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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1월 10일 리영희, 강만길, 조승혁 국가보안법 위반 구속… 좌경분자 책동 경각심 촉구

입력
2022.01.10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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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월 10일
불온유인물 출처 수사 통한 우연한 적발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은 74년째 계속

편집자주

한국일보 DB 속 그날의 이야기. 1954년 6월 9일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일보 신문과 자료 사진을 통해 '과거의 오늘'을 돌아봅니다.


1984년 1월 11일 자 한국일보 11면. 리영희, 강만길, 조승혁씨 구속 북괴 주장 동조, 보안법 위반 혐의, ‘고려연방제’ 찬양, 의식교육 제하의 기사가 톱으로 실렸다.

1984년 1월 11일 자 한국일보 11면. 리영희, 강만길, 조승혁씨 구속 북괴 주장 동조, 보안법 위반 혐의, ‘고려연방제’ 찬양, 의식교육 제하의 기사가 톱으로 실렸다.


오랜 시간 남용되어온 국가보안법의 오용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이를 폐지하거나, 국제인권법과 기준에 맞도록 전면 개정하는 것뿐이다.

샘 자리피, 국제앰네스티 아시아태평양 국장(2011)


1984년 1월 10일 치안본부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 조승혁 목사와 리영희 전 한양대 교수, 강만길 전 고려대 교수 등 3명을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표했다. 조 목사의 부탁을 받은 리 전교수와 강 전 교수가 9명의 중고교 교사에게 반국가적인 의식화 교육을 했다는 혐의였다.

(※ 1984년 1월 11일 자 지면 보러 가기 ☞ www.hankookilbo.com/paoin?SearchDate=19840111 링크가 열리지 않으면 주소창에 URL을 넣으시면 됩니다.)


우연한 발견,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 전개… 대대적 발표… 35일 만에 석방

당시 한국일보 보도를 종합하면 이들의 검거와 범행 사실 입증은 불온유인물 적발과 그 출처 수사 과정에서 우연하게 이뤄졌다.

①경찰이 불온유인물을 소지한 이화여대 학생 적발. ②수사를 통해 동국대 대학원생과 철학과 학생, 면목여중 교사, 서울사대 휴학생 등의 출처와 전달 과정 드러남. ③면목여중 교사를 수사하던 중 서가에서 1984년도 사용 예정인 중등학교 사회과 교과서 초고와 이를 불온하게 비판한 노트 발견. ④출처를 추궁한 끝에 조 목사 등이 관련된 것을 알게 돼 이들을 연행해 범행 전모 밝힘.

경찰 발표에 따르면 리영희, 강만길 전 교수는 1983년 5월과 6월 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회의실에서 김한조 서울 면목여중 교사 등 9명의 중고교 교사에게 정부의 통일정책을 비판해 "6·25는 정통성을 가진 북한의 민족국가 형성을 위한 반제국주의 투쟁이었다", "미군 철수를 전제로 한 고려연방제가 현실적인 통일방안이다", "남한의 반공교육이 통일을 방해하는 요소다" 등 반국가적 의식화 교육을 했다.

1984년 2월 15일 자 한국일보 11면. 리영희·강만길·조승혁씨 석방, 검찰 공소보류 "위법 인정… 개전의 정 참작" 제하 기사.

1984년 2월 15일 자 한국일보 11면. 리영희·강만길·조승혁씨 석방, 검찰 공소보류 "위법 인정… 개전의 정 참작" 제하 기사.

우연한 발견에서 시작됐지만 해당 사건은 대대적 보도와 달리 빠르게 정리됐다. 경찰은 이들로부터 수차례 반국가적 강의를 들은 교사 9명에 대해서는 참고인 성격으로 조사를 했을 뿐 구체적인 범법사실(북괴고무 찬양 등)이 밝혀지지 않아 이들 구속 때까지도 입건하지 않는다.

그리고 구속된 3인은 1984년 2월 14일 검찰의 공소보류 결정에 따라 수감 중이던 서울구치소에서 구속 35일 만에 풀려났다. 석방 결정 사유는 '실정법 위반사실을 시인했고 반성의 뜻을 나타냄'이었다.

2010년 12월 리영히 전 한양대 교수 별세 후 추모 도서전이 열린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2010년 12월 9일 일 자 한국일보 자료사진

2010년 12월 리영히 전 한양대 교수 별세 후 추모 도서전이 열린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2010년 12월 9일 일 자 한국일보 자료사진


국가보안법, 74년째 국내외 폐지 요구… 인권침해, 일반법률 대체 가능

리영희 전 교수는 당시 사건 외에도 여러 차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감됐다. 그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 반독재투쟁과 통일운동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언론사와 대학에서 4차례 해직됐고 5차례에 걸쳐 수감되어 1,012일을 감옥에서 지냈다. 독재에 맞섰던 진보적 언론인이자 비판적 지식인으로 평가받았던 그는 2010년 12월 5일 세상을 떠났다.

반면 그를 가두었던 국가보안법은 74년째 개폐 논란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은 일제강점기인 1925년 5월 12일 시행된 '치안유지법'을 기반으로 1948년 12월 제정된 후 2016년까지 13차례 개정됐다.

유엔(UN) 인권기구는 1992년부터 지속적으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고 있다.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인정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인권침해의 소지가 크며, 일반 법률로 대체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도 2004년 국회의장과 법무부 장관에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11~2020년 국가보안법 기소 건수가 683건에 이르는 등 최근에도 여전히 국가보안법 위반 적발과 기소가 이뤄지고 있다.

리영희(가운데) 전 교수가 서울 성공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시국선언에서 발언하고 있다. 2004년 9월 16일 자 한국일보 자료사진

리영희(가운데) 전 교수가 서울 성공회에서 열린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시국선언에서 발언하고 있다. 2004년 9월 16일 자 한국일보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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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성 기자
자료조사= 김지오 DB콘텐츠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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