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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매의 여름밤' 속 옛 나무벽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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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매의 여름밤'은 가족이 재개발이 이루어지는 수색에서 떠나, 인천에 있는 할아버지의 2층 단독주택으로 이사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영화를 촬영하기 전 가장 품을 들였던 일은 재개발 지역에서의 촬영 허가와 단독주택을 찾아 섭외하는 일이었다. 내가 가족의 공간으로 원했던 단독주택의 요건은 세월감이 느껴지는 나무 벽으로 되어 있는 실내 공간과 내·외부 공간이 개방되고 품이 넓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어렸을 때 자라며 살았던, 익숙하게 봐오던 집들의 풍경이었고, 나무가 주는 온기가 가족들이 모여 있을 때의 따뜻한 분위기를 잘 표현해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러한 나무 벽으로 된 옛 가옥을 찾고 섭외하는 일은 예상보다 만만치 않았다. 영화의 제작부 일을 하는 친구에게 혹시 이런 집을 알고 있는지 물었더니, 제작부 친구는 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모두 나무 벽으로 된 집을 찾는 거냐고 물으며, 그런 집을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답만 해주었다.
우여곡절을 거쳐 '남매의 여름밤'의 배경이 되어 준 집을 발견했을 때는 영화를 찍기도 전에 "해냈다"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노부부가 자식을 낳아 출가시키는 50년의 시간 동안 거주하며 마당을 가꾸고, 생활한 시간이 고스란히 축적된 나무 벽의 집이었다. 촬영 당일 이 집에 처음 방문한 스태프와 배우들은 하나같이 예전 할머니, 할아버지 집이 딱 이렇게 생겼다고 얘기했었는데, 나는 그 얘기를 들으며 함께 추억하는 그 집들이 지금은 대체 왜 이렇게 찾기 어려워진 건지 궁금하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영화를 완성한 이후 각본집 출간을 진행하며, 함께 실을 최원준 숭실대 건축학부 교수의 에세이를 받아보고서야 이 주택 양식이 1970~80년대 유행했던 프랑스 가옥 형태의 주거 형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 양옥은 근대화와 서구화를 향한 소시민적 꿈에 힘입어 도시 한옥을 대체했으며 이 양식은 다시 아파트로 대체되며 찾기 힘들어졌다고 적었다.
그런 점에서 요새의 한국 특히나 서울의 변화들은 아쉽고 쓸쓸하게 느껴진다. 고층 아파트와 빌딩들로 구획화, 획일화되어가는 도시의 풍경들은 향수나 기억을 담고 있기보다 편의성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이렇듯 도시 풍경이 변화하다 보니 현대 영화들의 대다수는 실제 공간에서 촬영을 하기보다 세트를 만들어 촬영하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원하는 공간을 찾는 것보다 구현하는 것이 더 용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정으로 현대의 한국 영화들은 '디아스포라'적인 색채를 띤다. 실제 공간으로 인지되기보다 무국적 형태에 가까워지며 상상이 덧입혀진 배경이 주를 이룬다. 반대로 예산상 세트를 구현하기 어려운 독립영화들은 풍경이 풍부한 지방을 배경으로 촬영하거나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들을 찾아가며 영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형편이다.
CG의 발전으로 상상의 세계가 정교하게 구현되는 것을 보는 즐거움도 크지만 1990년대, 2000년대의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한국, 도시 풍경들의 정취가 그립기도 하다.
영화의 미장센이란 사실 간단하다. '화면 내의 모든 것이 연기한다'는 관점에서 영화적 미학을 추구하는 공간연출을 말한다. 나는 말갛고 생활감이 드러나는 얼굴의 배우와 영화를 만들고 싶은 것처럼, 어떻게 살아왔는지 켜켜이 시간이 쌓인 정취가 느껴지는 공간이 연기하는 영화를 보고 싶고,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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