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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배 "병채가 아버지 돈 달라고 해 골치"...곽상도 로비 정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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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핵심 인물인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56)씨와 천화동인 5호 소유주 정영학(54) 회계사 사이의 대화 녹취록에 김씨의 정·관계 로비 정황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일보는 '김만배·정영학 대화 녹취록'을 입수해 이 같은 사실을 파악했다.
김씨는 이른바 '50억 클럽' 인사로 지목된 곽상도 전 의원과의 '금전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는가 하면, 성남시 인사들과의 유착 관계를 의심케 하는 발언도 이어갔다.
18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김만배·정영학 대화 녹취록'에는 곽 전 의원 이름이 여러 차례 언급된다. 2020년 4월 4일 대화를 보면, 김씨는 화천대유에서 잠시 일했던 직원 이름을 언급한 뒤 "그래도 (돈) 많이 받았지. 사람들 참 욕심 많다"며 곽 전 의원을 입에 올렸다. 김씨는 "병채 아버지(곽 전 의원)는 돈(을) 달라고 그래. 병채 통해서"라며,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돈을 챙겨달라고 요구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김씨는 이어 병채씨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을 정 회계사에게 그대로 전했다. 김씨가 "뭘, 아버지가 뭘 달라냐"고 병채씨에게 묻자, 병채씨가 "아버지한테 주기로 했던 돈 어떻게 하실 건지"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야, 한꺼번에 주면 어떻게 해? 그러면 양 전무보다 많으니까 한 서너 차례 잘라서 너를 통해서 줘야지. 그렇게 주면 되냐"고 자신이 병채씨에게 되물었던 내용을 정 회계사에게 이야기했다. 화천대유 임원이었던 '양 전무'보다 곽 전 의원에게 줄 돈이 많기 때문에 한 번에 주기는 어렵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이보다 앞선 2020년 3월 24일 녹취록에서도 김씨는 화천대유에서 근무한 직원들에게 성과급 명목으로 줄 돈에 대해 정 회계사에게 설명하면서 '양 전무'에게는 50억 원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곽 전 의원에게 건넬 돈이 '양 전무보다 많다'고 언급한 점에 비춰보면, 김씨는 최소 50억 원을 전달하려고 마음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곽 전 의원과 병채씨 이야기를 계속하자, 정 회계사는 "형님도 골치 아프시겠습니다"라고 맞장구를 쳤다. 김씨는 그러자 "응 골치 아파"라고 말했다.
검찰은 병채씨가 지난해 화천대유를 떠나면서 챙긴 퇴직금 및 성과급 50억 원의 성격에 대해, 김만배씨 부탁으로 '성남의뜰 컨소시엄'이 대장동 사업자로 선정되는 데 곽 전 의원이 도움을 준 대가로 보고 있다.
대장동 개발사업에 뛰어든 성남의뜰 컨소시엄에 하나은행이 참여하고 있던 상황에서, 경쟁관계에 있던 산업은행 컨소시엄이 하나은행 측에 참여 의사를 타진하자, 곽 전 의원이 이를 막아내는 역할을 했다는 게 검찰 판단이다. 컨소시엄이 깨질 것을 우려한 김씨가 곽 전 의원을 통해 하나은행 측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곽 전 의원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지난달 1일 기각됐다. 곽 전 의원은 "검찰은 제가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에게 부탁했다는데, 김씨가 과거 남욱 변호사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는 것 외에는 아무 자료가 없다"고 주장했다. 더불어 "문제가 되는 건 저밖에 없고 다른 이들은 (검찰이)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50억 클럽이 실체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본보는 녹취록 내용과 관련한 해명을 듣기 위해 곽 전 의원에게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녹취록에는 김만배씨가 대장동 사업을 진행하는 동안 공무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하면, 병채씨가 로비받은 공무원들이 대장동 사업에 협조해주고 있는지 파악해 김씨에게 보고하고 있다는 듯한 내용도 나온다.
김씨는 2020년 7월 6일 정 회계사에게 "잘못하면 너하고 나하고 구속이야. 응? 너 사고 없이 여기까지 했으면 정성 들이면서 맨날 해야지"라며 주의를 줬다.
김씨는 이어 "돈 좀 더 주면 어때. 마지막에 공무원들이 지네들 밀착된 업체들 뒤로 받아가고 하는데, 위에서 물을 많이 부어야 밑으로 내려간다. 병채가 이 물을 갖고 물을 내려주고 있나 보고 있다"며 병채씨의 역할을 언급했다.
김씨는 구체적으로 "병채한테 맨날 보고받고 있다. '그래 그 물이 잘 내려오고 있나' 그러면 얘는 이래 '아 이쪽은 공무원하고 잘 해서 농사가 잘되고 있습니다. 순조롭게. 저쪽은 잘 안 되고 있습니다. 뭔가 모르는 애들이다'"라고 정 회계사에게 말했다. 김씨가 언급한 '뒤로 받아간다' '물이 잘 내려간다' 등의 표현은 흔히 공무원에 대한 로비나 부적절한 관계를 뜻하는 은어로 해석된다.
병채씨는 50억 원 퇴직금 의혹이 불거지자 지난해 9월 2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015년 화천대유 입사 후 2017년에는 단지 조성공사가 착공되면서 4개 현장의 원활한 공사 추진을 위한 후속 인허가, 현장 관리 및 감독 업무를 주로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퇴직금 50억 원에 대해서도 "일 열심히 하고, 인정받고, 몸 상해서 돈 많이 번 것"이라며 정당한 성과급이란 점을 강조했다.
녹취록에는 김씨가 공무원을 접대한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도 다수 등장한다. 2020년 6월 17일 김씨는 정 회계사에게 "내가 성남을 떠날 것 같니? 이 일을 하기 위해서 형이 밤마다 공무원을 얼마나 많이 만났는데"라고 말한 뒤, "성남시"라고 짧게 덧붙였다. 정 회계사가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말하자, 김씨는 "지금도 만나"라며 "다 뒤에서 밤에 길을 청소해주고. 길을 가게. 장애물을 밤에 제거 다 하잖아"라고 이야기했다.
김씨는 골프 접대를 통한 공무원들과의 친분 관계 유지에 대해서도 말했다. 2020년 7월 6일 녹취록을 보면, 김씨는 화천대유 임원들이 한 달에 일곱 번 정도 골프를 하고, 자신도 한 달에 두 번은 '시청 사람들'과 골프를 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그는 "내가 저녁마다 만나고 주말마다 시청 사람들 데리고 가서 공치는데"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언론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는 2020년 3월 31일 대화에서 "김만배 방패가 튼튼하다"며 자신의 별명에 대해 "이지스함이야. 김 이지스"라고 말했다. 이지스함은 미국이 개발한 통합 전투체계인 '이지스(Aegis) 시스템'을 탑재한 군함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제우스신의 방패에서 유래해 모든 무기를 막을 수 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김씨는 정 회계사에게 "대한민국에 이 큰 사업을 해서 언론에서 한 번 안 두드려 맞는 거 봤어?"라고 물었다. 정 회계사가 "그건 형님이 계셔서 그렇죠"라고 말하자, 김씨는 "그럼"이라고 받아들였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11일 검찰 조사를 받으러 출석하며 정 회계사와의 대화 녹취록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당시 "지금 제기되고 있는 의혹들은 수익금 배분을 둘러싼 갈등 과정에서 특정인이 의도적으로 녹음하고 편집한 녹취록 때문"이라며 "사실이 아닌 말이 오갔다"고 반박했다. 녹취록 내용이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취지다. 김씨 측은 이날 본보와의 통화에서 "녹취록 내용과 관련해선 (어떤) 말을 할 수도, 확인해 줄 수도 없다"고 밝혔다.
김씨가 실제로 녹취록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러 부적절한 행위를 했는지는 불분명하다. '50억 클럽'과 관련해서도 재판에 넘겨진 인물은 아직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검찰은 김씨와 정 회계사를 포함한 '대장동 일당'을 일단 배임과 뇌물 혐의 등으로 기소한 뒤, 곽상도 전 의원 등 정치권과 법조계 인사를 겨냥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녹취록 내용이 사실인지, 과장이었는지는 결국 검찰이 풀어야 할 과제로 남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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