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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갈 청년이 없다...징병·모병 혼합제가 현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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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구 논설위원이 노동ㆍ건강ㆍ복지ㆍ교육 등 주요한 사회 이슈의 이면을 깊이 있게 취재해 그 쟁점을 분석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코너입니다. 주요 이슈의 주인공과 관련 인물로부터 취재한 이슈에 얽힌 뒷이야기도 소개합니다.
모병제 도입을 둘러싼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급속한 저출산 여파와 남북 긴장완화 등 안보환경이 변하면서 1948년 창군 이래 이어졌던 징병제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자리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의무 군 복무에 따른 기회비용 보상을 요구하는 젊은 남성들의 불만이 전례없이 높아지는 점도 논의를 추동하고 있다. 여론도 조금씩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 따르면 2012년 15.5%였던 모병제 찬성 여론은 2016년 27.0%, 2019년 33.3%로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정치권도 이런 요구에 화답하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 나설 주요 후보들은 2030년 전면 모병제(심상정 정의당 후보), 선택적 모병제(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준모병제(안철수 국민의당 후보) 등을 공약으로 내놓고 있다.
6ㆍ25전쟁 당시 72만 명 수준이던 우리 군 병력은 1958년 63만 명으로 감축됐고 이후 2018년까지 60만~69만 명 수준이 유지돼왔다. 문재인 정부는 ‘국방개혁 2.0’에 따라 올해까지 군 인력을 간부 중심으로 바꾸고 상비병력을 50만 명으로 감축하는 군 인력구조 개편을 시도하고 있다. 8개였던 육군사단을 6개로 축소하는 등 상당한 병력 감축이 이뤄졌지만 감군 속도보다 출산율 저하에 따른 청년인구 감소 속도가 더 빠르다. 지난해 발간된 한국국방연구원의 보고서 ‘2022 국방정책 환경전망’에 따르면 2021년 28만 명인 연간 현역 가용 자원은 2040년 13만 명(현역 판정 비율 90% 가정)으로 줄어든다. 2021년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이다. 지금 방식으로 현 수준의 병력(장교ㆍ부사관 20만 명, 사병 30만 명)을 유지하려면 2030년부터는 필요 인원을 충원하기 불가능하다고 보고서는 예측한다. 현행 징병제의 유효기간이 10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군 역시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1980년대 50~60%였던 현역 판정률은 지난해 86%까지 높아졌다. 이와 함께 내년까지 의무경찰, 의무소방 등 전환복무제도 폐지, 산업기능요원과 전문연구요원 등 산업지원인력 감축 같은 방법으로 현역 입영대상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인구 감소 속도를 감안하면 이런 쥐어짜기식 대책은 한계가 명확하다. 결국 군의 병력 소요를 줄이거나 징집병의 복무 기간을 연장하는 대안이 검토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복무기간 연장은 1968년 1·21사태 직후 단 한 차례밖에 없었고 사병의 복무기간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급박한 안보위기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실현 가능성은 낮다. 그렇다고 이미 병력 감축이 상당히 이뤄진 상황에서 군의 병력소요를 획기적으로 축소할 방법도 마땅하지 않다.
어떤 형태로든 모병제적 요소를 강화해 적은 인원이라도 장기복무를 유도하는 방식이 검토돼야 한다는 얘기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 모종화 당시 병무청장은 이례적으로 “모병제 문제도 안보상황, 재정상태를 신중히 검토한 후에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는데 이는 정부가 느끼는 병역자원 부족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최병욱 상명대 국가안보학과 교수는 “전문성과 숙련도가 높은 장병이 많이 필요한 변화를 감안할 때 징집병 축소는 불가피하다”면서“(자원입대하는) 부사관 인원 증원 등 선진 군대형 인력구조 변환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모병제 도입 논의 분위기는 무르익고 있지만 찬반 논리는 팽팽하다. 논의의 전제가 되는 현재 안보상황, 국방예산 규모, 우리 군의 전투능력 등 쟁점이 많기 때문이다.
적정한 병력 숫자부터 합의가 쉽지 않다. 모병제 논의가 너무 늦었다고 보는 찬성론자들은 감군을 전제로 모병제 도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재 50만 명 수준인 병력을 30만 명 정도로 감군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남북 간 첨단전력 격차를 감안할 때 30만 명대인 육군 병력 중 절반가량을 감축해도 전력이 약화되지 않는다고 본다. 한국군은 육군 병력 절반이 서해안에서 동해안까지 최전방에서 늘어서 있는 선형(線形) 방어전략을 고수하고 있는데 전방방어를 과학화된 경계시스템에 맡기고 거점방어 형식으로 전환해도 된다는 것이다. 김종대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전 정의당 의원)는 “개전 초기 전투손실률이 큰 병력밀집형 전진배치 형태를 고집할 필요가 없다”며 “후방의 거점에서 전략자산 운용 위주로 방어전략을 바꾸면 모병제를 실시할 수 있는 30만 명 정도로 감군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참여연대, 나라살림연구소, 군인권센터가 공동 발표한 '병역제도개편 시민사회안'은 상비병력을 2040년까지 30만 명(장교ㆍ부사관 17만 명, 사병 13만 명)으로 줄이자는 게 골자다. 사병은 3년간 복무하는 자원병 3만 명과 12개월 복무하는 의무병 10만 명으로 구성하는 모병과 징병의 혼합방식이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유사시 북한을 점령한다는 작전계획을 포기하고 국방목표를 대북 억제로만 정하면 30만 명으로 병력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비군 110만 명을 운영하는 북한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 산악지형이 많아 보병이 많이 필요한 특성상 육군의 대량 감군, 선형방어전략 포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지난 1일 동부전선 육군 22사단에서 발생한 월북사건은 과학화 경계시스템의 한계를 드러낸 사례다. 김일생 전 병무청장(예비역 중장)은 2017년 발표한 논문에서 “북한 급변사태 시 우호상태에서 평화유지를 위한 병력이 11만~23만 명, 북한군 저항세력 제거를 위해서는 최대 46만 명의 병력 투입이 필요하다”며 “현재보다 병력 감축이 불가피한 모병제 도입으로는 주도적 상황관리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양욱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는 “병영국가인 북한의 위협이 존재하는 한 모병제 전환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며 “장기적으로는 중국의 군사적 압력이 강력해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는데 한국군 50만 병력으로도 중국 1개 전구(戰區) 병력도 감당하기 버겁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모병제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모병제 전환 시 필요한 병력자원의 확보 가능 여부도 물음표다. 2015년 전면적으로 모병제를 시행하려던 대만은 병력 수급난으로 2018년으로 시행을 연기한 바 있다. 한국국방연구원의 연구(2021)에 따르면 모병제 전환 시 병력 충원이 가능한 규모는 8만5,000~14만6,000명 수준이다. 국방개혁 2.0이 목표로 정한 50만 병력의 30% 수준이다.
우리 군은 숙련인력 확보를 위해 2008년부터 사병 복무를 마친 뒤 본인의 지원에 따라 4년 한도로 월급 200만 원 수준의 부사관으로 복무하는 ‘임기제부사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2017년과 2018년에는 모집목표의 절반이 안 되는 45%만 지원했다. 모병제에 필요한 병역자원 확보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모병제로 전환되면 하위 계층 위주로 자원해 우수자원 확보가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973년부터 모병제를 실시하고 있는 미군의 경우 이라크전에서 사면을 대가로 1만7,000명의 전과자를 입대시켜 논란이 된 바가 있다. 물론 반론도 있다. 미 국방부에 따르면 2020년 입대자의 17%가 가구소득기준 상위에 속했고 하위계층(중위소득 이하)은 19%에 불과했다. 대부분 중산층이 자원입대한다는 것이다. 다만 모병제 전환 시 징병제의 긍정적 기능이었던 사회통합 기능의 약화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걸림돌은 예산이다. 현재 군 인건비(13조2,000억 원) 중 부사관(6조3,000억 원) 인건비가 절반을 차지하고 사병(의무병)은 2조4,000억 원으로 부사관의 인건비 비중이 사병보다 2배 이상이다. 사병의 비중이 줄고 부사관 비중이 높아지는 모병제로 바뀐다면 인건비 비중은 커질 가능성이 높다. 미국, 영국 등 주요 모병제 국가들의 병력 1인당 국방비는 징병제 국가의 6.4배에 달한다.
이상목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교수(경제학)의 분석(2017)에 따르면 병력 50만명을 유지하면서 모병제로 전환할 경우(간부 40%ㆍ사병 60%) 인력유지비용은 18조3,936억 원으로 병력이 63만 명이던 2017년(13조1,152억 원)보다 5조 원 이상 추가로 들었다. 다만 병력을 35만 명으로 축소하면 2017년과 비슷한 예산(12조8,775억 원)이 투입되는 것으로 예측됐다. 징병제에 비해 모병제에 예산이 더 투입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병력을 어느 정도 규모로 운영할지에 따라 추가 예산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안석기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인력센터장은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군인의 직업적 매력도를 어떻게 높이느냐가 모병제 전환의 관건”이라며 “최소한 민간 중소기업 이상의 경제적 메리트가 있어야 모병제에 적합한 양질의 병역자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력자원 감소는 상수이므로 상비군 위주로 전력을 구상하는 발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은 모병제 찬ㆍ반론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310만 명에 달하는 한국군 예비병력의 10%만 정예화하면 병력 감소에 따른 전력 약화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준직업예비군 도입 등을 통해 상비병력 부족을 보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국방부의 예비전력 관련 예산은 올해 2,612억 원에 불과하다. 예비역 부사관, 장교 중 최대 15일간 동원훈련을 하는 예비 군간부 비상근복무제도 확대 등 예비병력에 대한 적극적 투자 없이는 불가능한 셈이다. 이와 함께 현재 8% 정도인 여군 비중을 15~30% 수준으로 확대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전면적인 모병제 도입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모병제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의무병과 모병이 혼합된 충원방식을 제안하고 있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모병제 도입 주장 역시 전면 모병제보다는 기존 제도에서 개인의 선택권을 넓혀주는 방식의 개선안이 많다. 안석기 센터장은 2020년 미래병역포럼 발표에서 “병역 의무자들도 의무와 강제보다는 자발적 선택성을 중시하고 있으며 전장환경도 첨단장비 운용으로 바뀌고 있다”면서 “징ㆍ모집제도의 개별적 장점을 최대한 활용한 탄력적 운영이 필요하다”며 혼합방식이 불가피하다는 의사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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