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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 묘 이전부터 무당 정치까지...잊을 만하면 나오는 정치권 주술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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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선거가 다가오면 정가에 미신과 관련된 온갖 소문이 떠돌죠. 신군부시절부터 인터넷 검색어로 별별 민심을 다 읽는 요즘까지, 역술가‧무속인 풍문 없이 치른 대선이 있었나 싶을 정도니까요. 오죽하면 뉴욕타임스가 '한국에서 샤머니즘이 부활하고 있다'고 보도했을까요. 한데 저 보도, 이번 대선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압도적 표차로 승리한 2007년 17대 대선 때 나온 겁니다.
이번 대선도 예외가 아니죠. 지난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손바닥에 쓰인 '왕(王)' 자부터 최근 건진법사의 선대위 활동 논란까지 갖가지 얘기들이 정가를 흔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찾아봤습니다. 국내 보도된 정가의 역술‧무속‧풍수 사건 말이죠. 단, 호사가들 입에 오르내린 풍문을 무기명으로 전한 기사는 제외하고 정·관계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멘트와 이를 다룬 당시 기사를 추려봤습니다.
1990년대 '샤먼'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대표적 정치인은 박태준 민자당 최고위원입니다. 걸프전 발발로 국제 원유 값이 출렁일 때 굳이 헬기까지 타고 지방에 사는 역술인을 만났거든요. 게다가 6공 최대 부동산 비리로 꼽히는 '수서사건'이 수면에 드러나 정치권이 질타를 받던 시국이었습니다.
1991년 2월 21일 한겨레 보도를 보면 "박 최고위원이 설 다음 날 경남 함양군 서상면 서상중학교에 포항제철 헬기편으로 도착, 승용차 세 대로 수행원들과 함께 역술가 박재현씨 고향집에 들러 장시간 이야기를 나누고 갔다"고 나와 있습니다. 박 최고위원은 "노모가 살고 있는 경남 양상군 기자읍에 들러 설을 쇠고 창녕 부곡온천에서 하루를 묵은 뒤 이날 광양제철소를 방문하는 길에 들렀다"고 해명했지만, "면 직원들과 경찰관들이 (박 최고위원을) 영접하러 나서 부산을 떨며"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다고 하네요.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옛 중앙정보부가 1971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 당선 여부를 점치러 다녔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김충식 가천대 특임부총장이 동아일보에 연재한 기사 '남산의 부장들'에 따르면 정보부가 "김성락 국장(판단기획실장)을 시켜 운세 감정을 은밀히 시도했다"고 하네요. "강창성(당시 보안차장보)씨에 따르면 운명감정 대상 인물은 대통령 후보인 박정희, 김대중, 유진산, 김종필, 김영삼, 이철승 등 6인"이었습니다. 국내, 일본, 홍콩의 내로라하는 점성술, 관상쟁이 6명에게 후보들 사주단자와 사진을 보이며 대운을 감정한 결과 "박 대통령과 YS가 톱클래스였고, 김대중 후보를 비롯한 다른 분들은 강운하지만 톱이 될 수 없다"(강창성의 증언)는 답을 들었다는 겁니다.
'박 대통령도 이 내용을 보고받고 장난 같은 점술이나마 자신이 DJ를 누를 운세라는데 썩 만족해했다. 그 후 70년대 후반 박대통령이 YS를 때려 뉘기 위해 제명 가처분을 하는 걸 지켜보면서 운세감정보고서 탓이 아닌가도 생각해 보았다'(1991년 5월 10일 자 39화 'HR 대통령선거 사령부 가동')
정당 산하에 무속‧역술인 단체를 조직하는 일은 오랜 역사를 자랑하더군요. 직선제 개헌으로 치러진 1987년 13대 대선에서 민정당은 지지세를 최대한 모으기 위해 각종 단체들을 조직화합니다. 같은 해 11월 28일 자 한국일보는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조직과 자금이 필수적"이라며 "민정당은 그룹을 상대로 한 다중접촉을 위해 종친회, 보험 외판원, 화장품 외판원, 심지어 역술인단체까지 (민정당 외곽 지지단체) 활동범위에 포함시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세 번째 지방선거를 앞둔 1995년 5월 민자당은 아예 역술인 직능단체를 발족해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국민일보는 "민자당이 지방선거 등 앞으로의 각종 선거에 대비, 직능조직을 강화하는 작업의 일환으로 전국 점술가, 무속인들로 구성된 '민자당 경신회'를 발족시킬 예정"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박지원 당시 민주당 대변인은 "경신회 조직을 강행할 경우 기네스북에 올라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네요.
조용히 묻힐 수도 있었던 경신회는 199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또 한 번 논란이 됐습니다. 이 단체 인사들이 '왕이 될 상'을 예언했거든요. 그해 5월 12일 경향신문은 "다음 대통령은 목성(나무 목자가 들어가는 성씨)에서 온다"는 소문이 정가에 파다하다며 진원지로 경신회를 지목합니다. 최남억 경신회 회장은 한술 더 떠 "회원들이 세계지도를 펴놓고 나라점(국점)을 치면 어떤 사람이 한국을 이끌어나간다는 점괘가 나오는데 목성이란 점에 모두 일치하고 있다"며 아예 공식화해 버립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정국 때는 옛 민주당이 입길에 올랐습니다. 당시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탄핵을 주도하며 "올해 내 괘(주역에서 뽑은 운)가 적장의 목을 벨 운세"라고 말한 것을 두고 당 안팎의 비난이 컸죠.
국회 탄핵안이 가결된 사흘 뒤인 3월 15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신기남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은 이걸 대놓고 꼬집습니다. 이날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에서 "민주당의 비이성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 두 가지만 공개하겠다"며 조 대표와 같은 당 황태연 국가전력연구소장을 신랄하게 비꼰 거죠. 정치학자 출신의 황 소장은 허리춤에 점통을 차고 다닌 역술가로도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황 소장이 179차 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노무현 대통령) 탄핵을 결의하려다 '숫자가 좋지 않다'고 해서 두 차례 의총을 더 열어 181차 의총에서 결의했다고 한다. 조 대표도 올해 괘가 '적장의 목을 베는 것'이라는 것을 듣고 밀어붙이다 이번 사태를 만든 것"(신기남)이라고 지적했는데, 곧 "민주당 점괘 정치론"으로 불렸습니다.
황 교수는 2008년 펴낸 '실증주역'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점괘를 예언했는데, 이듬해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상황과 딱 들어맞아, 서거 후 화제가 됐다고 2009년 5월 26일 서울신문은 보도했습니다.
최근 국민의힘 선대본부에 무속인 건진법사가 활동했다는 의혹에 대해 이준석 대표가 "예전 모 대통령 된 분, 대선후보들은 조상묘 이장도 했다. 우리는 조상묘 이장했다고 그를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맞받았는데요(관련기사 이준석 "김건희, 안희정 발언은..."). 김대중 전 대통령을 두고 한 말 같죠? 15대 대선을 2년 앞둔 1995년, 그의 고향 신안의 아버지 묘와 포천 천주교 공원묘지에 있던 어머니 묘를 용인으로 옮겨 합장한 후 2년 뒤 대통령에 당선된 일화는 유명합니다.
이곳을 잡아 준 사람은 '육관도사'로 널리 알려진 손석우씨. 김 전 대통령도 풍수에 따라 묘를 이장한 사실을 부인하진 않았습니다. 1997년 6월 3일 한국일보의 '대선주자 시민포럼'에 참여한 김대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대선 후보는 "부모님 묘소가 경기 포천에 있었는데, 가파른 곳으로 위치해 비가 오면 무너지고 해서 용인으로 옮겼다"면서 "이 과정에서 지관(풍수설 따라 묘 가리는 사람)이 가서 본 모양"이라고 답했습니다.
정치인들의 조상 묘 이전은 여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도 16대(2002년) 대선에서 낙선 후 2004년 충남 예산군 예산읍 신양면 산성리에 있던 부친의 묘를 신양면 녹문리 야산으로 옮기며 봉분에 박힌 흉기를 발견하기도 했죠. 2004년 10월 2일 서울신문은 이 전 총재의 선영을 관리하는 이회운씨 말을 빌려 "원래의 묫자리가 풍수적으로도 좋지 않다는 소리가 있었고 일부에서 불법묘지라고 시비를 걸어와 합법적으로 문중 산이 있는 신양면으로 이장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전 총재가 묘를 이전한 곳에서 3km 떨어진, 지관들 사이에서 '제왕이 태어날 지세'로 꼽힌 곳에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가 부모 묘를 이장했는데, 과태료 처분을 받으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2001년 6월 27일 국민일보는 "충남 예산군은 김종필 자민련 명예총재 부모묘 불법 이장과 관련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문중 측에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밖에 한화갑, 김덕룡, 이인제, 이낙연 등 수많은 잠룡들이 조상 묘를 이전하며 입길에 오르기도 했죠.
정가 역술 논란은 과거에 더 많았을 것 같지만, 보도를 분석해보니 정반대였습니다. 뉴스빅데이터시스템 '빅카인즈'에서 1991년부터 최근까지 수집된 국내 보도 중 '역술', '무속 신앙' 등을 키워드로 정치 섹션만 검색해 10~11년 단위로 나눠보니 수치가 점점 늘고 있더군요. 구체적으로 △1991~2001년(제14‧15대 대선) 502건에서 △2002~2012년(제16‧17‧18대 대선) 1,698건 △2013년~현재(제19‧20대 대선) 2,830건으로 늘었습니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을 기점으로 관련 기사가 눈에 띄게 증가했네요. 최근 9년을 다시 둘로 나눴더니 △2013~2017년 1,407건 △2018년~현재 1,423건이었습니다. 물론 언론 매체가 늘고, 중대사에 무속의 힘을 빌리는 게 '뉴스'가 된 시대상을 반영한 결과일 수도 있습니다.
저 기사들 중 취재 출처를 확실히 밝힌 '팩트'만 일일이 찾다보니 시대별 특징도 다르더군요. 과거엔 역술가·무속인들의 정치인 하마평이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역술·무속을 정치 공세로 활용하는 모양새였습니다.
이에 따라 빈번하게 쓰인 키워드도 달라졌습니다. 2000년대(2002~2012년)에는 '굿판'(1,019건)이란 말이 가장 빈번한 반면 국정농단이 벌어졌을 때는 '무당 정치'(180건)란 말도 많이 쓰였습니다. 이번 대선도 만만치 않습니다. 국정농단이 집중 보도된 2016~2017년 2년간 역술, 무당 정치 등 키워드가 1,011건 보도됐는데,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1년 남짓한 기간에 같은 키워드로 851건이 검색됐을 정도니까요. 2018년 이후 정치섹션의 역술 관련 보도 중 60%가 작년부터 쏟아졌는데, 특히 '주술정치'(279건), '미신정치'(146건)이란 말이 많이 쓰였네요.
40여 일 남은 대선 기간에는 공약, 정책, 비전 같은 키워드가 어느 선거 때보다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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