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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웨이스트 선거' 경험자도 "쉽지 않아"…'쓰레기 없는 선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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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웨이스트 선거요? 다시 또 할 수 있을까 싶어요.
특히 현수막은 정말 대안이 없거든요”
지난해 4월 서울 송파구의원 보궐선거에서 쓰레기가 나오지 않는 일명 '제로웨이스트 선거'를 실천한 최지선(32)씨는 27일 한국일보와 인터뷰에서 당시를 되돌아보며 "정말 쉽지 않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씨는 "내 이름을 조금이라도 더 알려야 하는 선거에서 모두 다 현수막을 달고, 예비홍보물을 발송하는데 혼자만 쓰레기를 이유로 손을 놓고 있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현수막을 안 달겠다는 그의 '폭탄발언'에는 "떨어지려고 선거 나왔냐"는 선거 캠프 관계자들로부터 우려 섞인 타박이 돌아오기도 했다고.
그는 선거 이후 다른 정당으로부터 현수막과 벽보 관련한 문의를 받기도 했다. "제로웨이스트 선거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는데 대안이 없다"는 고민에 '쓰레기 없는 선거 경험자'인 그 또한 속시원한 답변을 해줄 수 없었다. 그 또한 선거 과정에서 홍보와 쓰레기는 정비례하는 듯한 현실의 벽에 수없이 부딪혔기 때문이다.
2021년 3월 24일 늦은 밤, 선거 운동 개시를 하루 앞둔 선거 사무소에서 바쁘게 하는 일은 다름 아닌 다림질이었다. 다리미와 드라이어를 든 사람들은 어딘가 세월이 느껴지는 청남방에 숫자 스티커를 붙이기에 여념이 없었다. 선거용 피켓이나 회의 자료 대신 청남방이 펼쳐져 있는 사무실엔 결의를 다지는 목소리가 아닌 드라이어 소리로 가득했다.
최씨는 ①선거 시즌에만 입고 버려질 선거복이 아닌 구제시장에서 산 구제 청남방에 직접 후보 번호 스티커를 붙여 선거복을 마련했다. 스티커만 떼면 선거 후에도 일상에서 얼마든지 입을 수 있는 옷으로, 한 벌당 6,000원을 주고 구매했다. 다리미로 붙이는 스티커값까지 합치면 선거복 한 벌에 1만 원을 들였다.
최씨는 ②일반 명함 두 배의 비용을 들여 사탕수수 잔여물로 만든 명함을 제작했다. ③공보물과 벽보도 친환경 종이에 콩기름 잉크를 사용해 인쇄했고, ④선거운동에서 사용할 현판 또한 스티로폼 소재 대신에 하드보드지에 종이 벽보를 붙여 만들었다. 최씨를 비롯한 선거 운동원들은 선거기간 중 기상예보에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종이로 만든 현판은 비가 오면 다 젖어버리기 때문이다. 하늘에 있는 누군가가 이런 상황을 놀리듯이 주말마다 비가 내렸고, 벽보를 세 번이나 다시 붙여야 하는 수고를 감당해야 했다.
'예비후보자 홍보물'은 비닐봉투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눈물을 삼키며 포기해야 했다. 공직선거관리규칙에 따르면 홍보물은 반드시 발송용 봉투에 담아야 하는데, 우편봉투에 넣으면 열어보지조차 않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투명 비닐에 홍보물을 담는다. 최씨는 그런 비닐봉투가 바로 버려져 쓰레기가 될 처지임을 고려해 고민 끝에 발송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는 "쓰레기 없는 선거 유세 과정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과 선택의 연속이었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이상만 추구해서는 선거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로웨이스트 선거 과정에서 가장 곤란했던 부분으로는 현수막을 꼽았다. 처음엔 현수막을 쓰지 말까 생각했다는 그는 "유권자들에게 이름과 공약을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 현수막인데 대안이 없더라"고 말했다. 다른 정당들이 모두 내거는 현수막은 첫 출마인 후보자가 포기하기엔 너무도 효과가 뛰어난 노출 수단이었다.
결국 ⑤그는 현수막을 만들면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원단을 쓰기로 했다. 일반 현수막보다 비용은 1.3배, 제작 기간은 약 5배나 더 걸렸다. 만들어줄 업체를 수소문하는 데도 시간이 걸렸을 뿐만 아니라 겨우 찾은 업체도 폐플라스틱 현수막 제작은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이다. 현수막을 걸다가 한 장이 찢어졌지만 일주일이 넘게 걸리는 제작 기간에 직접 꿰매서 다시 쓰기도 했다. 뾰족한 대안이 없지만 혼자 안 달 수도 없는 현수막은 올해 6월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 중인 그에게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라고.
최씨는 현재 선거 체계 내에서 개인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기에 관련 제도와 선거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쓰레기 없는 선거 경험자'인 그에게도 3월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수면 위로 떠오른 '정당 차원의 친환경 선거' 담론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는 "거대 정당에서 먼저 움직이면 우리나라의 선거문화가 전반적으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올해 3월 대선을 앞두고 선거 유세 과정에서 쏟아질 쓰레기에 대해서 환경 측면에서 걱정의 목소리가 다시금 나오고 있다. 선거 쓰레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년 전부터 대책을 찾으려는 움직임이 꾸준히 있었지만 정당과 선거관리위원회는 근본적 해결을 위한 논의조차 제대로 하지 않아 왔다. 이들의 외면 속에서 선거가 끝난 후 처치곤란인 엄청난 양의 선거 쓰레기는 끝없이 발생했다. 자원순환사회연대는 지난해 4월 재·보궐선거에서 홍보 현수막만 최소 1만6,212개(서울 1만2,720개, 부산 3,492개)가 사용된 것으로 분석했다. 선거 직후 무게로 따지면 수백여 톤에 이르는 양의 폐기물이 발생한 것이다.
전국 단위 선거의 경우 발생하는 쓰레기의 양은 훨씬 더 많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21대 총선에서 발생한 선거벽보는 총 64만 부, 선거공보는 4억5,000만 부였다.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선거벽보 122만8,276부, 선거공보 총 4억부가 만들어졌다.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제19대 대선 선거운동 과정에서 민주당 측에서만 약 6,000톤의 종이가 사용됐다고 밝혔다.
가장 큰 문제점은 현수막과 공보물 등이 한 번 쓰고 나면 재활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선거철 거리마다 내걸리는 현수막은 플라스틱 합성수지 원단으로 잘 썩지 않는 데다가 소각 과정에서 1급 발암물질인 다이옥신, 이산화탄소 등 유해물질을 배출한다. 각종 명함과 전단지는 코팅된 종이를 사용해 종이로 재활용이 어려운 경우도 많다.
선거 쓰레기를 재활용하기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도 갖가지 시도를 했지만 한계는 뚜렷했다. 비나 눈이 와서 물에 젖은 현수막은 사용 자체가 불가능하고 섬유로 재활용하려면 꽤 많은 비용이 필요해 경제성이 떨어진다.
환경부는 2020년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때 전국 지자체에 '선거용 인쇄물 분리배출 및 폐현수막 재활용 지침'을 배포하는 등 선거홍보물 재활용 대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환경부의 발표에 따르면, 2020년 총선의 폐현수막 재활용률은 23.4%로 2018년 지방선거(33.5%)보다 더 떨어졌다. 더군다나 환경부가 집계한 재활용 통계는 재활용 기업에 보낸 물량 전체에 대한 추산이다. 업체에서 여러 이유로 폐기하는 물량까지 계산하면 실제 재활용률은 이보다 더 낮은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폐현수막을 장바구니와 에코백 등으로 업사이클링해 배포한 지자체도 있었다. 6일 민주당 청년선거대책위원회가 새로 영입한 청년 환경 활동가들과 선거 쓰레기를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는 '자원순환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황선화 성동구의원(민주당)은 폐현수막 재활용에 대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폐현수막을 장바구니로 업사이클링해 배포를 했으나 현수막 잉크가 묻어나오고, 이미 장바구니가 많은 주민들이 거부하는 등 효과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때문에 간담회에서 활동가들과 의원들은 선거 과정에서 발생되는 쓰레기 자체를 줄이기 위한 근본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쓰레기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이번 대선을 '친환경 선거'로 치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전 세계적 '필(必) 환경' 흐름에 맞춰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에 대한 해결 노력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자원순환간담회에서 환경 활동가들은 선거 쓰레기를 줄이는 방안으로 재사용이 가능한 현수막, QR코드를 이용한 전자 명함, 자원 순환이 쉬운 친환경 소재 사용 등을 제안했다.
이어서 민주당 청년선대위는 10일 청년 환경 활동가들이 주축이 되는 '녹색선거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쓰레기 줄이는 녹색 선거 아이디어 공모전'도 실시한다. 이동학 민주당 청년선대위 녹색선거위원회 기획단장은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녹색 선거 아이디어 공모전에 선거 쓰레기를 줄일 수 있는 많은 제안들이 들어오고 있다"며 "이미 선거가 시작돼 이번에는 어렵더라도 다음 선거부터 적용해 선거 패러다임을 바꾸는 토대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후보는 예비 홍보물을 우편물로 보내는 대신 온라인 홍보 영상을 제작해 공개하기도 했다. 종이 공보물을 온라인 영상으로 대체해 종이 사용을 줄인 것이다. 또한 선거 과정에서 유세차의 일부도 수소차를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친환경 선거 유세에 새로운 방식으로 도전하겠다는 인물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청년선대위 녹색선거위원회에 합류한 봉한나 일상정책연구소 대표는 6월 지방선거 출마를 앞두고 친환경 선거 유세 계획을 밝혔다. 그는 "명함이나 공보물 등 저에 대한 콘텐츠가 쓰레기가 아닌 친환경에 대한 새로운 경험으로 연결되도록 하고 싶다"며 인천시에서 만든 종이 비누 형태의 명함, 친환경(FSC) 인증 종이 사용, QR코드를 이용한 전자 명함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지도가 낮은 정치 신인이 현수막을 포기하기는 어렵다"며 앞에 씌운 비닐 안의 종이를 교체해 계속 재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을 고려하고 있다. 또한 "선거 홍보의 핵심은 많은 유권자들에게 '나'라는 콘텐츠를 전달하고 설득하는 것"이라며 광고홍보물보다 특정 스팟 연설과 숏츠(SNS에 공유되는 짧은 동영상) 등 온라인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선거 쓰레기를 줄이는 친환경 선거로 나아가기 위해 현재 선거법의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자원순환간담회에서는 벽보나 명함을 친환경 소재로 만들자는 제안에 국내 선거법상 홍보물의 비용이 다 정해져 있어 현재 규정 내에서는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지적이 있었다. 선거 유세 과정에서 정당의 노력뿐 아니라 제도도 함께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지선씨 또한 "현재 선거 체계 안에서는 한계가 크다"며 "공정성뿐 아니라 친환경에 기반을 둔 선거 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거 공보물에 친환경 잉크나 종이를 사용하게끔 선거법에 친환경 기준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또한 선거시스템 자체를 전산화해 온라인 투표 플랫폼에서 후보와 공약을 확인하고 투표도 온라인으로 실시하는 방안도 나왔다.
봉한나 대표는 새로운 친환경 선거 방안들을 시도할 수 있도록 선거 규정의 유연화를 제안했다. 비교적 단가가 높은 친환경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친환경 인증 제품에 한해서 정해진 사용 금액을 증액해주는 형식이다. 공보물에 재생용지만 사용하도록 하는 규정이나, 후보자가 현수막을 쓰고 나서 뒤처리 방안까지 제시하면 쓸 수 있는 현수막 개수를 늘려주는 방식도 제안했다.
더불어민주당 녹색선거위원회도 지난해 11월 대선과 지방선거 등에서 사용되는 명함과 공보물 제작에 재생종이를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동학 기획단장은 "해당 개정안은 앞으로의 선거와 미래세대에 더 나은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강조하며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처리해 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녹색연합 측도 "이젠 권유가 아닌 제도를 개선해야 할 때"라며 공직선거관리규칙의 개정을 촉구했다. 녹색연합은 ①온라인 공보물로 전환 ②선거공보물의 재생종이 의무적 사용 및 현수막 재활용 비율 의무화 ③선거 사무소 앞 대형 현수막의 수량 및 규격 제한 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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