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기사
새해 다짐, 느리고 불편하게 살기
이미 가입된 회원입니다.
만 14세 이상만 회원으로 가입하실 수 있습니다.
새해 첫날, 이양주를 담갔다. 일반 막걸리, 즉 단양주는 오래 전부터 종종 빚어 즐기지만 이양주, 삼양주는 품과 시간이 많이 들고 또 덧술로 쓰는 찹쌀 가격도 만만치 않아 지금은 1년에 두어 번, 명절 안팎으로만 만든다. 맵쌀로 밑술을 하고 3~5일 뒤 찹쌀 고두밥으로 덧술을 하고도 발효가 끝날 때까지 계절에 따라 3, 4주를 기다려야 하기에 선뜻 덤벼들기가 쉽지는 않다. 올해는 석탄주에 도전을 해봤다. 향이 너무 좋아 "차마 삼키기 아깝다"고 하여 이름이 아낄 석, 삼킬 탄, 석탄주(惜呑酒)라는 말에 혹한 것이다. 검색해보니 용수를 박고 하루 뒤, 위에 뜬 맑은 술을 한 잔 마시면 사과인지 포도인지 모를 야릇한 과일향이 한참 동안 입에 감돈단다.
이양주를 담근다고 했지만 옛 맛이든, 장인의 솜씨든, 내가 무슨 재주로 흉내 내겠는가. 장비든, 온도든 일반 가정에서 제대로 맞추기가 어렵지만 성격도 꼼꼼하지 못한 탓이 더 크다. 백세는커녕 쌀뜨물이 어느 정도 가라앉을 정도만 씻고 만다. 찹쌀고두밥도 찜기가 아니라 전기밥솥으로 해결한다. 내가 하는 일이 매냥 그렇다. 그 시간에 부지런히 번역을 하고 글을 쓰고, 대신 장인의 명주를 구입하면 훨씬 실속이 있으련만, 기어이 때가 되면 괜한 고생을 하고 법석을 떨고 만다. 제대로 할 생각도, 능력도 없으면서.
뭐든 직접 만들어 먹는 편이다. 삼시세끼 요리를 하고, 된장, 고추장을 빚어 먹고, 밭을 매어 채소를 키워 먹고, 심지어 맥주까지 만들어 마신다. 물론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는 못한다. 음식은 매번 맛이 다르고, 텃밭에는 일주일에 겨우 한 번, 하루만 가서 일하기에 채소들을 제때 찾아 먹기도 쉽지 않다. 계산은 안 해 봤어도 퇴비, 비료 값도 건지기 어려울 법하다.
사실 예쁘게 포장한 호박, 오이처럼 예쁜 결과만 바란다면야 노동이 아니라 소비가 제격이겠다. 자본주의가 그런 목적으로 존재하기도 한다. 결혼 후, 서울을 등지고 교외로 빠져나올 때부터 어느 정도 불편한 삶을 각오했지만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 불편함의 맛에 빠지고 말았다. 텃밭의 호박은 종종 멧돼지 앞다리만 하게 자라고 고구마는 크기도 모양도 들쑥날쑥하지만 그래도 이곳엔 손으로 흙을 어루만지고 이따금 하늘을 올려다보며 땀을 식히는 매력이 있다. 장인의 막걸리는 맛과 향이 뛰어날지 몰라도, 직접 백세를 할 때의 간지러운 손맛은 포기해야 한다.
이런 삶은 느리고 불편하고 궁핍하고 궁상맞다. 하지만 거기에도 자발적 불편함이 주는 매력이 있다. 느릴수록, 불편할수록 행복해지는 삶이 있다. 우리는 이미 너무 빠르고 편하다.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편하려고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편하면 주변이 불편하고 내가 예쁘고 깨끗하면 세상이 대신 추하고 더러워진다. 스타벅스와 CGV 밖에도 삶이,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깨달은 것이다.
올해는 설 즈음에 석탄주를 거를 수 있다. 명절음식을 몇 개 만들어 아내와 시음할 생각이다. 정말로 사과, 포도향이 날까? 한 모금 머금으면 목으로 넘기기가 아쉬운 맛일까? 그러니까 내가 새해를 맞아 이양주를 빚는 일은 일종의 바람인 셈이다. 먹고 사는 문제야 올해도 길 안의 덫처럼 내 발목을 잡아채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세상 밖으로 벗어나, 조금 더 느리고 불편하게 살 수 있기를 빌어본다.
신고 사유를 선택해주세요.
작성하신 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
로그인 한 후 이용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
구독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해당 컨텐츠를 구독/취소 하실수 없습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