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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폭탄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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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는 한국일보 중견 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지난해 4·7 재·보궐선거 이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강성 지지자들이 보내는 ‘문자폭탄’으로 몸살을 앓았다. 강성 지지자들은 전에도 문재인 대통령이나 친문재인계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소신파 의원에게 더러 문자폭탄을 날렸지만 보궐선거 이후 한층 독해졌다. 등돌린 민심을 확인한 의원들이 민생보다 검찰개혁에 올인하고 조국 전 장관을 덮어놓고 옹호한 과거를 반성하자 이를 배신으로 여겨 실력 행사에 나선 것이었다. 당 쇄신을 주도한 의원들은 조직된 항의 문자를 하루에 수백, 수천 통 받았다.
맷집 좋은 정치인들도 문자폭탄에는 맥을 못 춘다. 정치권 생리를 꿰고 있는 강성 지지자들이 의원의 약점을 맞춤형으로 파고들기 때문이다. 전략 공천이나 비례대표로 의원이 된 이들에게는 “쉽게 배지를 달았으면 대통령과 당원에게 충성하라”고 야유하는 식이다. 초선 의원들에게는 “경험도 없으면서 뭘 아냐. 재선은 없을 줄 알라”고 윽박지른다.
한 여성 초선의원은 문자 폭격을 집중적으로 맞자 며칠 버티지 못하고 휴대폰 번호를 바꿨다. 송영길 대표는 지난해 8월 “메시지 폭탄이 하도 많이 와서 휴대폰이 터질 것 같다. (과열된 휴대폰을) 얼음 속에 넣어둘 때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 기세등등했던 문자폭탄이 요새 잠잠하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여러 의원들은 현 정부 부동산 정책을 날 세워 비판하고 조국 사태도 거듭 사과했다. 강성 지지자들이 싫어하는 행동이다. 그럼에도 인내심이 발휘되는 이유가 뭔지 한 중진 의원에게 물었다. “우리 열성 지지자들은 굉장히 전략적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대선 앞 문자폭탄 문제가 부각되면 이를 뜨악하게 여기는 평범한 중도 유권자 표가 달아날 수 있다. 그래서 강성 지지자들이 자제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발톱을 잠시 감췄을 뿐. 문자폭탄의 에너지원인 맹목적 정치인 팬덤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여전히 공고해 보인다. 선거 뒤 문자폭탄이나 집단 악성댓글 같은 사이버 불링이 언제든 재가동될 수 있는 이유다.
국회의원 안위를 걱정해서가 아니다. 문자폭탄은 평범한 사람을 이등 시민으로 만든다는 데 문제가 있다. 대의제 헌법기관인 의원을 비정상 경로로 압박해 목소리 큰 소수만 원하는 의제를 관철시키려 드는 것은 스스로를 과잉 대표되게 함으로써 문자폭탄을 보내지 않는 다수를 후순위로 밀어내는 반칙이다.
강성 지지자가 바뀌길 기대하긴 어렵다. 지지 대상이 나서주면 좋겠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5월 기자회견에서 팬들에게 문자폭탄 자제를 요청했다. “저를 지지할수록 더 예의를 갖추고 상대를 배려하고 공감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문자를 해주시길 아주 간곡히 당부 드린다.” 문 대통령은 4년 전인 2017년엔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양념 같은 것”이라며 문자폭탄을 옹호했던 터라 울림은 더 컸다.
이재명 윤석열 안철수 심상정 등 주요 대선후보도 열성 팬이 많다. 박빙 선거라 지지층은 앞으로 더 단단히 뭉칠 것이다. 선거 뒤엔 어렵게 당선시킨 새 대통령을 반대 세력으로부터 지키고 싶을 것이다. 만약 그때 지지자들이 문자폭탄과 같은 사이버 불링에 의지하려 한다면 새 대통령은 처음부터 천명해 주길 바란다. 문자폭탄은 양념이 아닌 폭력이라고. 반칙을 멈춰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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