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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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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심상정이 사라지자 세상이 심상정을 찾고 있다. 지금처럼 심상정에게 관심이 몰리는 건 대선 들어 처음이다. 사라짐으로써 오히려 존재감을 드러낸 심상정, 지지율 프레임에 갇힌 대선정국에서 잊힌 정의당 대선후보다.
심 후보는 12일 밤부터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숙고에 들어갔다. 선거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말만 남겼다. 이런저런 얘기가 많지만 지지율 하락의 위기가 컸을 것이다. 최근 그의 지지율은 2~3%대로 허경영 후보에게도 밀린 여론조사가 있다. 불과 5년 전 대선에서 201만 표(6.17%)를 얻은 진보 후보의 추락이다.
무엇보다 원인은 대선이 지지율 프레임 속에 비호감 선거가 되면서 미래 논의가 사라진 데 있다. 펀더멘털보다 인기주만 찾는 유권자들에게 심 후보가 설 공간은 없다. 어쩌면 우리가 먼저 그를 지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따져보면 위기는 외부에만 있지 않다. 정의당의 뿌리였던 양대 노총을 이끌던 인사들은 거대 양당으로 흩어졌다. 20~30대의 관심사인 젠더 문제는 국민의힘의 갈라치기에 대응하는 데도 급급하다. 약자와 소수를 위한 정당, 노동자와 여성을 위한 당에서 페미니즘만 보일 뿐이다.
위기는 2018~19년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민주당에 협력한 데서 시작됐다. 이를 위해 조국 사태를 엄호하면서 민주당 2중대 소리를 들었다. 심 후보는 당시 개정 선거법으로 총선에서 20석 이상을 차지해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거대 양당의 비례위성 정당들이 창당되면서 오히려 피해자로 전락했다. 나중에는 여당마저 거북스러운 짐 취급을 했고, 지난 총선 때 그의 지역구엔 민주당 A급 유세단이 종횡하며 당선을 위협했다. 비극은 유권자들이 이런 정의당을 정권교체 범주에 포함시키는 현실이다.
1차 대전 이후 벌어진 유럽 좌파의 형제살인 사건에 비유하자면 심 후보는 한국의 로자 격이다. 한때 민주화 운동을 이끈 여성들에게 한국의 로자 룩셈부르크란 칭호는 아주 영광이었다. 그러나 심 후보는 영예의 장면이 아니라 끝내 쓸쓸하게 버려진 로자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진보의 위기가 어디에서 비롯됐든 우리 사회는 왼쪽 날개 없이 날기 어렵다. 심 후보의 위기가 그와 정의당의 문제로 국한될 것은 아니다. 거대 양당과 같은 존재감을 과시해온 대안정당의 위기로 봐야 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무상급식, 아동수당, 선거연령 하향, 기초노령연금 등은 여전히 허황된 얘기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위축된 진보의 현재는 독일 사민당이 반전과 변혁을 실천해온 로자를 불편해한 것처럼, 실용을 앞세워 진보를 수용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 단면일 수도 있다.
교황청이 일부러 악마의 대변인을 임명하는 것은 아무리 선한 의지라도 논쟁해야 한쪽으로 극단화되거나, 편향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대선에도 이런 악마의 대변인은 필요하다.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는 후보, 정당이 없다면 균형추는 사라지고, 사회에 경고를 울리는 알람은 울리지 않을 수밖에 없다. 더구나 지금은 복잡한 이슈가 많고 착종된 상태여서 무엇 하나 정리하기 어려운 시절이다. 그럴수록 진보와 보수란 다초점 렌즈로 봐야 전체 모습을 잡아낼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빨간 생선, 파란 생선만 먹고 살 수 없듯이 지지율만이 아닌 가치의 균형도 도모해야 한다. 양대 정당의 공약 구분이 무너지고 정치개혁은 실종된 이번 대선이라면 더욱 그렇다. 심 후보의 가치를 지지율 3%로 계산할 문제는 아닌 것이다.
50일 넘게 남은 이번 대선은 정치인 심상정의 마지막 승부다. 그가 자주 말해온 것처럼 이 나라의 문제는 정치에 있다. 숙고하고 성찰해 현실을 움켜잡는 심 후보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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