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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거 아니냐" 실종자 가족 분통… 광주 붕괴 사고 수습도 '답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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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광주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붕괴 사고 현장에서 타워크레인 해체 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사고 발생 열흘 만입니다. 사고가 난 201동 건물은 23층부터 38층까지 16개 층의 외벽이 무너졌는데요. 그곳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던 타워크레인은 그동안 구조 지연의 주범으로 지목됐습니다. 그 무게로 인해 낙하물이 발생하거나 추가 붕괴 위험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해체 작업은 이날 오전 8시에 시작돼 오후 6시에 마무리될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작업 중 외벽이 허용 범위 이상 기울어지며 이튿날인 22일에도 작업을 완료하지 못했습니다.
본격적인 실종자 수색은 시(市) 사고수습통합대책본부 산하 전문가 자문단의 의견에 따라 타워크레인 해체 후 추가 안전조치까지 마쳐야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 실종자 6명 중 5명이 구조되지 않았습니다.
구조 작업과 동시에 사법 당국은 사고 원인을 파악하고 있는데요. 그동안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번 사고 역시 '인재(人災)'라는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습니다.
①부실시공, ②불량자재, ③허술한 관리 ④안전불감증.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사고 원인은 이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먼저 ①부실시공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사고 발생 직후 공사기간 단축을 위해 콘크리트가 채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작업을 이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특히 겨울철에는 기온이 낮아 콘크리트가 잘 마르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이 때문에 겨울철에는 열풍 작업을 통해 통상 2주의 양생(굳힘) 기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브레이싱(타워크레인과 건물을 고정시키는 장치)이 설치된 고층부 3개층의 양생기간은 5~7일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제 한 현장근로자는 한국일보에 "현장이 전반적으로 쫓기는 분위기였다. 콘크리트가 다 굳지 않은 상황인데도 타설(거푸집에 콘크리트를 부어 넣는 작업) 작업을 이어갔고 버팀목도 설치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 현장에서만 최근 2년 동안 다섯 차례 사전 신고된 시간을 초과해 공사를 진행하다 과태료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도 드러났고요.
17, 18일 민주노총이 건설노동자 7,573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80.7%가 이번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공사시간 단축에 따른 속도전'을 꼽았다고 합니다. 공기 단축은 일종의 '관행'으로 예견된 사고였다는 거죠.
그러나 현대산업개발 측은 "층수를 올릴 때마다 압축 강도를 확인하고 진행했기 때문에 일반적인 기준을 놓고 졸속 양생을 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붕괴 장면을 보면 흙무더기가 쏟아진다. 모래와 시멘트가 제대로 배합 안 된 것 같다"며 레미콘 품질이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찍이 제기됐는데요. 사고 현장에 콘크리트를 납품한 업체 10곳 중 8곳이 국토교통부로부터 부적합 판정(2020, 2021년)을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②불량 자재 사용도 개연성을 얻고 있습니다.
③시공사의 허술한 관리도 도마에 올랐습니다. 사고 당시 꼭대기 39층 바로 아래층인 PIT층(설비와 배관이 지나가는 층)을 뺀 모든 층에 동바리(비계기둥)가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동바리는 슬래브(바닥이나 양옥 지붕처럼 한 장의 판 모양의 콘크리트 구조물)의 지지력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합니다.
국토교통부 규정에 따르면 고층건물을 시공할 땐 최소 3개층에 동바리를 설치해야 합니다. 그러나 39층의 콘크리트 무게가 고스란히 전달되는 38층에도 동바리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이전에도 현장에서 철제핀, 돌멩이가 떨어졌다는 인근 주민들의 증언이 쏟아지며 ④안전불감증 문제까지 불거졌죠. 아파트 공사가 시작된 2019년 5월부터 이달까지 사고지점인 2단지에서만 400~500건의 민원이 제기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심지어 지난해 7월 광주 서구 구의회에서도 관련 사안이 논의됐다고 합니다. 현대산업개발도 민원을 알고 있었지만 이후 안전조치를 이행했는지는 확답하지 않았습니다.
또 한 달 전 옆동의 39층에서도 콘크리트 타설 중 슬래브가 주저앉아 공사를 중단하고 재시공했다는 증언도 나온 것으로 알려집니다.
문제는 안전불감증이 시공사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겁니다. 국토부는 수백 건의 민원이 발생한 이곳을 안전 점검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현대산업개발은 7개월 전 발생한 광주 학동 붕괴 사고의 시공사이기도 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현대산업개발을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MS) 인증 업체로 선정했습니다. 불과 사고 발생 2주 전에요. 논란이 일자 공단은 14일 인증을 취소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39층 바닥 두께를 무단으로 늘리고 공법 변경 사실도 알리지 않았다', '재하도급 업체가 대리시공했다', '설계 자체가 부실했다', '협력업체가 안전진단하는 등 감리가 부실했다'는 등의 총체적 부실 의혹이 숱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현대산업개발과 당국의 사고 수습을 놓고도 말이 나옵니다. 실종자들은 고층부에 매몰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요. 타워크레인 해체 등 안전한 수색을 위한 사전 작업(건물 안정화 작업)이 번번이 늦어지면서 고층부는 열흘이 지난 현재까지도 본격 수색을 못한 상황입니다.
당초 현대산업개발은 타워크레인을 해체할 크레인을 14일부터 조립, 늦어도 16일 저녁까지 설치하겠다고 밝혔는데요. 공사 현장 지반이 약해 조립이 하루 늦춰진 데다, 15일 현장기술자가 안전상 문제로 '작업중지권'을 발동하며 해체 크레인 설치부터 지연됩니다. 16일까지 건물 안정화 작업을 완료하겠다는 계획이 무산된 거죠.
이후 '201동에 매달려 있는 타워크레인을 와이어로 건물에 고정한 뒤 21일까지 해체하겠다'는 계획을 다시 세우는데요. 직후 수색 작업이 가능할 줄 알았지만, 시 자문단이 19일 "타워크레인 해체 후 건물보강 작업이 필요하다"는 새로운 절차를 뒤늦게 제시하는 바람에 수색 일정이 또 늦춰집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타워크레인 해체는 계획과 달리 22일에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실종자 수색은 빨라야 24일부터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현대산업개발은 잔해물 제거도 맡고 있는데요. 낙석방지망 설치가 안 돼 작업을 하지 못했는데도 했다고 부풀려 발표하거나, 현장수습을 위한 중장비 반입이 늦어지거나, 그마저도 고장나서 실종자 가족들이 분통을 터뜨리기 일쑤였습니다. 13일 발견된 실종자가 31시간 만에 수습된 것도 장비 고장 때문이었습니다.
시의 대처도 문제였습니다. 혼선이 거듭되자 이용섭 광주시장은 사고 발생 8일 만인 19일 정부에 중앙사고수습대책본부 설치를 요청하는데요.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 시장은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며 "그때그때 필요한 게 있을 때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답변을 내놓습니다.
결국 애가 타는 것은 실종자 가족들입니다.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 안모(45)씨는 정몽규 회장이 현장을 방문했던 17일 현대산업개발이 구조작업에서 빠질 것을 요구합니다. 이어 19일엔 "광주광역시·서구청·현대산업개발이 모두 한통속"이라고 규탄하죠. 그는 "정부가 특별팀을 만들어 사태를 해결하길 강력 요청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이 또 우려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무관심입니다. 안씨는 대선 후보들을 향해 "사고에 대한 해결책도 내놓지 않으면서 무슨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거냐"며 "생각이 있다면 성명 하나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습니다. 현재까지 사고 현장을 방문한 유력 대선 후보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유일한 것으로 알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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