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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화에서 간일화까지'… 5년 마다 피고 지는 단일화 승패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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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화(안철수로 단일화)라는 말이 시중에 떠돌고 있다. 야권 대표 선수로 제가 나가면 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고, 국민 통합이 가능하다. (3월 8일까지 단일화는 없다고) 단언할 수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 16일 KBS 일요진단 라이브)
"단일화는 2등과 3등의 전략인데, 1등이 왜 꺼내겠느냐. 일시적 지지율 상승에 고무돼 안일화라는 말까지 만드셨던데, 간일화(간 보는 단일화)라는 말이 더 뜨고 있다는 걸 모르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19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대선을 40여 일 앞두고, 역대 대선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손님, 후보 단일화가 또다시 찾아왔다. 이번엔 보수 야권의 문을 두드렸다.
다만 안갯속 대선 판세만큼이나 단일화 국면도 오리무중이다. 으레 단일화라 하면 서로 몸값을 높이려 밀고 당기기에 뭍밑 눈치싸움까지 총동원되기 마련이지만, 이번엔 강도가 좀 센 편이다.
당장 2012년 대선에서 단일화에 크게 한번 데였던 안철수 후보는 이번엔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을 태세다. '단일화를 하든 안 하든 안철수가 결국 승리한다'는 자강론으로 배수진을 쳤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 양당 후보 리스크로 지지율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절대 강자가 없는 판세라면 독자 노선으로 버텨 볼 만하다는 계산이다.
국민의힘도 표면적으로 아쉬울 게 없다고 아직까지는 큰소리다. 대표적 단일화 반대론자(더 정확히는 안철수 반대론자, 두 사람의 정치적 악연은 깊고 유구하다)인 이준석 대표는 그 연유로 단일화 피로감을 든다. 단일화 협상 과정에서 룰 싸움, 지분 나눠 먹기 등이 오히려 국민들의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다.
단일화 시너지 효과에도 선을 긋는다. 산술적으로 합쳤을 때만큼 지지율이 나오지 않을 거란 주장이다. 그러나 혹시라도 국민의힘이 밀릴까봐 주저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당장 야권 단일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보다 안 후보가 앞서는 결과가 나오고 있다. 만에 하나 제3정당에 제1야당이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단일화를 끝까지 안 하고 무작정 버티기는 어렵다. 범야권 후보 지지율 합계는 단순 계산으로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넘어서는 상황이다. 2017년 대선에서 보수 야권 단일화를 시도하지 않아 대권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넘겨줬던 홍준표 의원은 누구보다 적극적 '단일화 전도사'가 됐다. 다자구도 대선에서 단일화 없는 승리는 장담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안 후보의 안일화냐, 이 대표의 간일화냐. 두 사람은 결단코 단일화는 없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정치권 안팎에선 단일화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 나온 이상, 이미 양측의 샅바싸움은 시작됐다고 입을 모은다. 5년 만에 다시 찾아온 단일화, 이번엔 제대로 만개할지, 몽우리도 틔우지 못한 채 낙화할지 역대 대선의 단일화가 남긴 교훈을 통해 전망해보자.
1987년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치른 일곱 번의 대선 가운데 압도적으로 판세가 기울었던 2007년 대선을 제외하고는 '후보 단일화' 요구가 빗발쳤다. 단일화가 성사된 적도 불발된 적도 있는데, 단일화로 갈린 승부의 전적을 보면 딱 반반이다. 단일화를 통해 선거에서 승리한 건 3회, 단일화를 이루고도 상대 진영에게 패배한 건 1회, 단일화 자체가 불발돼 승리를 넘겨준 건 2회다.
6월 항쟁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1987년 13대 대선. 직선제를 쟁취한 국민들은, 정당한 선거에 의한 당당한 정권교체를 희망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첫 대권을 노리는 건 한 사람이 아니었다. 김영삼(YS)과 김대중(DJ)은 모두 출마했다. 그럼에도 '합쳐서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국민들의 요구는 뜨겁고 거셌다. 대국민 압박에 양측은 몇 차례 만나 단일화 논의를 했지만,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지지율이 엇비슷한 만큼 누구 하나 먼저 양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후보 단일화 없이 독자 승리가 가능하다는 자존심 대결의 끝은 대선 패배였다. 결국 노태우 후보 36.64%, 김영삼 후보 28.03%, 김대중 후보 27.04%의 득표율을 얻으며 양김(兩金)은 승리를 헌납했다. '뭉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는 한국 정치 제1의 철칙이 만들어진 시작이었다.
분열로 패배했던 쓰라린 교훈 덕이었을까. 1992년 14대 대선을 앞두고 YS는 1990년 1월 민주정의당(노태우), 통일민주당(김영삼), 신민주공화당(김종필) 등을 합쳐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는 '3당 합당'이라는 승부수를 띄웠다. 평생 투쟁의 대상이었던 군부정치 세력과 손을 맞잡은 명분으로 YS는 이런 말을 남겼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 '구국의 결단'으로 포장된 이 결정 끝에 여당의 2인자로 변신하며 대선 기반을 닦은 YS는 2년 뒤 민자당 대선 후보로 선출돼 결국 대권을 거머쥐었다. 다만 정치적 밀실 야합이라는 비판, 인위적 정계개편의 후유증은 YS가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남았다.
1997년 15대 대선 단일화의 주인공은 DJ였다. 이념 성향도 다르고, '유신잔당'이라고 비판했던 충청의 맹주 김종필(JP)과 손을 잡고 'DJP 연합'을 성사시킨 것. JP는 후보를 양보하는 대신, 공동정부와 내각제 개헌을 약속받았다. 대통령은 DJ가, 초대 총리는 JP가 나눠 갖는 권력분점형선거연합이었다.
당시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라는 특수 상황도 야권에 유리한 영향을 미쳤지만, DJ가 JP의 충청 표심을 끌어안지 못했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결국 DJ는 득표율 40.27%로 이회창 후보(38.74%)를 불과 1.6%포인트 차이로 꺾고 정권교체를 이뤄낸다. 연대가 만들어낸 승리였다. 반대로 이회창 후보는 경선 불복으로 뛰쳐나간 이인제 후보(19.2%)를 붙들지 못한 게 결정적 패배 요인이었다.
2002년 16대 대선은 단일화 승부수가 쏘아 올린 한 편의 역전 드라마였다.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선거 구도는 '1강(이회창) 2중(노무현·정몽준)'으로 굳어지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노무현과 정몽준 두 사람 모두 선거에서 이길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후보 교체 압력에까지 시달렸던 노무현 후보에게 단일화는 판을 뒤엎을 유일한 승부수였다.
"단일후보가 될 확률은 50%에 조금 모자라지만, 단일후보가 되기만 하면 대통령이 될 확률은 100%에 가까웠다. 복잡하게 계산할 일이 아니었다." 노무현은 결단했다. 후보직을 포기하더라도, 대선 승리라는 큰 뜻을 위해서였다. 두 사람은 단일화 방식을 두고 치열한 협상을 벌인 끝에 마침내 대선을 2주 앞두고 합의를 이끌어냈다. 대선 전날 밤 정몽준 후보가 지지를 철회하는 소동도 있었지만, 노무현은 48.91% 득표율로 이회창 후보(46.58%)를 꺾고 승리했다.
단일화가 성사됐다고 해서 반드시 선거 승리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2012년 18대 대선은 단일화에 성공한 후보가 대선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지 못한 최초의 대선이었다. 정권교체를 함께 외쳐온 문재인, 안철수 후보 양측은 시작부터 여론조사 방식을 둘러싼 단일화 룰 협상을 두고 극한의 갈등을 노출하며, 국민적 피로도를 높였다. 결국 안철수 후보가 돌연 후보직을 사퇴하는 중도 포기로 사실상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됐지만, 시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결국 문재인 후보는 48.02%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박근혜(51.55%)에게 패배했다. 아름답지 못한 단일화, 패배의 결말은 예고돼 있었다.
2017년 19대 대선의 경우, 선두를 달리던 문재인 후보에 맞서기 위해 홍준표·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요구가 일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당시 홍 후보와 안 후보의 대선 득표율을 합하면 45.44%로, 문 후보의 득표율(41.08%)을 넘는 수치였다. 보수 유권자들이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 안철수 단일화 압박에 나서는 강력한 이유다.
윤석열, 안철수 후보 앞에 놓인 단일화 모델은 결국 두 가지다. 1997년 DJP 연합처럼 권력 나누기를 통한 양보의 단일화냐, 2002년 노무현-정몽준 모델처럼 여론조사 승패로 가르는 경쟁의 단일화냐. 다만 패자는 빈손으로 물러나야 하는 여론조사 모델은 권력 의지가 강한 두 후보의 합의가 쉽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국민의힘 안팎에선 '공동정부' 모델이 부쩍 거론되는 모습이다.
한때 안철수 후보의 정치적 멘토였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공동정부' 모델에 힘을 실었다. "안철수 후보는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 커 이기고 지는 게임으로 몰아붙이면 2012년처럼 승복하지 않을 것"(KBS 라디오)이라면서다. 공동정부 형태가 정권교체의 명분도 살려주고, 지지층의 이탈도 줄여줄 수 있다는 거다.
단일화가 시작되면 대선 이슈는 모두 단일화라는 블랙홀에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부족했던 정책 비전 경쟁은 더 설자리를 잃고, 선거공학으로 대선을 치르게 되는 거다. 이에 전문가들은 단일화 논의를 하더라도, 선거 승리를 위한 연대를 넘어, 한국 정치 변화를 이끌어 낼 만한 새로운 비전을 담은 '가치 연대'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가 최근 칼럼에 적은 말을 빌려 보자.
"연대와 단일화를 통한 연합정치는 불가피하지만 선거공학에만 매몰된 연대와 공동정부는 후일 화(禍)를 더욱 키울 뿐이다. DJP 연대 역시 선거에선 파괴력이 컸지만, 좌파와 우파의 동거는 오래갈 수 없었고 내각제는 파기됐으며 공동정부는 단명했다. 가치가 실종된 연대의 당연한 귀결이다."
5년 만에 다시 찾아든 단일화의 꽃은 어떤 후보 앞에서 만개할 수 있을까. 분명한 건, 누가 됐든 극적인 시너지를 뿜어낼 단일화 서사를 새롭게 써내려가긴 쉽지 않아 보인다는 거다. 그동안 우리 국민들은 한때 피고 지는 단일화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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