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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원점으로 온 대우조선

입력
2022.01.13 19:00
수정
2022.01.13 22:10
26면

EU거부로 현대중+대우조선 합병 결국 무산
이 합병은 국가현안...정부는 역할 다했나
20년 넘게 끌어온 정상화도 다시 원점

대우조선해양의 LNG운반선

대우조선해양의 LNG운반선

조선업 세계 1, 2위인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을 합쳐 슈퍼 조선사를 만들겠다는 웅장한 계획은 결국 수포로 돌아갔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13일 두 회사의 합병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양사 합병발표가 나온 지 3년, 모든 게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사실 넘버 원, 투 회사를 이렇게 합치는 게 꼭 좋은 그림인가에 대한 의문은 처음부터 있었다. 국내 조선업 전체로 보면, 현대 대우 외에 삼성중공업까지 글로벌 거대조선사가 셋이나 몰려 있는 것보단 확실히 양사 체제가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은 상호 보완성은 별로 없고 되레 중복영역이 많아 1+1이 3 아닌 1.5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에, 통합의 실익은 별로 없다는 주장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 프로젝트가 추진된 건 대우조선 때문이었다. 대우그룹 공중분해로 산업은행 소유로 넘어간 게 벌써 20여 년 전이다. 그 사이 한화그룹으로 매각은 성사직전 무산됐고, 천문학적 분식회계로 경영진 구속파동을 겪었으며, 산업은행 지원으로 연명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좋은 주인 찾아주는 것 외엔 더 이상 다른 근본해법은 없다는 게 지난 20여 년의 교훈이다. 이 때문에 산업은행으로선 시드머니를 지원해서라도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을 넘기려 했던 것이다.

전 세계에선 이 딜을 달가워할 나라는 하나도 없다. '현대중+대우조선'의 메가 조선사가 탄생하면 LNG운반선 시장점유율이 60%를 훌쩍 넘겨 엄청난 가격지배력을 갖게 된다. 배를 발주하는 선사들로선 이 거대조선사의 독점적 가격 인상을 걱정할 수밖에 없다. LNG수입국들 역시 운반선 가격 인상→운임 인상→가스 가격 인상이 두렵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가스의존도가 높은 EU에서 합병승인을 얻는 건 처음부터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는데, 결국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말았다. 최대 이해당사국인 EU가 거부한 이상, 현재로선 이 합병은 깨진 거나 다름없다. 소송 등 불복절차가 남아있지만, 뒤집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 어쩔수 없는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한 가지 궁금한 건 정부의 역할이다. 양사 합병은 우리나라 주력산업인 조선업의 지형을 바꾸는 시도이고, 공적자금이 들어간 대우조선을 민영화하는 작업인 만큼, 당연히 국가적 이슈이고 정부 과제일 수밖에 없다. 1997년 세계 최대 항공기제조사인 미국 보잉사의 맥도널더글러스 인수계획은 경쟁사인 에어버스를 갖고 있던 EU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EU가 불허입장을 밝히자 미국은 보복불사로 맞섰다. 무역전쟁 직전에서 결국 외교적 타협을 통해 합병은 성사됐지만 자국의 핵심산업, 핵심기업의 M&A건이라면 정부는 물론 의회까지 나서는 게 강대국들의 행동이다. 과연 우리 정부도 EU 합병승인을 위해 총력전을 폈을까.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공정거래위원회다. 중국 싱가포르 카자흐스탄 경쟁당국이 다 승인했고 EU도 어쨌든 최종결론에 도달했는데, 우리나라 공정위는 여태껏 감감무소식이다. 대부분 글로벌 M&A는 승인이든 불허든 자국 경쟁당국이 먼저 결정을 내리는 게 보통이다. 아무리 중대사안이고 부처 간 협의사항이 많다 해도, 우리나라 기업간 기업결합을 2년 반이 넘도록 판단을 미루고 있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가장 답답해진 건 대우조선의 진로다. 다시 한화, 포스코 등이 인수후보군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이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이야 조선시황이 좋아 홀로서기가 가능하고, 이를 근거로 지역사회에선 독자생존을 희망하고 있지만, 세상에 영원한 호황은 없다. 20년 넘도록 돌고 돌아 결국 제자리다. IMF체제의 마지막 유산인 대우조선은 또다시 안갯속 항해를 시작하게 됐다.

이성철 콘텐츠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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