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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의 탈레반’ 꿈꾸는 무장반군 리더 줄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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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8일 시리아 북서부 이들리브에서 알 다나와 사르마다 두 지역을 잇는 6~7㎞ 구간 도로 개통식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이들리브를 사실상 통치하고 있는 반군 지도자가 민간복을 입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지하디(이슬람 성전주의 전사) 무장단체 ‘하야트 타흐리르 알 샴(HTSㆍ시리아해방기구)’의 수장 아부 무함마드 알 줄라니다.
1982년생인 줄라니가 지하디 활동에 처음 가담한 건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다. 그는 이라크 남부 미군기지 ‘부카 캠프’ 수용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부카 캠프는 줄라니를 비롯해 이슬람국가(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2019년 사망)와 IS 지도부 다수가 구금됐던 곳이라, ‘이슬람 극단주의 배양소’ ‘ISIS 탄생지’로도 불린다. 2008년 석방된 줄라니는 IS 전신인 ‘이라크 이슬람 국가(ISI)’ 사령관이 됐고, 2011년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후에는 알카에다 계열 ‘알 누스라 전선’을 결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활동을 이어갔다. 2013년 미국은 줄라니를 ‘특수 지정 글로벌 테러리스트’로 분류했고, 알 누스라 전선도 미국 정부와 유엔이 각각 지정한 테러조직 명단에 올라가 있다.
줄라니는 2016년 알 카에다와 공식 결별하고, ‘자바트 파테 알 샴(JFSㆍ시리아정복전선)’으로 조직명을 변경했다. 이듬해엔 소규모 지하디 무장단체를 규합해 HTS를 출범시켰다. 현재 HTS가 터를 잡은 이들리브는 2015년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이 통치력을 상실한 후 여러 반군 세력의 활동 무대가 된 지역이다. 2017년 6월 터키와 접한 ‘밥 알 하와’ 국경을 손에 넣은 HTS는 2019년 다른 무장단체들과 벌인 ‘반군내전’을 통해 이 일대 90%를 장악했다.
‘유엔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시리아와 터키 사이에는 약 20개 국경이 있다. 일부는 터키가 지원하는 반군 정부인 ‘시리아 과도정부(SIG)’가, 또 다른 일부는 쿠르드계 무장조직인 ‘시리아민주군(SDF)’이, 그리고 일부는 HTS가 통제하는 중이다. 대부분 폐쇄되고 5곳만 열려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밥 알 하와 국경이다. 터키에서 시리아로 들어오는 인도주의적 구호물자가 바로 이곳을 통과한다. 이달 11일 유엔은 “밥 알 하와 국경을 통한 구호물자 수송 업무를 7월 10일까지 6개월 더 연장한다”고 밝혔다. 다른 국경들과 달리 러시아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이 구호물자는 240만 주민들에게 생명줄과 같다”고 했다. 반군 영토 내 최강자이자 주민들의 생존과 직결된 구호물자 수송 구역 통제권을 지닌 HTS는 현실적으로 무시하기 어려운 존재다.
줄라니는 JFS 시절부터 자신의 조직이 알 카에다와 더 이상 연계가 없다고 말해 왔다. 알 카에다로 상징되는 ‘글로벌 지하디즘’보다는 시리아 내부 문제에 집중하는 이른바 ‘지하디즘의 토착화’로 선회한 것으로 풀이된다. HTS가 2017년 11월 ‘시리아 구원정부(SSG)’를 출범시키며 민간 정치조직 활동을 병행하는 것도 그런 전략의 일환이다.
HTS는 다른 반군조직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며 우월적 입지를 공고히 다지는 동시에 국제사회에서 ‘정상 반군’으로 인정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예컨대 줄라니가 도로 개통식에 군복이 아닌 민간복 차림을 하고 나온 것도 이미지 전환 시도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2월 미국 공영방송 PBS와의 인터뷰에서 “단언컨대 이들리브 지역은 유럽이나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공간이 아니며, 외국인 지하디스트들의 활동 무대는 더더욱 아니다”라고 말했다. 자신을 테러리스트 목록에서 지워야 한다는 항변이었다.
이 말은 아프가니스탄 정부를 꾸린 탈레반이 반군 시절 미국과의 평화협상 과정에서 “지하디즘에 가담하거나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실제 HTS는 지난해 8월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한 뒤 ‘무슬림 세계 지하드와 저항’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여는 등 ‘탈레반 모델’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탈레반이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 반군’에서 집권세력으로 변모한 사건은 전 세계 분쟁 지역 반군들, 특히 이슬람주의 반군들에게 적잖은 영감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미국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이 발행하는 중동 전문지 ‘사다 저널’은 지난해 12월 HTS 분석 보고서에서 “아프간 상황이 (글로벌 지하디즘 테러리스트 조직이 아닌) 현지 이슈로 싸우는 국내 조직으로 인정받길 원하는 HTS의 열망을 더욱 부추겼다”고 짚었다. 보고서를 쓴 나그완 솔리만 미국 조지타운대 연구원은 “테러리스트로 지정된 조직들이 통치하는 영토에서 인도주의적 위기를 막으려면 이들 조직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탈레반이 전쟁의 승자로 집권세력은 됐지만, 미국의 자산 동결과 국제 금융기구들의 제재로 아프간 전체가 인도주의 위기에 내몰린 상황과도 맥락이 닿아 있는 주장이다.
지하디즘 토착화 추구,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 국제사회 인정을 얻어내려는 외교적 노력 등 HTS와 탈레반 사이에 유사점이 없지는 않다. 그럼에도 시리아에서 HTS를 주체로 한 ‘탈레반 모델’ 현실화를 상상하기엔 아프간과 시리아는 분쟁 성격과 양상에서 큰 차이가 있다. 우선 시리아는 터키와 이란 등 지역 패권국은 물론 미국과 러시아 같은 세계 최강국까지 개입한 ‘미니 세계대전’ 성격을 지닌 분쟁 지역이다. 당사국들은 동맹을 맺기보다 각자 이해관계에 따라 군대와 민간군사기업(PMC) 용병들을 시리아에 투입했다. ‘반군’ 깃발을 내건 무장조직만 해도 셀 수 없이 많다. 전선이 복잡하고 여러 당사자들이 어지럽게 난무하는 시리아 전쟁은 ‘탈레반 대 미국 동맹’이라는 비교적 단순했던 아프간 상황과 많이 다르다. 게다가 북서부(HTS 통치), 북부(터키 지원 반군연합인 시리아국민군대 통치), 북동부(쿠르드계 SDF 통치), 중남부(아사드 정권 통치) 등 지역마다 다른 세력이 점령한 상태로, ‘시리아의 발칸화’가 진행 중이다. 다만 국제사회는 여전히 아사드 정권만을 시리아의 합법 정부로 인정한다. 지난해 9월 발표된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시리아 영토 70%, 시리아 인구 88%가 아사드 정부 통치 아래 있다.
다른 여러 반군들과 마찬가지로 HTS 역시 점령 지역 내 지배력이 약하다. 인권 침해도 문제다. 유엔은 “HTS가 비판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며, 미디어 활동가와 기자들을 구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리아 전쟁을 오래 취재해 온 미국계 기자 빌랄 압둘 카림도 그중 한 명이다. 카림은 2020년 8월 13일 HTS가 저지른 고문 사건을 보도한 지 2시간 만에 체포돼, HTS 구금 시설 독방에서 6개월 동안 갇혀 있다 풀려났다. 그는 HTS나 기타 이슬람 무장 반군에 대한 비판적 보도를 해 온 기자가 아니다. 오히려 이슬람 정치에 호의적인 편이다.
석방된 후에도 여전히 HTS 인권 침해 실태를 취재하고 있는 카림은 중동 전문지 ‘미들 이스트 아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금 중) 나는 거의 매주, 거의 매일 (고문으로 인한) 비명을 들을 수 있었다. HTS 지도자 줄라니는 아사드 정부의 고문과 억압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 또한 똑같은 짓을 하고 있다.”
비밀 감옥을 운영하고 고문을 자행하며 ‘반군 정치’의 타락상을 보여주는 HTS도 ‘현실정치’, 이른바 레알폴리틱(realpolitikㆍ이념과 도덕보다 권력과 실리를 추구하는 정치)이 작동하는 한,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리아 북부 분쟁 당사국이 된 터키와 HTS의 관계가 이를 잘 보여준다. 영국 싱크탱크인 왕립국제문제연구소(채텀하우스)는 2019년 보고서에서 “터키와 HTS의 관계는 터키와 다른 무장단체 간 관계와는 또 다르다”라고 분석했다. “HTS가 지역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IS와 같은 운명에 처해지지 않기 위해선 정치적 방패막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터키와의 전략적 동맹 관계가 불가피하다”는 진단이었다.
HTS는 터키가 자신들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한 것도 모자라 ‘자유시리아군(FSA)’ 계열 무장단체들을 ‘국민해방전선(NLF)’으로 결집시키면서까지 견제해 온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터키와의 동맹에 점점 더 유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터키 입장에서도 자국과 접한 시리아 북부의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고려하면 영향력 있는 현지 무장조직과의 협력이 불가피하다. 그러고 보면 실용주의와 현실정치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교조적 두뇌마저 변화시키는 시대가 도래한 게 분명하다. 그리고 여전히 중요한 문제는 곧 11년을 채우는 시리아 전쟁이 끝날 징후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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