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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슬픔을 기록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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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수습기자들과 인턴기자들을 상대로 종종 특강할 때가 있다. ‘사회부 기자의 세계’란 주제로, 현장 취재를 잘하고 기사 작성 잘하는 노하우를 전달하는 시간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강단에 올라선 기자들은 으레 이만큼 취재한 걸 저만큼 취재했다고 과장하고 무용담을 늘어놓는다. 가뜩이나 떠벌리기 좋아하는 기자들이 ‘뻥’까지 가미하면 울림은커녕 졸림만 유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깨달은 사실 하나. 잘했던 것보다는 실수했거나 망신당한 경험을 리얼하게 언급해야 한다. ‘나도 저렇게 따라 해야지’보다는 ‘저 사람처럼 살지는 말아야지’ 하고 느끼도록 하는 게 후배들에겐 각인 효과가 컸다.
강의 때마다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현장에서 크게 ‘물먹었던’ 5가지 사례를 얘기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2003년 2월 18일 192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 취재 경험은 기자로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건이었다.
막내 기자에게 주어진 미션은 생존자들의 탈출 과정을 취재하라는 것이었다. 한달음에 부상자들이 입원해 있던 대구 파티마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에서 가장 먼저 접했던 20대 남성은 전동차 내부로 유독가스가 스며들어 코와 입을 막고 있던 승객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가까스로 빠져나온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줬다. 그는 기자 중에선 나를 처음 만났다고 했다.
최초의 현장 기록자라는 자부심을 갖고 그가 전해준 이야기를 토대로 기사를 썼다. 하지만 다음 날 자부심은 자괴감으로 바뀌고 말았다. 대구 매일신문은 1면을 거의 할애해 대문짝만 한 사진을 실었는데, 기사 100개보다 훨씬 눈길을 끌었다. 다만 사진 속 모습이 병원에서 만난 남성이 전해준 탈출 직전 상황과 너무 유사해 신경이 쓰였다.
사진설명에 적혀 있는 ‘독자 제공’을 보자마자, 병원으로 다시 달려갔다. 남성은 사진을 제공한 독자가 자신이라고 말했다. ‘왜 나에겐 사진을 주지 않았느냐’고 물었더니, “달라고 하면 줬을 텐데, 안 물어보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대구 참사로부터 19년이 지난 2022년 1월 6일 경기 평택 냉동창고 신축 공사장에서 또 하나의 참사가 발생했다. 후배 기자는 순직 소방관들이 안치된 빈소에서 밤을 꼬박 새웠다. 유족들이 취재진을 거북해하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기자는 사람들이 대부분 자리를 비운 새벽 3시쯤 고(故) 이형석 소방경의 지인과 자리를 함께했다. 어린 기자가 졸린 눈을 비비며 밤새 취재하는 게 기특했는지, 그는 이 소방경이 사고 현장에 다시 투입되기 직전 자신과 마지막까지 카카오톡을 했고 사진까지 공유했다고 말했다.
기자는 당일 아침 그에게 사진을 보내줄 수 없겠냐고 설득했다. 순직한 소방관 세 분은 그을린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어렵게 사진을 입수하자 유족들에게 일일이 동의를 구했다. 새벽부터 밤샘 진화 작업으로 심신이 지쳐 있는데도 미소를 잃지 않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한 세 분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고 전했다. 유족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슬픔 속에서도 사진 게재에 동의해 주셨다.
19년 전 나는 제대로 못 했지만, 후배는 현장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통곡하고 오열하는 무거운 공간이지만, 기자는 꿋꿋이 현장에서 슬픔을 기록해야 한다. 기자의 수많은 존재 이유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면 바로 이것이다. 다시 한번 유족들에게 위로와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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