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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아방가르드' 변혁을 이끈 여성 예술가들, 6인의 아마조네스

입력
2022.01.11 04:30
수정
2022.01.11 11:52
22면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 혁명의 예술展’ 특집 <13>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아마조네스'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6인의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인 나탈리야 곤차로바의 1913년 작 '고양이들(분홍, 검정, 노랑의 광선주의적 인식)'.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제공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아마조네스'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6인의 여성 예술가 중 한 명인 나탈리야 곤차로바의 1913년 작 '고양이들(분홍, 검정, 노랑의 광선주의적 인식)'.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제공

나탈리야 곤차로바, 올가 로자노바, 바르바라 스테파노바, 나데즈다 우달초바, 알렉산드라 엑스테르, 류보프 포포바, 이 6인의 여성 예술가들은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아마조네스'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아마조네스란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그리스 신화 속의 부족으로, 남성과 비교해 동등하거나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여성들을 빗대어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별칭처럼 러시아 아방가르드의 역사에서 이 6인의 활동은 당시 주류를 이루던 남성 미술가들과 비교해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일부는 그들을 뛰어넘는 업적을 세우며 20세기의 현대적 시각문화 발전에 큰 족적을 남겼다.


류보프 포포바가 1922년 선보인 연극 '너그러운 오쟁이진 남편'의 무대 디자인 스케치. 국립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제공

류보프 포포바가 1922년 선보인 연극 '너그러운 오쟁이진 남편'의 무대 디자인 스케치. 국립 트레티야코프 미술관 제공

전통적으로 미술사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남성 미술가들의 애인이나 정부, 아내로서 그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뮤즈'의 역할을 하는 존재로만 양념처럼 서술돼 왔다. 예술가로서의 자의식과 주체성을 지닌 여성 미술가들의 존재는 비교적 최근에야 학계의 관심을 받고 조명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신 연구 경향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세계 미술사 전체를 통틀어 새로운 예술적 흐름의 탄생과 발전에 중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 여성 예술가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어째서일까?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창조적 능력이 떨어지는 것일까?

이에 대해 미술사학자 린다 노클린은 1971년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라는 글에서 가부장적 문화와 사회 제도를 그 원인으로 지적한다. 실제로 19세기 말까지 여성에게는 미술 아카데미 입학이 허가되지 않았다. 또한 대다수의 여성 미술가들은 창작활동과 동시에 가사와 육아를 전담해야만 하는 고충이 컸다. 여성이 예술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회적 분위기 또한 그들에게 큰 부담이었다.


나데즈다 우달초바의 1913년 작 '부엌'.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 제공

나데즈다 우달초바의 1913년 작 '부엌'. 예카테린부르크 미술관 제공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평등을 지향하는 러시아 혁명과 결을 맞춰 진행됐다. 여기서 사회적 평등은 신분이나 민족, 인종 간 평등은 물론 남녀 간의 평등을 포함한다. 그 덕분인지 러시아 아방가르드에서는 유난히 여성 미술가들의 활약이 돋보인다. 그들 대부분은 당시 활발히 활동하던 남성 예술가 및 이론가들의 아내나 연인이었으나 서로 간 관계는 절대적으로 평등하고 자유로운 주체적 개인 간의 결합이었다. 서구 미술사에서 남편이나 아버지, 형제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인정받지도 못했던 여성들이 많았음을 상기한다면 러시아 혁명기 여성 미술가들과 배우자들 간의 대등한 관계는 매우 이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에 버금가는 20세기 러시아 추상회화의 주요 걸작인 올가 로자노바의 '녹색 선(1917년 작)'. 로스토프 크레믈린 뮤지엄 제공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에 버금가는 20세기 러시아 추상회화의 주요 걸작인 올가 로자노바의 '녹색 선(1917년 작)'. 로스토프 크레믈린 뮤지엄 제공

곤차로바는 미하일 라리오노프와 함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신원시주의와 광선주의에 입각한 새로운 양식의 회화예술을 탄생시켰으며 이는 러시아에서의 추상회화 등장을 촉진했다. 우달초바는 알렉산드르 드레빈과 함께 스보마스-브후테마스-브후테인으로 이어지는 혁명 이후의 새로운 미술교육 제도 속에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미술의 보급에 앞장섰다. 로자노바는 알렉세이 크루초니흐와 함께 미래주의적 시와 기하학적 색면 추상 판화가 결합된 작품집들을 공동으로 출간했고, 지금의 문화부에 해당하는 정부 조직인 인민계몽위원회 미술분과 위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자신만의 색채추상회화 이론을 발전시켜 나가다 3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로자노바의 마지막 작품 중 '녹색 선'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에 버금가는 20세기 러시아 추상회화의 주요 걸작으로 여겨진다.


바르바라 스테파노바가 1923년 디자인한 스포츠 의류. togdazine.ru 제공

바르바라 스테파노바가 1923년 디자인한 스포츠 의류. togdazine.ru 제공

순수미술뿐만 아니라 '생산적 예술', 즉 구축주의적 디자인의 영역에서도 여성 미술가들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스테파노바는 1921년 '구성 대 구축 논쟁'의 기록 및 정리를 통해 알렉산드르 로드첸코와 함께 구축주의 이론 확립에 큰 역할을 했고, 간결하면서도 심미적인 직물 패턴과 의상 디자인을 통해 이를 실행에 옮겼다. 포포바 또한 이들과 함께 20년대 산업디자인의 형성에 큰 역할을 했으며, 메이예르홀트 극장에서의 구축주의적 무대 및 소품, 의상 디자인으로 현대적 무대미술 발전을 촉진했다. 엑스테르는 러시아의 여러 전위적 미술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1925년 페르낭 레제의 초청으로 파리의 현대미술 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구축주의적 디자인이 서구로 확산되는 데 일조했다.


알렉산드라 엑스테르가 1924년 발표한 연극 '유령부인' 무대 디자인 스케치. birdinflight.com 제공

알렉산드라 엑스테르가 1924년 발표한 연극 '유령부인' 무대 디자인 스케치. birdinflight.com 제공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새로운 미술과 연극, 영화, 책, 포스터, 인테리어, 패션, 산업디자인을 통해 새로운 유형의 인간을 양성할 수 있다는 믿음, 즉 진보적 가치에 기반한 지적·문화적·사회적 흐름이자, 여성들이 한 명의 창조자로서 제대로 인정받기 시작했던 매우 중요한 역사적 시기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동안 러시아 아방가르드가 이룩한 여러 업적은 실제로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여러 현대적 물질문화와 시각문화의 기초를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줬다. 이는 당시 진보적 평등의식에 기반한 사회적 분위기 형성과 이를 통한 여성 예술가들의 활발한 활동이 뒷받침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러시아 아방가르드는 남녀평등이라는 진보적 가치가 시대적 변화와 발전을 이끌어 낸 대표적 사례인 것이다.

이훈석 전시기획자·러시아미술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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