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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상과 '혼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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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상이란 혼자서 먹도록 차린 음식상이다. 예전 한국 사회에서 독상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었다. 한 방에서 식사를 같이 해도 할아버지는 아랫목에서 독상을 받으시고 나머지 식구들은 윗목에 차려진 넓은 상에서 밥을 함께 먹었다. 할아버지의 독상에 놓인 귀한 반찬 한 점을 넘보며 밥그릇과 숟가락만 들고 건너가는 것은 귀여움을 받는 어린 손자에게나 허용되었다. '독상을 받는다'는 말은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는 일을 뜻했다.
이에 비해 겸상은 주로 친밀한 관계나 동등한 대우를 강조할 때 나온다. 겸상은 둘 이상의 사람이 함께 음식을 먹도록 차린 상이다. '겸상하다'는 주로 부부나 형제의 식사 모습을 묘사하거나, 손님을 외롭게 두지 않으려는 주인의 배려를 표현한다. 세 사람이 마주 보고 먹게 차린 '셋겸상'도 있지만, 가족의 식사라 하면 언뜻 4인용 밥상이 떠오른다. 아마도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대국민 표어로 정착된 가족 이미지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드라마에서 알게 모르게 노출된 4인 밥상도, 가구점에서 가장 흔한 4인용 식탁도 한 시대를 거쳐 간 한국 문화의 소산이다.
그러던 한국 사회에서 1인 가구가 31%를 넘었다. 혼자서 장 보고 밥 먹는 이들이 여러 분야에서 주요 고객이 되었다. 하나를 주문해도 되는 배달 앱이 있고, 혼자서도 잘 먹을 사람을 위한 '품격 있는 한 끼'가 상품으로 등장했다. '혼밥'과 '혼술', 혼자서 즐겁게 여행한다는 '혼행' 등은 이제 새말로 수용되고 있는 분위기다. 심지어 '혼밥'은 방역지침을 전하는 뉴스에서도 쉽게 들린다. 그런데 혼밥이 과연 독상과 같을 수 있을까?
'혼자' 또는 '홀로'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어울리지 않고 동떨어져서 있는 상태이다. 혼자의 의미가 이럴진대, 혼밥의 복잡한 사연에 아랑곳하지 않고 언론이 소통의 수월성을 앞세워도 되는 말인가? 상품 가치로 미화된 혼밥의 이미지에 묻히면 진짜 '혼밥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사회가 놓치게 된다. 연일 된바람에 영하 10도가 넘어가는 세밑 추위이다. 예로부터 한국 사회는 이럴 때 홀로 지내는 이들을 함께 돌아보았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우리는 아이들에게 "혼자서 먹는 친구 곁에 앉아라"라고 가르쳤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밥을 먹게 시키고 있다. 그럴수록 더욱더, 지금 내가 쓰는 말이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지 한 번 더 돌아봐야 한다. 이것은 '현재'를 누리고 있는 어른들의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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