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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연구소, 공장 '깜깜이' 월급… 직장인 30% "임금명세서 못 받아"

입력
2022.01.09 16:23

임금명세서 '의무' 제도 시행했지만
미교부에 부실 기재, 현장은 주먹구구식
"정부 제도 홍보, 관리감독 부족한 탓"

임금명세서 의무화 시행 하루 전인 지난해 11월 18일 고용노동부 직원들이 홍보 포스터를 게시판에 붙이고 있다. 하지만 일터까지 제도가 잘 알려지지 않아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여전히 임금명세서를 받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임금명세서 의무화 시행 하루 전인 지난해 11월 18일 고용노동부 직원들이 홍보 포스터를 게시판에 붙이고 있다. 하지만 일터까지 제도가 잘 알려지지 않아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여전히 임금명세서를 받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합뉴스

중견 규모 병원에 다니고 있는 A씨는 지금까지 한 번도 임금명세서를 제때 받아본 적이 없다. 병원은 왜 안 주냐고 따지는 직원에게만 내키지 않아 하면서 나눠줬다. 그렇게 받아낸 서류도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A씨는 "명세서엔 기본급과 시간외근무수당 딱 2가지만 나와 있고 세부 항목은 하나도 적혀 있지 않았다"고 했다.

B씨가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곳은 근로계약서를 쓰지도 않았다. 당연히 임금명세서는 구경도 못 해봤다. 그는 "회사 대표가 욕설, 인격 모독 발언을 자주 하는 데다, 연구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국책과제 연구수당도 현금으로 찾아서 다시 회사에 내라고 강요했다"며 "작년에도 한 번도 임금명세서를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지난해 12월과 올 1월 들어온 제보다. 고용노동부가 작년 11월 19일부터 근로자가 단 1명인 사업장이라도 모두 임금명세서를 의무적으로 교부하도록 하는 제도를 시행했지만, 정작 현장까지 닿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 주거나 부실 기재 수두룩… 제도 '유명무실'

9일 직장갑질119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22일~12월 31일 임금명세서 지급 위반 사례를 신고하는 '월급도둑 신고센터'를 운영한 결과, 총 21명의 직장인이 제보를 했다. 임금명세서를 아예 주지 않았다는 신고가 11건, 허위 작성이 10건이었다. 병원부터 재단, 연구소, 공장까지 대부분 10인 이상 사업장이었고, 100명이 넘는 대규모 사업장도 있었다.

임금명세서 지급 위반 주요 사례작년 11·12월 임금명세서 기준<자료: 직장갑질119>

회사 규모 지역 급여일 내용
G병원 100명 이상 서울 25일 요구해야 지급, 세부항목 부실기재
D단체 10인 미만 경기 25일 늑장지급, 부실기재
G재단 100명 이상 서울 20일 늑장지급, 부실기재
H재단 80명 이상 경기 25일 부실기재
A연구소 40명 이상 서울 25일 부실기재
H장비판매 20명 이상 서울 마지막 주 미지급
C공장 20명 이상 충남 25일 미지급

지난해 임금명세서 교부 의무를 명시한 개정 근로기준법이 시행됨에 따라 모든 회사는 임금의 구성항목, 계산방법, 공제내용 등이 적힌 임금명세서를 근로자에게 줘야 한다. 임금의 구체적 내용을 알지 못해 임금 체불에 따른 분쟁이 발생하는 걸 막으려는 조치다. 제때 교부하지 않거나 허위로 작성하면 최대 5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한다.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지난해 12월 3~10일)에서도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임금명세서를 교부받고 있지 않다"는 응답이 27.8%로 조사됐다.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여전히 내 월급이 어떻게 계산되는지 모르는 셈이다.

'약자'일수록 '깜깜이' 임금… "관리 강화 필요"

"임금명세서 못 받았다"인·만=근로자 규모·월급 수준 (단위: %)
직장갑질119

직장인 중에서도 비정규직은 51.2%가, 월급 150만 원 미만인 직장인은 63.7%가 임금명세서를 받지 않고 있었다. 이들 중 3분의 1은 임금명세서 지급을 의무화한 법의 존재도 모르고 있었다.

임금명세서는 노동자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서류 중 하나다. 월급이 밀리거나 추가 근무 수당을 요구하고 싶어도 임금명세서가 없으면 다투기 힘든 상황이 생긴다. 정부 위탁기관에서 일하는 C씨도 종교 후원금을 강요하는 기관의 행태를 따지고 싶었지만. 임금명세서엔 기본급만 적혀 있었다. 그는 "연장근무, 당직근무도 강요해서 명세서 세부 내용을 달라고 했더니 거부당했다"고 했다. 법 시행 후인 작년 12월 한 달 동안 직장갑질119로 들어온 임금 관련 제보만 46건으로, 그 이전의 월평균보다 오히려 10% 높았다.

불법을 방치하지 않기 위해선 정부가 제도 인지도를 높이고 관리감독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윤희 직장갑질119 노무사는 "실제 상담을 해보면 노동자가 본인 임금항목, 산정 근거, 매년 바뀌어 온 추이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늦게나마 교부 의무 근거 규정이 도입됐지만, 취지를 살리려면 급여명세서가 실질적으로 지급되도록 고용노동부가 더 엄격하게 관리감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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