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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굳은 콘크리트·레미콘 불량... 16개층 외벽 붕괴는 "인재다"

입력
2022.01.12 20:00
수정
2022.01.12 23:2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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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 층 한꺼번에 붕괴 쉽지 않아… 인재 가능성
"시발점은 콘크리트 굳지 않은 상태서 하중 작용"
"동절기 강풍 사고 키웠을 수도"… 당국 조사 박차

12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건설현장. 공사 중에 외벽이 무너져 내려 내부 철골구조물 등이 드러나 있다. 소방청 제공

12일 오후 광주광역시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건설현장. 공사 중에 외벽이 무너져 내려 내부 철골구조물 등이 드러나 있다. 소방청 제공

"30년 넘게 아파트에 콘크리트를 쳐왔지만 이런 사고는 처음 봅니다. 이건 안 봐도 뻔합니다. 인재(人災)예요, 인재."

광주광역시에서 철근 콘크리트 골조 공사 전문업체를 운영하는 A(64)씨는 12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에 대해 황당해하며 혀를 내둘렀다. 그는 "콘크리트가 양생(養生·굳힘)이 안 돼 무너지는 사고가 나더라도 한두 개 층이 꺼지는 게 보통인데, 이번처럼 16개 층이 한꺼번에 날아간 건 본 적이 없다"며 "콘크리트 타설 시공과 관리 부실이 겹치면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번 붕괴 사고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A씨 지적처럼 콘크리트 양생 및 철근 배근 불량, 불량 레미콘 사용, 빌딩풍(風), 콘크리트 타설 공사 진동, 타설 후 부실 관리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당국과 경찰도 전문가들과 함께 타설 작업 시공계획을 조사하고 콘크리트 잔재물을 채취하는 등 사고 원인 규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문가들이 인재(人災)를 강조하며 이구동성으로 거론하는 사고 원인은 콘크리트 양생 부실에 따른 하중 누적이다. 콘크리트는 굳은 상태에선 철근과 함께 하중을 지지하는 구조물이 되지만, 굳지 않은 상태에선 하중으로 작용한다. 특히 굳지 않은 콘크리트는 유체 상태로 그 압력이 거푸집면으로 작용하는 수평 하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고가 난 주상복합 아파트 23~38층 외벽이 무너졌다는 것은 콘크리트가 굳지 않았다는 걸 방증하고 있다. 외벽 및 슬래브의 철근 배근·이음이 기준에 미달해 16개 층 연쇄 붕괴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동절기 공사로 인해 콘크리트 압축 강도가 안 나온 상태에서, 상층부에서 콘크리트 타설을 계속하면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붕괴될 수 있다"고 말했다.

12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건설현장, 공사 중에 외벽이 무너져 내려 내부 철골구조물 등이 드러나 있다. 소방청 제공

12일 오후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건설현장, 공사 중에 외벽이 무너져 내려 내부 철골구조물 등이 드러나 있다. 소방청 제공

공사 현장에 공급된 레미콘 품질이 아파트 외벽 붕괴에 영향을 줬을 것이란 주장도 제기됐다. 골재 전문가 B씨는 "붕괴 장면 동영상을 보면 흙무더기가 쏟아져 내리는데, 이것은 모래와 시멘트가 제대로 배합이 안 됐기 때문"이라며 레미콘 불량 개연성을 언급했다. 레미콘을 만드는 원료인 모래에 토분(土粉)이 많이 섞여 있어서 시멘트와의 배합을 방해하고 레미콘 접착력까지 떨어뜨렸다는 얘기였다.

조창근 조선대 건축공학과 교수도 "최근 광주·전남 지역의 콘크리트 레미콘 품질 문제가 얘기되고 있다"며 "국내 골재 수급 상태가 용이하지 않다 보니, 콘크리트 품질이 안 좋게 되고 레미콘 강도에도 영향을 줬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실 시공에 이어 사후 관리도 부실했음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사고건물 옆동에서 공사에 참여한 한 작업자는 "닷새마다 한 층씩 쌓아 올린 것처럼 보였다"고 주장했다. 시공사가 공기 단축을 목적으로 콘크리트 양생 기준(최소 2주)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타설 공사를 진행했다고 의심이 드는 대목이다. 무리하게 속도를 낸 게 사실이라면, 구조물 품질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동절기 기온 급강에 대비한 구조물 모서리나 가장자리, 측벽 부위에 대한 보양 작업이 부실하게 이뤄졌을 수 있다.

빌딩풍이 콘크리트 타설 하중을 키웠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광주지역의 한 건축설계사는 "빌딩 사이의 좁은 통로로 바람이 빠져나가면서 풍속이 빨라지고 위력도 강해지는데, 이 강풍이 덜 굳은 콘크리트 외벽 구조에 부딪히면서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사고 건물 주변엔 고층 건물들이 에워싸고 있고, 붕괴 사고 전후로 강풍이 끊이지 않았다.

일각에선 콘크리트 타설 공사에 따른 진동을 붕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지역 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는 "20층 이상 고층 아파트의 콘크리트 타설은 외벽에 압송관을 설치한 뒤 지상에서 펌프카를 이용해 고압으로 레미콘을 올려주는데, 이 과정에서 압송관이 흔들리면서 거푸집과 철근 배근 등에 영향을 끼쳤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최다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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