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했을 아들들 생각하면 화난다" 군인맘까지 움직인 위문편지 논란

입력
2022.01.14 09:00

조롱하는 듯한 여고생 위문편지 논란
학생들 향한 악성 댓글에 피해 우려도
'군 위문편지 금지해달라' 靑 청원까지

논란이 된 위문편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논란이 된 위문편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군 장병을 조롱하는 듯한 내용의 위문편지가 온라인에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많은 누리꾼들이 '편지 내용이 적절치 않다'며 분노했고, 일부는 해당 학교와 다른 재학생까지 비난하고 나섰다. 여기에 과연 위문편지가 아직도 필요한 것인가에 물음표를 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친구가 원해서 올린다며 서울의 한 여고생이 보낸 위문편지를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서울 목동의 한 여고에 다닌다는 학생은 편지에 "추운 날씨에 나라를 위해 힘써서 감사합니다"라며 "군 생활 힘드신가요? 그래도 열심히 사세요^^ 앞으로 인생에 시련이 많을 건데 이 정도는 이겨줘야 사나이 아닐까요?"라고 적었다. 또 "저도 이제 고3이라 뒤지겠는데 이딴 행사 참여하고 있으니까 님은 열심히 하세요"라며 "파이팅~추운데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라고 덧붙였다.

게시글 작성자는 "대부분 다 예쁜 편지지에 좋은 말 받았는데 혼자 저런 편지 받아서 의욕도 떨어지고 너무 속상했다더라"며 "차라리 쓰질 말지 너무하다"고 했다.

여고생의 편지를 접한 많이 이들이 허탈감과 분노를 쏟아냈다. 자신을 현역 군인이라 밝힌 다른 글 작성자는 "아침부터 기분 x같이 하루를 시작하게 해줘 고맙다"며 "그럼 남은 눈 치우러 가보겠다"라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제정신이냐 진짜"(리바***), "그럼 하지 말던가 왜 화풀이를 함"(기억추억****), "군대 없으면 어찌되는지 모르나?"(나쵸***), "본인 의사 없이 징병된 군인들한테 따뜻한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어렵나"(ENF***) 등 분노를 표했다. 또 구글, 카카오맵 등에서 해당 고교 리뷰에 '별점 테러'를 가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부 재학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학교의 한 구성원으로서 이번에 벌어진 일에 대해 반성하고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다", "모두가 저랬다고 오해 마셨으면 좋겠다"는 등 대리 사과문을 올리거나 해명하기에 이르렀다.

해당 학교의 관리 및 감독이 소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당 학교의 '위문편지 작성에 대한 유의사항'에 "편지 봉투를 붙이지 않고 제출"이라 적혀있어 학교 관계자가 편지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대 간 아들이 있는 엄마들이 모여있는 카페의 댓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군대 간 아들이 있는 엄마들이 모여있는 카페의 댓글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아들을 군대 보낸 엄마들도 쓴소리를 했다. 군인맘카페에서는 "속상해 했을 아들들 생각하면 화가 많이 난다"(달콤이****), "서울시 교육신문고에 민원 넣었다"(꿀민훈***), "항의전화하자"(소나티****)는 반응이 이어졌다.

해당 고등학교는 결국 학교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 입장을 냈다. 위문편지 쓰기 행사는 1961년부터 시작해 해마다 진행하던 행사라며 "위문편지 중 일부의 부적절한 표현으로 인해 행사의 본래 취지와 의미가 심하게 왜곡된 점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향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재학생을 향한 도 넘은 비난...또 다른 피해 우려

온라인에 공개돼 논란을 빚은 위문편지를 쓴 한 여고생과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자가 신상 파헤치기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트위터 캡처

온라인에 공개돼 논란을 빚은 위문편지를 쓴 한 여고생과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사용자가 신상 파헤치기를 멈춰달라고 호소했다. 트위터 캡처

편지를 작성한 학생은 개인 신상정보가 공개돼 수위 높은 악플과 성희롱 등으로 피해를 받고 있다. 같은 학교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재학생 사진과 신상정보를 익명 커뮤니티에 퍼뜨렸다. 재학생이 작성한 대리사과 게시글에는 "신상 다 털어서 와꾸도 못생겼으면 지구 끝까지 따라가 고통스럽게 해줄게", "전교생 끌고 나와서 성명문 내고 위문공연이나 다녀라" 등의 댓글이 이어졌다. 인근 남고 재학생은 오픈채팅방에서 해당 고교 재학생이 신상노출 문제로 무서워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글을 공유하며 함께 조롱했다.

해당 고교 재학생은 SNS에 "제발 저희 학교 애들 신상 털어가지 좀 마세요"라며 해당 학교 학생이라는 이유로 안 좋은 연락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신상노출로 두려움에 떨면서 단체로 성희롱에 협박까지 받아야 하냐고 덧붙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너무 과열된 거 아니야?", "아이들 좀 보호해달라" 등의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서울시교육청 시민청원에는 "사이버불링 및 디지털성폭력에 노출된 **여고 학생들을 보호해 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1만 명 이상 참여했다.


위문편지를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위문편지를 금지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위문편지 자체가 문제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부 재학생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통해 군부대와 자매결연을 맺었다는 이유로 억지로 쓰게 시켰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여자고등학교에서 강요하는 위문편지 금지해주세요"라는 글이 올라왔다. 청원 작성자는 해당 고등학교의 위문편지 작성 주의점에 '개인정보를 노출시키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음'이라고 적혀있다며 "편지를 쓴 학생에게 어떤 위해가 가해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위문편지를 써야 한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주장했다. 해당 청원에 현재 10만 명 이상 동의했다.

한편 위문편지가 군대 내부에서 촬영됐기에 불법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국방부의 국방보안업무훈령(115조)과 '병사 휴대폰 사용 지침'에 따르면, 병사들은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에도 사진 촬영은 불가하다. 병사 개인 소유 휴대폰을 영내에 반입할 경우 보안 앱을 설치해야 하는데 해당 앱이 휴대폰 촬영을 차단하도록 설계돼있기 때문이다.

육군 관계자는 보안 프로그램에 의해 촬영이 금지돼 있는 건 사실이나 '어디서', '언제' 찍었는지 확인해봐야 하는 사안이라 징계여부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김정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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