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택소노미 논란이 불러낸 원전의 두 얼굴

입력
2022.01.12 04: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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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갈수록 환경에 대한 관심은 커지지만 정작 관련 이슈와 제도, 개념은 제대로 알기 어려우셨죠? 에코백(Eco-Back)은 데일리 뉴스에서 꼼꼼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환경 뒷얘기를 쉽고 재미있게 푸는 코너입니다.


최근 공개된 'EU 녹색분류체계(Taxonomy·택소노미)' 초안에서 원전이 녹색으로 분류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원전 친환경' 논란이 거셉니다. 몇 달간 추가 논의가 진행되겠지만 최종안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원전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까지 나옵니다.

택소노미란 어떤 경제활동이 녹색이고 아닌지를 구분해줘서 진짜 친환경산업에 좀 더 많은 투자와 세금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겁니다. 유럽은 그간 나라 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린 원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오다 최근 두 가지 모두 EU택소노미 초안에 포함시켰습니다. 초안 공개 직전에 발표된 K택소노미에서는 LNG만 들어가고 원전이 빠졌습니다. 그러자 '거봐, 친환경에 가장 열심이라는 유럽도 저러는데 우리가 뭐라고 원전을 내다 버려'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그러면 EU택소노미에 이어 K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면, 그걸로 자동적으로 환경 문제는 해결되는 걸까요.

국내 원자력발전소 현황.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내 원자력발전소 현황. 한국일보 자료사진


원전, 효율 좋고 수급 안정적이어서 각광

원전은 장점이 명확합니다. 효율이 높고 수급이 안정적입니다. 핵심 원료인 우라늄은 1g만 때워도 석탄 3톤 수준의 에너지를 냅니다. 발전 단가 중 연료비 비중을 따져보면 원전은 겨우 10%입니다. LNG나 유류 발전에서 연료비 비중이 각각 85% 수준이고, 무연탄은 81%인 것에 비하자면 엄청나게 효율적입니다.

수입의존도도 낮은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2.9%에 달하는데, 이 중 우라늄이 차지하는 비중은 0.9%에 불과합니다. 원유(51.3%), 석유제품(18.5%), 천연가스(18.2%), 석탄(11.1%)에 비하자면 엄청 낮습니다. 원전을 일러 '준국산 에너지'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여기다 우라늄은 저장과 수송이 편리하고, 특정 국가에 집중돼 있지 않아 화석연료 대비 가격변동 폭도 작습니다. 보통 10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통해 확보하기 때문에 글로벌 공급가격이 급변하는 일도 드물뿐더러 영향도 제한적입니다.

탄소 배출도 수력, 태양광보다 적어

원전은 발전 그 자체로만 따지면 저탄소, 그것도 초저탄소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우라늄 채광과 연료제조 등 공정에서부터 발전까지, 전체 발전 주기를 기준으로 비교해보면 원전은 1kWh당 12g의 탄소를 배출합니다. 풍력(11, 12g)과 맞먹는 수준이죠. 수력(24g), 태양광(27~48g), LNG(490g)보다도 낮을 뿐 아니라 석탄(820g) 대비로는 약 800분의 1 수준입니다.

거기다 발전소 자체도 작습니다. 산림이나 경작지 등 주변 환경을 덜 해칩니다. 1MW 발전을 위한 설비용량 필요면적을 비교했을 때 원전은 528㎡면 충분합니다. 친환경이라 하는 육상풍력은 이보다 9배, 태양광은 30배 더 큰 땅을 필요로 합니다.

원전은 궁극의 청정에너지로 각광받는 수소에너지 공급에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상용원전 기반의 저온 수전해시설을 건설하면 수소단가가 ㎏당 2,950~3,200원 정도로 떨어집니다. 이 기술은 5~8년 내 상용화된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수소경제로드맵상 2030년 수소 공급가격 목표인 ㎏당 4,000원이 달성 가능해지는 수준입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도쿄 총리관저에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로 발생한 다량의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바다에 배출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안에 보관돼있는 오염수 탱크. 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지난해 4월 도쿄 총리관저에서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사고로 발생한 다량의 방사성 물질 오염수를 바다에 배출하기로 결정했다. 사진은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안에 보관돼있는 오염수 탱크. 연합뉴스


문제는 '안전'... 해소되지 않는 물음표

그럼에도 많은 환경단체들과 전문가들은 여전히 원전을 못마땅해 합니다. 원전의 장점을 몰라서가 아닙니다. 원전 문제의 핵심은 '친환경이냐'가 아니라 '안전하느냐'이기 때문입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원전이 한 번 잘못되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 생생한 사례입니다.

여기다 핵 발전에 사용된 연료에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남은 방사성물질, 즉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을 처리할 시설이 아직도 없으며, 앞으로 별 달리 뾰족한 수가 안 보인다는 점 또한 문제입니다. 현재 핀란드가 2023년부터 최종처분시설을 운영할 예정이고, 스웨덴이 2020년에 최종처분시설 건설을 허가했습니다. 하지만 최소 수천, 수만 년간 폐기물을 보관해야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안전성에 의문이 남습니다.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도 폐기물 처리 부지 선정을 놓고 40년 가까이 논란을 겪고 있지만, 기피시설이다 보니 해답을 찾지 못해 각각의 원전이 폐기물을 임시 보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정부가 해당 원전이 고준위 폐기물을 보관하자고 하자마자, 부산과 울산 등 해당 지역에서 반발이 터져나오기도 했습니다.

온배수 배출 문제도 심각

또 하나 놓치기 쉬운 문제는 온배수 배출입니다. 온배수는 발전소에서 수증기를 냉각하고 난 뒤 뜨거워진 물로, 바닷물보다 7, 8도가량 높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 고리·새울·월성·한빛·한울 등 5개 본부에서 배출한 온배수는 약 313억 톤에 달합니다. 2017년부터 온배수를 농가의 신재생 에너지나 양식장 등에서 활용하게 했지만, 저 5개 본부에서 재활용된 온배수는 45만 톤, 즉 0.001%에 그쳤습니다. 온배수는 바닷물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를 대기 중에 방출시켜 지구온난화에도 악영향을 미칩니다.

많은 환경단체와 전문가들이 원전을 여전히 꺼림직하게 여기는 이유입니다. EU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된 것 역시, 원전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신재생에너지가 아직은 못 미더워서입니다. 원전은 여전히 해답이 아닙니다.

김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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