해 다회용컵이 일회용컵과 다른 점은 두께뿐인데, 두꺼워진 만큼 플라스틱 사용량과 탄소 배출량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행동연구소에 따르면, 스타벅스 50주년 기념 다회용컵은 같은 재질 일회용컵에 비해 탄소를 3.5배 더 배출한다. 폴리프로필렌(PP) 재질인 50주년 기념 다회용컵은 무게가 49g인 반면, 같은 재질 일회용컵은 14g 정도다. 4번은 써야 일회용컵의 환경 영향을 상쇄한다.
이윤희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일회용컵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플라스틱을 조금 더 두껍게 만들어서 친환경 마케팅을 하는 것은 그린워싱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플라스틱 다회용컵 제조업체들은 탄소배출과 상관없는 주변적인 환경 효과로 컵의 친환경성을 부각시킨다. 환경부로부터 친환경 포장재 인증을 받았다고 내세우는 것이 대표적이다. 실제 카페에서도 환경 인증이 새겨진 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친환경 포장재 인증은 다회용컵과 관련이 없다. 이 인증은 유해물질이 검출되지 않고 재활용하기 좋은 소재로 만들면 부여되기 때문이다. 재사용이 가능한지 평가하는 기준은 없다. 그러나 다회용컵이라는 표현과 친환경 표지인증을 병렬하면, 소비자는 ‘재사용이 가능해서 친환경’이라고 오해하기 쉽다.
다만 지난해부터 친환경 포장재 인증 대상에서 일회용품을 제외해서 다회용컵에 친환경 인증 마크를 사용할 수 없다. 이전에 인증을 받은 경우 받은 연도부터 3년간 유효하다.
환경호르몬인 비스페놀A가 검출되지 않는다는 인증(BPA free)도 대표적인 그린워싱이다. 비스페놀A는 폴리카보네이트(PC) 등 특정 플라스틱에서만 검출된다. 일회용컵에 쓰이는 PPㆍPET에서는 원래 검출되지 않는다.
더구나 대부분 카페에서 재사용 여부는 소비자에게 내맡겨져 있는 실정이다. 자체 보증금을 적용해서 반납할 경우 돌려주고, 매장에서 컵을 재사용하는 등 기본적인 재사용 체계도 갖추지 않은 곳이 많다.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컵을 제공하는 경기 이천의 한 카페는 “다회용컵을 텀블러처럼 재사용하는 고객은 10명 중 1, 2명꼴”이라며 “집에서 물컵 용도로라도 사용하도록 권장하지만 실제 지켜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했다.
물론 플라스틱 다회용컵이 여러번 쓰이는 이상적인 상황이 가능하다면 완전히 그린워싱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회용컵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서울시는 회수율이 최소 80%를 넘겨야 다회용컵 사용이 유의미하다고 보고 있다. 컵을 만드는 데 사용되는 플라스틱양 차이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다회용컵은 3.3회 이상 사용해야 일회용컵보다 환경 효과가 큰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며 "우선 최소 목표를 80%로 잡되 향후 정확한 회수율 목표를 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회수율 80%도 여전히 낮다는 지적이 있다. 회수율이 80%라면, 컵 1개가 4번 쓰일 확률은 약 40.9%에 그치기 때문이다.
서울시의 플라스틱 다회용컵 회수율은 1월 셋째주(17~23일) 기준, 약 74.4%다. 제주도는 50%대에 그친다. 스타벅스는 서울시·제주도의 다회용컵 시범사업에 참여해 서울 12곳과 제주 모든 매장(23곳)에서 일회용컵 대신 다회용컵을 제공하고 있다.
다만 스타벅스는 회수율이 40% 이상이면 플라스틱 다회용컵이 일회용컵보다 낫다고 보고 있다. 스타벅스가 외부 컨설팅 업체에 의뢰해 계산한 결과, 회수율이 40%면 일회용컵과 탄소배출량이 같고 50%일 땐 11% 감축, 60%일 땐 23%를 감축한다는 것이다.
서울시와 40%포인트나 차이를 보이는 것인데, 스타벅스는 "외부 조사는 국내에서 생산된 다회용컵과 해외에서 생산·수입되는 일회용컵을 비교 기준으로 삼은 반면, 서울시는 국내 생산 제품들을 기준으로 계산해서 차이가 생긴 것 같다"고 설명하고 있다. 해외에서 생산된 제품은 수입과정에서 탄소배출이 더 늘어나는데, 스타벅스 일회용컵의 이런 측면을 감안했다는 것이다.
다만 스타벅스 관계자는 "40%라는 수치는 사업 초기에 외부 기관 조사를 인용한 것”이라며 “조사 결과에 국한하지 않고 반납기 추가 설치ㆍ인식 개선 캠페인을 진행하는 등 회수율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플라스틱 다회용컵이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의 시스템 확립이 필수적이다. 쉽게 반납하기 위해서는 같은 컵을 쓰는 참여 카페도 획기적으로 늘어야 한다.
서울시는 스타벅스 외 카페 7곳에서도 다회용컵을 이용할 수 있게 하고 다른 프랜차이즈 카페의 사업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참여 업체가 많을수록 사용문화가 확산되기 쉽기 때문이다. 또 컵에는 로고를 새기지 않아서 모든 카페가 컵을 공유하도록 했다. A카페에서 받은 컵을 B카페에 반납해도 돼 접근성이 높다.
컵 보증금도 1,000원을 붙였다. 커피를 살 때 소비자가 그 값을 지불하고 컵을 반납하면 돌려받는다. 보증금이 높아서 반납 유인도 크다. 반납기는 16개 운영하고 있다. 반납 받은 컵은 전문 세척업체가 수거해 살균ㆍ소독한다.
제주도 역시 현재 스타벅스 매장 외에 3곳에 불과한 반납기를 주요 관광지 10곳에 추가 설치할 예정이다. 또 플라스틱 폐기시설(클린하우스)과 연계해 버려진 다회용컵도 회수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스타벅스 외 참여 업체를 찾고 있지만 대형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매출 하락·소비자 불편을 이유로 고사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다회용컵 시범사업은 연간 수십억 개에 달하는 일회용컵 사용 근절을 위한 것"이라며 "다회용컵 설비를 늘리고 필요성을 홍보해 사용문화가 확산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 불편해하는 소비자들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크다. 백나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재사용이 담보되지 않은 다회용컵은 또 다른 플라스틱 굿즈를 양산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차라리 일회용컵을 사용하고 텀블러 이용 고객에게 큰 폭의 할인을 해주는 것이 낫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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