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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땀 흘렸던 어린이 기자들과의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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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간지에서 연락이 왔다. 인터뷰 요청이었지만 평범한 인터뷰가 아니었다. 어린이 기자님이 병원을 방문해 의사의 일에 대해 질문하고 어린이 신문에 싣겠다고 했다. 마음이 들떴다. 병원에서 아픈 어린이만 만나다가, 치료할 필요가 없는 어린이와 시간을 두고 대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영광이라 답하고 일정을 잡았다.
막상 인터뷰를 하려니 조금 긴장됐다. 어른과의 인터뷰에서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질문이 나오기 마련인데, 어린이는 어떤 질문을 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혹여나 어린이를 실망시키는 답을 하면 어쩌나 걱정이었다. 또 다른 다짐도 필요했다. 병원에서 사회생활을 하면 자연스럽게 칭찬과 미소에 인색해진다. 아무래도 웃거나 칭찬할 일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린이에게는 아낌없이 긍정적 반응을 보여야 했다. 나는 내면에서 멸종된 칭찬과 미소를 불러내기로 다짐하고 약속된 시간에 인터뷰 장소로 나갔다.
어린이 기자님 세 분은 나란히 허리를 펴고 앉아 있었다. 초등학교 4, 5, 6학년 기자님이었다. 그 모습만으로 진료실이 환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인터뷰를 시작하자 내 걱정 또한 어른의 기준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자님들은 일간지를 대표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 공부하고 독자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질문을 준비해 왔다. 의사라는 직업과 글을 쓰는 일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공식적이고 차분하면서 논리적인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기자님들의 정성 어린 공무에 화답하려고 열심히 답변했다.
그럼에도 본능을 숨기지 않은 4학년 기자님의 질문이 진료실의 분위기를 달궜다. 어른과의 대화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일명 '매운맛' 질문이었다. "의사로 20년 일을 하면 서울에 집을 살 수 있나요?" PD님이 부연 설명을 했다. 요즘 기자님이 저출산과 주택 문제에 관심이 많으세요. 비슷한 질문은 조금 더 이어졌다. "왜 피부과,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은 다른 의사 선생님보다 돈을 잘 벌어요?", "다시 태어나도 의사를 할 건가요?" 급기야 잠깐 카메라가 꺼져 있을 때 이런 질문이 있었다. "이건 비공식적으로 묻는 건데, 연봉이 얼마인가요? 요즘 직업에 관심이 많아서요. 또 정말 의사는 예쁜 애인이 있고 좋은 집에서 사나요?"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린이 눈에 의사라는 직업은 그렇게도 보이는 것이리라. 화기애애한 자리를 마치고 병원 로비로 내려오는데 4학년 기자님의 정갈한 양갈래머리가 너무 깜찍해 구체적인 칭찬을 하고 싶었다. "기자님 머리는 누가 묶어주시나요? 머리칼이 너무 예뻐요." "엄마가요. 그런데 예쁘다고 칭찬하는 사람은 조심하라 했어요. 납치할 수도 있대요." 예상치 못한 답변에 놀랐다. 정황상 납치와는 거리가 있어 억울했지만, 나 또한 어릴 때 들었던 말이 아직 아이들에게 전해지고 있던 것이다.
진료실로 돌아와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집값이 오르면 어린이가 내 집 마련에 대해 묻고, 취업 시장이 각박하면 어린이가 직업 만족도와 연봉에 대해 묻는다. 또 오랜 역사에서 어른은 어린이에게 위해를 가해왔다. 지금은 사라진 일이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그래서 어린이는 아직도 낯선 어른의 순수한 칭찬이 어렵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거나 앞으로도 변해야 하고 아이들은 오늘도 세상을 그대로 배운다. 어른이라 조금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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