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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 주공아파트'는 한국 주택사를 어떻게 바꿨나

입력
2022.01.19 04:30
수정
2022.01.19 11:36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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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 북콘서트
저술-학술 부문 수상작 '한국주택 유전자'
저자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찾아낸 평양 '아즈마 아파트'의 모습. NARA·박철수 교수 제공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찾아낸 평양 '아즈마 아파트'의 모습. NARA·박철수 교수 제공

역사는 승자, 즉 권력자의 관점에서 기록된다는 말은 한국 건축사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권력자는 그가 머물렀던 으리으리한 집(궁궐)과 사원, 하다못해 무덤(왕릉)까지 연구 대상이 되지만, 필부필부의 집은 그 건축사적 가치를 논의하는 데 있어 홀대받아 왔다.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학술 부문 수상작인 '한국주택 유전자(발행 마티)'는 주변부에 머물러 온 보통 사람들의 집을 건축사의 중심부로 올려 놓는다. 저자인 박철수(62)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17일 오후 7시 화상(줌·Zoom)으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에서 "이 책은 권력자들이 아닌 보통 사람들의 집에 관한 기록"이라며 "교과서에서 배운 적 없는, 그동안 등한시했거나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았던 자료를 중심으로 한국 근현대사를 재구성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약 1시간 30분간 진행된 이날 강연에서 책의 집필 과정, 한국인의 주택 변천사에 대해 소개했다.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학술 부문 수상작인 '한국주택 유전자(발행 마티)'의 저자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웃고 있다. 마티 제공

제62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학술 부문 수상작인 '한국주택 유전자(발행 마티)'의 저자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웃고 있다. 마티 제공

책은 그가 30년 넘게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쓰였다. 1, 2권을 합해 1,400페이지에 달하는 압도적 분량으로, 포함된 도판과 이미지만 1,100여건이다. 이 중 80%는 박 교수가 한국 근현대사 건축사 사료로써의 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그는 "아무도 들춰보지 않던 자료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석해 그 귀중한 가치를 찾아줬다는 데 지은이로서 뿌듯하고 기쁘다"고 말했다.

1934년 평양에 건립된 '아즈마 아파트'의 실체를 찾아낸 과정은 지난하고 집요했던 자료 수집 과정을 짐작게 한다. 박 교수는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에서 '평양'이라고 하는 키워드로 6·25전쟁 때 찍힌 평양 폭격 사진 5,000장을 받아 추리고 추려, 아즈마 아파트의 위치와 모습을 찾아냈다. 책에는 한 페이지 실린 사진이었지만 이 작업만 두 달 반이나 걸렸다. 그는 "당시 근대 건축의 정수라고 불렸던 건축물을 실제로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국가 차원에서 문학, 사학, 철학 외 건축 부문에도 재정을 상당 부분 투여해 자료를 발굴, 정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1960년 촬영된 서울역 근처 '관문빌딩'의 모습. 고유명사로서의 '상가주택' 지위를 처음 얻은 건축물로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의 관문에 있다'고 해서 관문빌딩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건물의 위, 아래 창문 위치가 일치하지 않는데, 이런 자유로운 입면이 근대 건축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NARA·박철수 교수 제공

1960년 촬영된 서울역 근처 '관문빌딩'의 모습. 고유명사로서의 '상가주택' 지위를 처음 얻은 건축물로서,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서울의 관문에 있다'고 해서 관문빌딩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건물의 위, 아래 창문 위치가 일치하지 않는데, 이런 자유로운 입면이 근대 건축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NARA·박철수 교수 제공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2017년 서울로 7017에서 촬영한 관문빌딩의 모습. 옛 흔적이 남아 있다. 박철수 교수 제공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2017년 서울로 7017에서 촬영한 관문빌딩의 모습. 옛 흔적이 남아 있다. 박철수 교수 제공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17일 화상으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에서 '한국주택 유전자(발행 마티)'를 집필한 목적과 과정, 한국인의 주택 변천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줌 캡처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가 17일 화상으로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작 북콘서트에서 '한국주택 유전자(발행 마티)'를 집필한 목적과 과정, 한국인의 주택 변천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줌 캡처

박 교수가 꼽는 한국 주택사의 분기점이 된 주택 유형은 잠실 주공 아파트와 둔촌 주공 아파트다. 그는 "한국 사람이 현재 집을 살 때 고려하는 '브랜드 대단지 아파트'라는 기준을 탄생시킨 게 이들 아파트"라며 "2022년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1970년대 중반에 만들어진 아파트 체제가 매우 중요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 독자가 온라인에서 이 책을 두고 "한국 사회가 아파트에 환장하는 사회가 되어 가는 그 역사"라고 평가한 데 대해 "무릎을 탁 쳤다"며 공감했다.

적극적 독자라면, 한 번쯤 자기 일생의 기억과 거취가 담긴 주택의 역사를 돌아보라는 말도 전했다. 그는 "본인 주민등록초본을 떼면, 내가 처음 살던 집부터 현재 머무는 집까지 모든 기록이 다 나온다"며 "정부의 항공사진서비스를 이용해 과거의 집을 살펴보면서 당시의 기억을 더듬고 이야기를 나누면 재미도 있고, 또 다른 지식을 생산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송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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