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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에 남은 생명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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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형·살인 기계 '기요틴(Guillotin)'이 최대한 고통 없이 형을 집행하려는 인간적 동기로 발명됐다는 사실을 소개한 바 있다. 하지만 프랑스 혁명기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가 시작되고 기요틴 처형이 본격화하면서 과연 단두로 모든 고통이 끝나는지를 두고 논란이 시작됐다. 구경꾼들의 기이한 목격담, 즉 목이 잘린 뒤로도 눈을 깜박이는 생명반응이 한동안 이어지더라는 증언들이 논란을 부추겼다. 형리가 잘린 머리의 따귀를 때리자 모욕감에 미간을 찡그렸다는 증언도 있었다.
미국 인류학자 겸 작가 프랜시스 라르슨(Frances Larson)이 단두의 역사를 정리한 2015년 저서 '단두(Servered: A History of Heads Lost and Heads Found)'에는 잘린 머리가 눈을 깜박이고, 이를 갈고, 입술을 움직였다는 등의 여러 진술과, 진위를 확인하기 위한 실험 관찰 연구가 진행됐다는 사실도 소개돼 있다.
책에 따르면, 프랑스 혁명기의 한 해부학자(Dr. Seguret)는 당국의 승인하에 단두된 머리를 햇빛을 향해 치켜들어 눈꺼풀이 움직이는지, 해부용 칼로 혀를 찔러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그 결과 잘린 뒤에도 눈이 부신 듯 눈꺼풀이 닫히고 혀를 찌르는 순간 얼굴을 찡그렸다고 한다. 심지어 한 죄수는 단두 후 약 15분간 말을 건네는 이를 쳐다보는 것처럼 눈을 맞추기도 했다고 기록했다.
가장 유명한 일화는 화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앙투안 라부아지에(1743~1794) 이야기다. 당대 최고의 화학자였던 그도 세금 징수원으로 일한 이력 때문에 혁명광장에서 단두됐는데, 형 집행 직전 지인들에게 "목이 잘린 뒤 내 눈을 지켜봐 달라. 의식이 있다면 계속 눈을 깜박이겠다"고 유언했다는 일화. 그가 눈을 깜박였는지, 그 깜박임이 의식적 노력의 결과인지 근육 경련 탓인지, 아니 그런 진술을 하긴 했는지 여부도 물론 확인된 바는 없다. 1793년 1월 21일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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