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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비행사 꿈꿨던 물리학도, 공정한 채용시장 만드는 일에 뛰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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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모 스타트업 대표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뛰어난 실력자로 알려진 개발자를 거액의 연봉을 주고 영입했는데 몇 달 동안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고민 끝에 다른 스타트업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고충을 이야기하다가 뒤늦게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됐다.
문제의 개발자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확산된 재택근무 상황에서 동시에 여러 업체의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해당 개발자가 화려한 이력과 달리 협업에 문제가 있고 보수에 지나치게 집착한 점이 떠올랐다. 결국 해당 개발자를 내보내고 새로운 사람을 뽑고 있지만 충격적인 일을 겪고 나니 채용을 주저하게 됐다.
그때 스타트업 대표들이 추천한 서비스가 '스펙터'다. 지난해 처음 등장한 스펙터는 대표와 임원, 인사담당자, 동료들이 평가하는 구직자 평판조회 서비스다. 비교적 구직자의 솔직한 장단점을 알 수 있어 '최고경영자(CEO)들이 보는 서비스'로 알려지며 최근 급부상했다.
하지만 구직자 입장에서는 '득'일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는 서비스다. 그만큼 응원과 견제를 받는 신생기업(스타트업) 스펙터의 윤경욱(37) 대표를 만나 솔직한 창업담을 들어 봤다.
CEO들이 스펙터를 보는 이유는 서류나 면접으로 가리기 힘든 구직자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펙터에 올라오는 구직자들의 평판 기록은 두 가지다. 과거 직장의 대표와 임원, 인사담당자가 남기는 인사권자 평판과 동료들이 기록한 동료 평판이다. "채용기업의 가치관과 직종에 따라 선호하는 평판이 달라요. 그래서 두 가지로 만들었어요."
두 가지 기록은 구직자 성향을 알 수 있도록 서로 다른 내용으로 구성된 주관식 8개 문항, 객관식 60개 문항의 질문지를 통해 작성된다. 작성된 평판 기록은 아무나 볼 수 없도록 암호화돼 저장된다. "직관적 질문들이어서 인사권자 평판은 7분, 동료평판은 5분이면 작성해요."
인사권자와 동료가 쓰는 평판 기록은 내용이 각기 다르다. 인사권자 기록은 성과와 과정 중 어느 쪽을 중시하는지, 업무 이해력과 업무 능력 파악 등 경영자 관점에 초점을 맞췄다. 동료 평판기록은 구직자의 업무 성향 위주다. "동료평판은 구직자가 협업을 잘하는지, 혼자서 창의적 일을 잘하는지, 내근형 또는 외근형인지, 남을 이끄는 리더형인지, 아니면 주어진 일을 잘하는 팔로어형인지 등을 기록하죠. 성격이 어떻다는 둥 개인적 인상 비평은 없어요."
중요한 것은 작성된 평판 기록을 수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신문기사를 수정해 주기 시작하면 수정 요청에 시달려 기자들이 일을 하지 못할 겁니다. 평판 기록도 신중하고 소신껏 작성하도록 하기 위해 수정을 할 수 없도록 했죠."
이용법은 간단하다. 기업과 개인들은 웹사이트(specter.co.kr)에 접속해 인증절차를 거쳐 회원 가입하면 바로 평판을 조회하거나 기록할 수 있다. 기업 회원은 재직 여부와 직책 파악을 위해 사업자 등록증과 명함 사진, 휴대폰 인증을, 동료 평판 기록을 남기는 개인 회원은 휴대폰, 명함 인증과 경력 증명 절차를 거친다. "엄격한 본인 인증절차가 핵심이에요. 인증을 철저하게 하면 평판 기록시 무분별한 비방을 하지 않아요. 작성자의 평판도 걸려 있어서 익명에 숨은 악성 댓글 같은 내용을 쓸 수 없죠.
평판 기록 열람은 신청 후 72시간 동안만 조회할 수 있다. 그 이후는 열람할 수 없다.
기업 회원만 내는 이용료는 조회 인원 1명당 1만~3만원이다. 전문 인력채용(헤드헌터) 업체에 비하면 저렴하다. "헤드헌터 업체들은 평판 조회 비용이 10만원부터 100만원까지 다양해요. 문제는 구직자와 친한 사람들 의견을 전화로 묻는 기존 평판 조회의 경우 장점만 들어요. 이런 정보들은 동네 친구에게 물었는지, 전 회사 동료에게 물었는지 알 수 없죠. 결국 정확한 평판 조회를 하기 힘들어요. 스펙터는 문서화된 기록으로 남아서 정확하죠."
이용료를 낮춘 이유는 자영업자들도 이용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아르바이트 채용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일부러 이용료를 낮췄어요."
스펙터는 구직자가 동의하지 않으면 평판 기록을 남길 수 없는 점이 특징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정보를 관리할 수 없으면 분노해요. 스펙터의 모든 기록은 당사자가 원치 않으면 남길 수 없어요. 그래서 구직자들도 회원 가입을 해야 평판 기록이 작성돼요. 탈퇴하면 저장된 평판 기록도 삭제되죠. 개인 정보를 스펙터가 활용해도 좋다고 동의해야 평판 작성 및 조회가 가능합니다."
구직자들도 자신의 평판 기록을 볼 수 있다. "인사권자와 동료들이 주관식으로 작성한 구직자의 장점과 개선할 점을 구직자가 볼 수 있어요. 단 작성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아요. 작성자의 소속 회사명만 알 수 있죠."
이렇게 만든 이유는 스펙터의 서비스 목적 때문이다. "스펙터의 목적은 구직자들이 스스로 장단점을 파악해 더 좋은 평판을 얻기 위해 노력하도록 동기 부여를 하는 겁니다. 우리 사회는 피드백 문화가 약해요. 권고사직을 당해도 이유를 모르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주관식 기록이 구체적이다. "과거에 인격모독식 평가를 하던 '꼰대' 문화를 지양해요. 명확하게 객관적으로 평판 기록을 써야 구직자에게 도움이 되죠."
기업의 평판 조회도 구직자 동의를 거친다. "구직자에게 어느 기업에서 평판 조회를 원하는데 동의하냐는 휴대폰 문자를 보내요. 이때 구직자가 거부하면 평판 기록을 제공하지 않아요. 대신 거부했다는 사실을 기업에 알려주죠. 그러면 기업이 지원자에게 거부 이유를 물을 수 있겠죠."
그렇다 보니 장점이 많은 구직자들은 거꾸로 기업에 스펙터의 평판 기록을 조회하라고 먼저 제안한다. 또 기업들이 구직자에게 스펙터에 평판 기록을 남겨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한다.
스펙터로 평판을 조회하는 기업은 530개, 평판 기록을 제공하는 개인은 개발자, 디자이너, 영업, 회계전문가 등 다양한 직종에 걸쳐 1만5,000명이다. "롯데, 신세계, IBK기업은행, 패스트캠퍼스, 밀리의서재 등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다양한 기업들이 이용해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많이 쓰면 좋겠어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은 사람 한 명 잘못 뽑으면 타격이 커요."
이용하는 기업들은 얼마나 만족할까. "기업들의 재사용률이 95% 이상입니다. 평판 기록을 남기기 원하는 개인 회원이 1만5,000명에 이를 때까지 탈퇴한 사람은 19명 뿐입니다. 그만큼 만족도가 높다는 뜻이죠."
윤 대표는 기업이 평판 기록 작성자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대화방 기능을 올해 새로 개설한다. "기록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직접 물을 수 있는 대화방 기능을 추가합니다. 대화 내용은 72시간 뒤 자동 삭제되죠."
평판 기록도 직군별로 세분화할 예정이다. "상반기 중에 채용 직종별로 필요한 내용을 심도 있게 물어볼 수 있도록 설문 내용을 개편할 예정입니다."
특히 윤 대표가 신년 목표로 중점을 두는 것은 기업과 구직자의 궁합을 찾아주는 기술이다. "구직자들이 이전에 다닌 회사의 만족도를 평가하는 기능이 올해 새로 추가됩니다. 이 기록과 구직자에 대한 평판 자료를 인공지능(AI)으로 분석해 기업과 구직자가 서로 잘 어울리는지 알려 주죠. 이 기술은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지원(팁스) 과제에 선정돼 정부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해외 진출도 고려 중이다. "아시아 지역은 미국처럼 평판 조회 서비스가 발달하지 않았어요. 동료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미국과 달리 좋은 얘기만 하려는 아시아 지역 특유의 문화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법 평판 조회가 많아요. 상반기 중에 베트남과 싱가포르에서 해외 평판 조회 서비스를 시작할 생각입니다. 1단계는 현지에 진출한 국내 기업들의 현지 채용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후 외국인 채용을 위한 평판 조회까지 확대할 계획입니다."
스펙터를 방문하면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한 복판에 놓인 레고로 만든 로켓 모형이다. 윤 대표가 7시간 이상 걸려 조립한 로켓은 못다 이룬 꿈을 달래주는 상징이다.
그의 어릴 적 꿈은 고산 같은 우주비행사였다. "미 항공우주국(NASA)에 들어가려고 고려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했어요. 그리고 2005년 우리나라에서 민간 우주인 선발 때 지원을 했죠. 그런데 서류 전형에서 떨어져 너무 속상해 전화로 이유를 물었죠. 시력 때문이었어요. 안경 쓴 우주인 봤냐고 되묻는데 할 말이 없었어요."
대신 그는 창업으로 눈길을 돌렸다. 대학 졸업 후 2012년 미국 컨설팅업체 액센츄어에 3년간 다니다가 퇴사해 첫 번째 스타트업 타운어스를 창업했다. "대학 학생회를 겨냥한 공동구매 플랫폼 업체인 타운어스라는 회사를 창업했어요. 대학 단체 활동에 필요한 물품 판매와 숙소 예약 등을 전담하는 회사였는데 너무 잘 돼서 연간 100억 원의 매출을 올렸어요."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으로 대학들이 단체 활동을 할 수 없게 돼 지난해 사업을 접었다. 이후 방향을 틀어 스펙터를 창업했다.
우주비행사 대신 그가 새로 꾸는 꿈은 공정한 채용 시장을 만드는 일이다. "직업 선택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직장인들을 만나면 상당수가 회사 욕을 해요. 그만큼 만족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셈이어서 마음이 아파요. 자신을 인정해주는 회사를 찾으면 만족도가 올라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죠. 그렇게 세상에 아름다운 영향을 미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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