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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삼일과 삼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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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면 어김없이 하는 일이 있다. 바로 결심이다. 올해는 무엇 무엇을 꼭 하겠노라고 자신과 약속을 한다. 그런데 약속의 내용이 해마다 비슷한 것을 보니, 결심이란 원래 지키기 어려운 것인가 보다. 행동은 말보다 먼저 말한다고 한다. 마치 자정작용인 양 합리화하며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려 할 때 하는 말이 '작심삼일'이다. 단단히 먹은 마음이 사흘도 채 못 갔다는 것은 애초에 굳지 못한 결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국말에서 '삼' 또는 '셋'은 그저 세 번째 숫자가 아니다. 삼일, 삼칠일, 삼 년, 삼세판, 삼촌 등 숫자 '3'이 들어간 말을 떠올려 보면 한국 사람은 일생을 '3'에 둘러싸여 사는 셈이다. 평범한 주례사도 축사도 꼭 '셋째'까지 말할 것 같지 않은가? 착수한 일이 자주 변경됨을 빗대는 '고려 공사 사흘'도 있는데, 역시 개인에게든 기관에든 '삼일'이란 첫 마음을 지키는 시험 기간이다. '삼칠일'은 아이를 낳고서 조심하는 스무하루 동안을 이른다. 갓난아기를 위해 금기를 깨지 않는 부모의 마음이 오롯이 담겼는데, 이때도 일주일을 세 번 센다.
'삼 년'을 주목하는 말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업은 아이 삼 년 찾는다', '부자는 망해도 삼 년 먹을 것이 있다', '삼 년 가뭄에 하루 쓸 날 없다' 등을 보면 삼 년은 꽤 긴 기간을 빗댄다. 세 번 거듭되는 삼 년인 '석삼년'도 있다. 그저 아홉 해라 할 말을 '석'과 '삼'을 두 번 써서 강조한 것이다. 삼 년이란 '서당 개 삼 년에 풍월을 한다'에서 보는 바, 꾸준히 노력하면 무언가 하나는 꼭 이룰 만한 시간도 된다. 어떤 분야에 서툰 사람이라도 한 부문에 오래 있다가 보면 인정받을 만한 지식과 경험을 갖게 된다니 이 얼마나 희망적인가?
조금 뜬금없지만, '3'을 부르는 오늘, 한국말에서 '삼촌'을 뺄 수 없다. 한국 사람이 어울려 사는 곳곳에는 친근한 삼촌들이 있다. 꼭 촌수가 삼촌이 아니라 해도 삼촌이라 부르고, 또 그들은 기꺼이 누군가의 삼촌이 되어 준다. 2022년을 시작하고서 보름은 넘겼다. 작심삼일을 이겨냈다면 올 한 해를 이미 이긴 것이다. 혹 작심삼일에 무너졌는가? 그러면 더도 덜도 없이 꼭 세 판이라는 '삼세판'을 불러내 보자. 가위바위보도 삼세판인데, 작심이 넘지 못한 삼일도 세 번은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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